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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성장이냐 분배냐…獨, 16년만에 좌파연정 집권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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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3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거리에 설치됐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 광고판이 오는 26일 차기 총리를 뽑는 총선을 앞두고 철거되고 있다. 이 광고판에는 메르켈 총리 얼굴과 함께 `나라의 어머니, 16년간 당신의 수고에 감사드린다`는 격려 문구가 적혀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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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독일 연방회의(분데슈타크) 총선을 불과 하루 앞두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16년 동안 굳건히 유지해왔던 집권 기독교민주연합(CDU)·기독교사회연합(CSU) 양당 연합이 재집권에 실패할 위기에 처했다. 올라프 숄츠(63)가 이끄는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D)이 급부상하고 녹색당도 높은 지지율을 얻으면서 기민·기사연합을 제외한 연정 구성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3일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발표한 마지막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민당은 지지율 25%를 얻어 중도우파인 기민·기사연합(23%)을 근소하게 앞섰다. 최근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사민당은 2∼3%포인트 차로 기민·기사연합을 따돌렸다. 녹색당은 16% 지지율로 3위를 차지했다.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FDP)은 12%,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10%, 좌파당은 5% 지지율을 기록했다. 기민·기사연합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2위와 20%포인트가량 격차를 보이며 앞서갔지만 소속 의원이 마스크와 관련해 거액의 중개 수수료를 챙긴 스캔들에 휩싸였고, 지난 7월 중순 홍수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지지를 잃었다.

메르켈 총리가 후임으로 지목한 변호사 출신의 아르민 라셰트 CDU 대표(60)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2년부터 CDU 부의장 중 한 명으로 재직하며 2015년 메르켈 총리가 추진한 난민 수용 정책을 지원했던 라셰트는 재산세·상속세 인상 억제, 법인세 인하 등의 공약을 앞세워 중도보수 유권자들 표심을 공략했다. 하지만 독일 최대 산업단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지사인 라셰트 후보는 환경보호보다 석탄 생산을 지지하는 정책을 내세워 기후변화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홍수 현장에서 포착된 활짝 웃으며 장난치는 모습이 지지율 하락에 결정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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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둔 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후보(왼쪽)와 아르민 라셰트 기민·기사연합 총리 후보 선거 포스터가 나란히 걸려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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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당은 숄츠 후보의 인기에 힘입어 상승세를 탔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이자 부총리 겸 재무장관인 숄츠 후보는 로봇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뚝뚝한 이미지 때문에 당초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관련해 유럽연합(EU) 차원의 7500억유로(약 1010조원) 상당 경제회복기금 조성을 두고 프랑스와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며 신임을 얻었다. 홍수 피해 당시에도 지원금을 적절히 집행하며 지지율 상승세를 탔다. 메르켈 내각에서 일하며 거둔 성과를 앞세워 숄츠 후보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그와 거리를 두며 지난 21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슈트랄준트 선거 유세 현장에서 라셰트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연설을 했다.

3위를 달리고 있는 녹색당은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경제 발전보다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청년층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녹색당 공동대표인 아날레나 베어보크 후보(40)는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70%까지 상향하고, 2030년까지 탈석탄을 완료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녹색당 지지율은 한때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최근 베어보크 후보의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지지율이 3위로 내려앉았다. 주요 정당이 모두 30% 지지율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근 여론조사기관 알렌스바흐가 조사한 결과 부동층이 40%에 달하는 만큼 26일 총선이 끝난 뒤에도 차기 총리는 당장 정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총선 1위를 기록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연정 파트너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메르켈 총리의 집권이 조금 더 연장될 수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대로 사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원내 1당 탈환에 성공하면 16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 사민당은 정책 성향이 비슷한 녹색당과 연정을 꾸릴 예정이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할 경우 극좌 성향 정당인 링케와 함께 3당 연정을 꾸리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당이 좌파 성향 정당인 링케와 더불어 진보 연합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사민당이 녹색당·자민당과 더불어 이른바 '신호등 연정'(각 정당 상징색인 적·녹·황색에 따라 붙인 이름)을 구성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경제 정책도 중도 성향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자민당이 친환경 정책을 위한 증세에 반대하며 전기차 보조금 삭감 등을 주장하고 있어 녹색당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기민·기사연합은 사민당과 녹색당이 정권을 잡으면 강경 좌파 연합 정부가 출범할 것이라며 막판 뒤집기에 나섰다. 기민·기사연합이 1위를 차지할 경우 녹색당·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볼프강 메르켈 베를린훔볼트대 교수는 "부동층이 많고 1위와 2위 간 격차가 크지 않아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막판에 부동층이 안정을 추구하는 정당에 표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CNBC는 사민당이 현재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과거 선거에서 독일 유권자들이 안정성을 선호하는 성향을 보여왔기 때문에 실제 투표 결과 사민당이 가장 많은 표를 얻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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