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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뉴스AS] 송파구청 초과·출장수당 부정수급이 노조 투쟁의 성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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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한겨레

서울 송파구청 공무원들의 출장여비 부정수급 의혹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17일 송파구청 청사.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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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흰 저희 일 다 야근으로 미루면서 그래도 같은 공무원이라고 자가격리자 관리 키트 배달했는데, 사명감으로. 들어보니 내부 고발이라는데 사실이면 내일부터 키트 배달 거부하겠습니다. 우리도 행감(행정감사)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보건소 일은 알아서 본인들끼리 처리하시길.”

지난 23일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송파구지부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이 글은 24일 오후 현재 삭제됐습니다. 글쓴이는 같은 날 <한겨레>가 보도한 송파구청의 초과근무수당·출장여비 부정수급 의혹을 취재하게 된 배경이 송파구 보건소 직원의 ‘내부 고발’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리고 ‘내부 고발’이 사실이라면, 보건소의 코로나19 관련 업무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글을 쓴 겁니다. 하지만 <한겨레>가 송파구를 취재하게 된 것은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초과근무·관내출장 실적과 수당 지급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해 그 내용을 분석한 결과 단지 송파구의 초과근무수당과 출장여비가 나머지 24개구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지, 내부 고발 때문이 아닙니다.

이 밖에도 노조 게시판에는 <한겨레> 보도와 그에 따른 구청의 후속 조처에 대한 불만이 제법 올라와 있었습니다. <한겨레> 취재에 응대하고, 지금은 부정수급 관련 후속 조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송파구청 간부를 일컬어 “본인들은 퇴직 얼마 안 남았으니, 막 지르는데 남은 직원들은 어쩌라고. 중간지문? 너무하다”고 비난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송파구청이 앞으로 초과근무 인증에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중간 지문인증을 해야 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조처에 대해 반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대부분의 자치구는 시행하고 있는 제도인데, 이로 인해 직원들이 앞으로 수당을 ‘많이’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제기하는 불만으로 보입니다. 이런 언급들을 보면, 현장에서 이뤄지는 ‘부정수급’ 관행과 인식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겨레

전국공무원노조 송파구지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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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보도가 “공무원 초과근무수당 지급기준의 문제점을 외면했다”는 불만이 담긴 글도 여러 건 있습니다.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른 공무원들의 초과근무수당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에 견줘 보상의 수준이 굉장히 낮고(9급 공무원의 초과근무시급은 최저임금보다 100원 정도 많습니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하루 1시간을 공제한 뒤 4시간까지만 인정해주고, 특별한 사정(재난 대응업무 등)이 없는 한 월 상한 시간이 있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들입니다. 이런 사안들은 이번 부정 의혹과 별개로 이미 <한겨레>가 여러 번 보도한 사안입니다. 정부도 수십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관련 기사: ‘거짓 근무’로 수당 착착 챙기는 공무원들, 왜 사라지지 않나요)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도 보도가 나온 지난 23일 오후 전화를 걸어와 “공무원의 수당과 임금체계에 많은 문제점이 있는데도 언론이 한개 구청을 타겟 삼아 보도한 것은 과했다”고 토로했습니다. 30분 넘게 이어진 통화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초과근무수당과 출장여비는 공무원들의 낮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노조들은 지자체와의 단체교섭을 통해 출장여비 지급 상한을 높여줄 것을 요구했다. 예전엔 5일치만 주다가 지금은 15일치까지 확대된 것이다. 예전엔 실적과 관계없이 정액으로 주다가, 행정안전부가 지침이나 규정으로 정액지급을 금지해, 노조가 단체교섭을 통해 확보한 것이 사라지게 됐다. 현재까지 초기의 관행이 남아있는 것이다. 불합리한 수당 관련 제도 개선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이 출장을 다녀온 대가로 지급받는 ‘실비보상’ 성격의 출장여비가 사실상 고정적으로 받아야 하는 임금에 해당하고, 이는 노조가 지자체와 싸워 쟁취한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입니다. 이 관계자는 송파구가 다른 자치구(월평균 12만원)보다 월등히 많은 월평균 26만원의 출장여비를 받는 것도 “송파구 노조가 교섭해서 얻어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송파구지부 누리집에 올라온 지난해 1월 전국공무원노조 송파구지부 새 집행부 당선 인사말을 보면, “공무원 임금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던 출장여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공무원의 삶을 더욱 옥죄려 하고 있다”며 “공무원의 실질임금을 삭감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노조의 정당한 대응을 말하는 것 같지만, 뜯어보면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정부의 통제를 노조가 앞장서 막아내겠다는 것이 노조 지부장의 취임 일성이었던 셈입니다.

공무원도 노동자이고, 공무원 노조가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노동조합인 이상, 지자체와의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을 인상시키고 처우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자체 예산에 따라 결정되는 수당의 월 지급 상한선을 단체교섭을 통해 높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당 지급 상한선을 높이는 일과 가지도 않은 출장을 갔다고 하고, 하지도 않은 초과근무를 했다고 한 뒤 수당을 부정수급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사안입니다. 상대적으로 수당을 덜 받고 있다고 해도 부정수급을 통해 이를 벌충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전국공무원노조는 “공직사회의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청산하여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민주적이고 깨끗한 공직사회를 건설한다”를 강령 1조로 삼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옹호하거나 합리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스스로 천명해두고 있는 겁니다.

사실 코로나19 대응 때문에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이 많다는 점 때문에, 이번 보도를 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일부 공무원들의 비위가 전체 공무원들의 노력과 헌신까지 헛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의 노력과 헌신에 대해 보상하는 것과 별개로, 공무원의 대대적인 수당 부정수급이 의심되는 상황을 보도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겨레> 보도 이후 김부겸 국무총리도 공무원의 수당 부정수급을 없애겠다며 대대적인 점검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4월 노원구청의 초과근무수당·출장여비 부정수급 의혹을 보도하고 두달이 지난 뒤 노원구청은 월 3억원 남짓의 수당 예산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부정수급 때문에 낭비되는 세금을 모은다면 서울에서만 연 수백억원의 예산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열악한 초과근무수당 제도 등에 의해 고충을 겪고 있는 공무원들의 처지도 노조가 앞장서 이런 부정수급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나설 때, 비로소 여론의 지지를 받아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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