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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미국은 왜 프랑스를 배신했을까 [US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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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뉴욕=임동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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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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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변함 없을 것처럼 보였던 기존의 친밀한 관계는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이 영국, 호주와 손잡고 프랑스의 뒤통수를 세게 쳤기 때문이다.

격분한 프랑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주미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며 강한 어조로 미국을 맹비난했다. 미국은 '앞으로 더 신경쓰겠다'는 두루뭉술한 메시지만 보냈을 뿐 별다른 말이 없다.

미국 현지언론들은 오히려 프랑스의 '현실' 탓을 하고 있다. 힘 빠진 나라이면서 여전히 '강대국' 행세를 하려 했다는 지적이다. 프랑스가 화났다는 사실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지만, 미국의 배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내려놓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옳은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왜 미국은 프랑스를 분노하게 만들 결정을 내렸을까?


미국의 변심... 프랑스 "등에 칼을 꽂는 행위"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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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일일 브리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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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갈등이 시작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15일 공동 화상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3자 안보 동맹 '오커스'(AUKUS)를 발족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세 나라는 오커스를 통해 사이버, 인공지능, 수중 시스템, 장거리 공격 등 핵심 기술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고 안보 정보 및 기술 공유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오커스의 첫 구상은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호주는 2016년 프랑스와 맺었던 900억 호주달러(약 77조원) 규모의 잠수함 기술 이전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프랑스는 호주에 12척의 재래식 공격용 잠수함을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이 50년짜리 계약은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성장에 대응하는 유럽 전략의 토대가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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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가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저에서 호주와의 잠수함 건조사업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프랑스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이 영국, 호주와 함께 3국 안보 파트너십 '오커스(AUKUS)'를 체결하고 호주에 핵 잠수함 개발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프랑스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 2021.9.17/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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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발표에 프랑스는 크게 반발하며 미국과 호주에 주재하는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이날 발표 몇 시간 전까지 마크롱 대통령은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미국과 호주의 결정을 "용납할 수 없는 행위",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비난했다. 또 르 드리앙 장관은 "이중적(duplicity)이고, 경멸적(contempt)이며, 거짓말하는(lies) 동맹의 일부분일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교적 수사와는 거리가 먼 과격한 단어들이다.

호주는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호주의 모리슨 총리는 "이번 결정은 프랑스 정부에 매우 실망스러운 문제이기 때문에 그들의 실망을 이해한다"면서도 "다른 주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호주는 항상 우리 주권과 국방 이익에 따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피터 더턴 호주 국방장관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솔직하고 정직했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의 변화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국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 왜 프랑스를 버렸나...그것도 '굴욕적'인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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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공동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국과 영국, 호주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3국 간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UKUS)를 발족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3국은 오커스를 통해 사이버와 인공지능, 수중 시스템 등 군사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등 중국 견제를 위한 안보 정보 및 정보기술을 공유한다는 계획이다. 20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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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프랑스에 굴욕을 안긴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미국은 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호주가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영국과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유럽연합에서 나온 영국은 글로벌 무대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재정립해야 했다.

블룸버그는 아쿠스 협정에 대해 '영국과 미국이 태평양에서 더 많은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기 위해 호주와 군사 기밀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며 "이는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후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 온 영국을 위한 쿠데타"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가장 신경 쓰는 중국을 놓고 프랑스가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며 독자노선을 강조해 온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맹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같은 편에 속해 있었지만,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미묘하게 입장이 달라졌다. 특히 중국의 위협에 대해 미국과 같은 시각으로 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프랑스가 그 선봉에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유럽이 취해야 할 입장은 '전략적 균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밖에 프랑스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고, 지난해 12월엔 유럽연합과 중국의 투자협정 합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태평양 지역에 5000~7000명의 병력과 20~40대의 군용기, 그리고 해군 함정 7척을 보유한 유일한 유럽 국가다.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멤버 국가이기도 하다.

이같은 프랑스에 대해 미국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과거엔 강대국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은 퇴색하는 옛 제국주의 강대국들로 얼룩져 있고, 특히 프랑스는 대부분의 나라들보다도 강대국 지위에 집착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프랑스가 여전히 강대국인지에 대한 의문은 프랑스가 과거의 영광에 기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의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사건은 미국이 동맹국들을 대하는 데 얼마나 부주의하고 무자비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준다"며 "미국은 결코 이기적인 이익 추구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단 갈등 봉합... 양국 정상 "10월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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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로이터=뉴스1) 금준혁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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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유엔 총회 참석차 이번주 뉴욕을 방문했다. 그러나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만날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아예 뉴욕에 가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급속도로 냉각된 양국 관계가 심상치 않자, 일단 양국 정상들이 나섰다.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전화 통화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대화였다.

백악관과 앨리제궁은 다음과 같은 공동 성명을 내놨다.

두 정상은 프랑스와 미국의 유럽 파트너들의 전략적 이익 문제에 대해 동맹국들간 공개적인 협의를 하는 것이 유익했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앞으로 노력하겠다. 그런데 미국은 사과하지 않는다)

두 정상은 상호 신뢰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심도 있는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양국은 공동의 이해에 도달하고 추진력을 유지하기 위해 10월 말 유럽에서 정상들이 만나기로 했다. (국가간 관계를 이어가야 하니 관계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보겠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대사가 다음주 워싱턴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 고위 관료들과 집중적인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일단 외교관계는 정상화 하겠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발표한 유럽연합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틀을 포함해 이 지역에서 프랑스와 유럽의 전략적 참여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미국은 또한 더욱 강력한 유럽 방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미국도 유럽에서 프랑스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테러와의 공동 투쟁이라는 틀에서 유럽 국가들이 수행하는 사헬에서의 대테러 작전에 대한 지권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미국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대테러 지원 정도다)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6개월 뒤 프랑스 대선...마크롱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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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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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은 6개월 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민족주의자인 마린 르 펜은 이번 프랑스의 '공개적인 굴욕'을 비난한다.

일각에선 이번 미국의 배신이 마크롱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시킨 측면도 있다고 본다. 평소 더 강력하고 더 자율적인 유럽의 '주권'을 강조했던 마크롱 대통령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임동욱 특파원 dw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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