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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종전선언'은 허상" →"좋은 발상"... 北, 왜 7시간 만에 태도 바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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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서울을 찾은 김여정 당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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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이 꽉 막힌 한반도 정세에 핫이슈로 부상했다.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 카드를 다시 꺼낸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에 침묵하던 북한이 이틀 만에 내놓은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북한은 24일 “시기상조” “허상”이라며 종전선언 제안을 폄하했다가, 7시간 뒤 “좋은 발상”이라고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청와대는 즉각 “굉장히 의미 있고 무게 있게 받아들인다(박수현 국민소통수석)”고 반겼지만, 조건이 있다. 제재 완화 등 대북 ‘적대시 정책’이 먼저 폐기돼야 남북대화와 종전선언 협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측에는 소통 여지를 남겨두되, 궁극적으로 비핵화 협상의 맞상대인 미국의 선제적 행동이 없는 한 종전선언에 호응할 생각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北의 돌변... 문 대통령 기내 발언 영향?


이날 하루 종전선언을 둘러싼 북측의 대응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같은 사안에 두 차례 대남 담화를 낸 것도 그렇지만, 수위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4일 오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종전선언은 나쁘지 않고, 정전상태를 물리적으로 끝내는 흥미 있는 제안”이라고 했다. 심지어 “좋은 발상”이라는 찬사까지 보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나온 리태성 외무성 부상의 담화는 훨씬 격했다. 그는 “종전선언 채택은 시기상조이며,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남아 있는 한 허상”이라고 단칼에 문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반나절 사이 반응이 ‘부정적’에서 ‘조건부 긍정’으로 바뀐 건데, 사실상 대남ㆍ대미정책을 총괄하는 김 부부장의 위상을 고려하면 오후 담화가 북한의 최종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돌연한 태도 변화는 문 대통령의 귀국 기자간담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일정을 마치고 귀국 항공기 안에서 마치 ‘해설사’처럼 종전선언의 의미와 배경을 상세히 설명했다.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이나 평화 협상에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한다. 평화 협상으로 들어가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평화협정’ 체결에는 거래와 양보가 필수다.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린다. 반면 남측 스스로 종전선언을 남북과 미국, 중국 등 당사국 지도자의 결단만 필요한 정치적 선언으로 인식한 만큼 북측으로서도 굳이 손해 볼 장사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은 “당장 국제사회가 대북 압박을 더욱 강화하지 않는 이상 현상을 유지하면서 물밑 제안을 기다려보자는 의도”라고 진단했다.

본질은 '적대정책' 철회... 성사 여부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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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후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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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담화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북한의 속내는 다른 데 있다는 해석이 많다. 김 부부장의 담화에선 ‘미국’이란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남조선이 우리를 자극하고 ‘이중잣대’를 갖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과거를 멀리하면”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중잣대는 앞서 15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참관한 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표현한 문 대통령의 발언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무력 도발을 같은 군사훈련으로 인정해 주면 남측과는 대화활 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정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함의에 북측의 적극적 행동 변화가 담기지 않은 만큼 남북관계의 판 자체를 깨지는 않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앞선 리 부상 담화에서는 “종전선언은 현시점에서 조선반도 정세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종전을 열백번 선언한다 해도 달라질 게 없다” 등 미국을 콕 집어 종전선언 무위론을 강조했다. 일련의 흐름을 종합하면 북한의 지향점은 결국 적대 정책 철회에 초점이 모아진다. 종전선언 카드를 남측과의 대화 유인책으로 남겨 둘 수 있지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실질적 행동조치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본격적 협상에 임하지 않겠다는 ‘완곡한’ 거절인 셈이다.

여기에 종전선언의 한 축인 미국이 종전선언을 평화협상의 입구가 아닌, 선(先) 비핵화에 따른 ‘보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성사를 낙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핵활동을 재개하고 전략무기체계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미국이 제재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며 당분간 군사적 도발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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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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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일단 북한의 강경한 입장이 다소 누그러졌다고 보고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통일부는 이날 개최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북한 취약계층을 돕는 민간단체들에 최대 1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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