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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드라마일 뿐...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 자꾸 쌍용차 노동자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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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오징어 게임>이 연일 화제다.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로는 최초의 일이다. 더구나 미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중동·중남미 지역 여러 나라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인기 몰이 중이다. 

<오징어 게임>은 거액의 빚을 진 이주노동자, 펀드매니저, 도박꾼 등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 456억 원을 두고 여섯 가지 게임에 참여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내용이다. 이 게임에서 최종 승리하면 456억 원을 차지한다. 반면, 한 게임이라도 지면 죽는다. '게임에 목숨을 건다'는 식이다.

인기는 높지만, 내용을 두고는 시청자들 사이에선 사실 호불호가 갈린다. 일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을 짜깁기했다는 비판도 있고, 일본 영화 <배틀로얄> 이후 <헝거게임> 등 넘쳐나는 서바이벌 장르의 틀을 그대로 차용해 식상하다는 평도 나온다. 또 게임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남성에 의존하는 도구적 존재로 나온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도 확실한 건 한국에서 제작된 드라마에서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물이라는 호평이다. 

프레시안

▲ 드라마 <오징어게임> 장면.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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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인생에게 다가온 '오징어 게임'

인기몰이의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독특한 '설정'이라 할 수 있겠다. 각본을 직접 쓴 황동혁 감독은 2008년에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해 2009년에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간 투자를 받지 못해 묵혀 두었다가 이제야 빛을 본 케이스다.

황 감독이 각본을 집필하던 시기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 역시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이던 때다. 주식‧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기업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때 거리로 쫓겨난 이들 상당수가 치킨집이나 피자집을 차려야 했다는 말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돌았다.

<오징어 게임> 주인공인 성기훈(이정재 분)은 드래곤 모터스라는 회사에서 16년 동안 일하다가 해고된 인물이다. 기훈이 회사에서 해고된 시기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확산되던 시기와 맞물린다. 기훈은 당시 구조조정을 당하는 게 억울해 파업에 참여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동료를 눈앞에서 잃는 일도 겪었다.

기훈은 왜 파업을 했느냐는 질문에 "잘못은 그들(경영진)이 해놓고서, 책임은 우리(노동자)에게만 지라고 하니깐 억울해서 그랬다"라고 답한다. 

파업을 했어도 해고된 기훈은 이후 생계를 위해 치킨집 등을 차렸으나 번번이 망했다. 자연히 빚도 층층이 쌓이게 됐다. 대리기사를 하고 있지만 버는 족족 은행 대출 갚느라 돈은 사라진다. 사채는 갚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가 결국 경마와 도박에 빠진 이유다.

'막장 인생'을 살던 기훈에게 다가온 마지막 '구원'의 손길이 바로 '오징어게임'이다. 선택은 자유라고 말하지만, 기훈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달리 없었다. '이기면 456억 원'이라는 슬로건의 '덫'은 매력적이었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이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

기훈의 캐릭터를 보면서 2009년 77일 동안 사측의 일방적 해고에 반대하며 옥쇄파업을 진행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당시 쌍용차는 경영진의 경영실패로 전체 5000명의 노동자 중 절반이 해고되거나 무급휴직자 신분으로 돌리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경영진은 이런 경영 위기를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지지 않았다. 노동자만 그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파업도 이들의 해고를 막지는 못했다. 길거리에 나앉은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렸고, 극단선택 등으로 30명 넘게 세상을 떠났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이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 '죽음'뿐인 상황에서, '오징어 게임'과 같은 황당한(비현실적인) 제안을 접했을때 과연 그들은 거부할 수 있을까? 

지금도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파업을 진행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는 28억 원(8월 31일 기준)이 넘는 손해배상금액이 남겨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임기 말기가 되도록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설정된 황당한 룰 아래에서 '갈 데까지 간' 사람들이 벌이는 이전투구는 오락성을 극대화한다. <오징어 게임>은 '판타지' 드라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지만, 주인공 성기훈과 같은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실재한다는 생각에 가 닿는다. <기생충>을 비롯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드라마는 물론이고 국적을 떠나 사랑받는 한국 영화, 드라마가 유독 '사회 현실'을 녹여내는 경향이 짙은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 만 하다. 

한국의 대표 부자 중 한명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징어 게임' 시청 후기를 올렸다고 한다. 정 부회장은 "'오징어 게임'을 완주하고 나니 갑자기 직쏘가 보고 싶다. 직쏘를 살려내라! 살려내라!"라고 적었다. 오락물을 즐기는데 빈부는 의미 없지만,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는 이 드라마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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