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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문 대통령의 집념, 종전선언이 실현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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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유엔 총회 연설에서 또다시 '종전선언'을 추진하자고 역설했다.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즉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 언급한 당사국들의 반응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종전선언 가능성을 논의하는데 열려 있다"고 했고, 중국은 "한반도 전쟁 상태를 끝내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북한도 "앞으로 평화보장 체계 수립으로 나가는데서 종전을 선언하는 것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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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종전선언에 대한 당사자들의 공감대는 형성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는 이르다. 북미간의 미묘하면서도 중대한 입장 차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대화에 나오고 그 대화는 "완전한 비핵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핵화에 확실히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야 종전선언에 동의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반면 북한은 "종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남아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종전선언에 앞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거나 이게 담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전선언은 "종잇장에 불과"하고 그래서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기실 이러한 북미간의 입장 차이는 이미 존재했고 또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역설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도 이 지점에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추진에 중대한 계기가 되려면 이를 위한 여건 마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말과 행동, 정책과 전략에 엇박자가 심했다.

최근에도 마찬가지이다. 종선선언의 실효성과 가능성을 높이려면 7월 27일 남북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8월 한미연합훈련 유예→남북·북미 대화 조건 조성→9월 유엔 총회에서 종전선언 제안'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짰어야 했다.

그러나 8월 연합 훈련을 강행하면서 이러한 기회는 유실되고 말았다. 필자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고 "말은 풍요롭지만 실천은 빈곤하다"고 비판해온 것도 이러한 현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일각에선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미중 정상이 모여 종전을 선언하는 대형 이벤트도 거론한다. 그러나 이 역시 희망사항이 될 공산이 크다.

북한은 코로나19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다가 도쿄 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제재도 받고 있다. 북중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참석 가능성은 더욱 낮다. 국제사회 일각에서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무엇보다도 정권의 명운이 달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이 정치적 무리수를 둘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근거는 찾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다른 당사국들이 최소한의 공감대는 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차집합을 줄이고 교집합을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4자 모두 종전선언 자체를 거부하지 않은 것이 '교집합'에 해당된다면,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 대(對) 비핵화의 갈등 구조는 '차집합'의 핵심에 해당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력한 대안은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 개시를 포함하는 종전선언과 비핵화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틀을 마련하는 데에 있다. 전자는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 의사를 보여주는 것이고, 후자는 비핵화의 희망을 되살리는 것에 해당된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비핵화 달성은 한반도 평화 실현의 핵심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비핵화 협상은 종종 있었지만, 평화협정 협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개의 수레바퀴 가운데 하나만 움직이다보니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평화협정과 비핵화의 동시적·병행적 협상이야말로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 가지. 신뢰회복 조치를 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미동맹은 전구급 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기회의 시간은 있다. 다음 전구급 연합훈련까지는 6개월 가까이 남았고 그 직전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일정을 기회로 삼으려면 한미가 내년 3월 연합훈련 유예를 결정하고 북한에 이를 통보해 '쌍중단'을 문서화된 형태로 공식화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북한이 향후 계획을 설계하는 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의 최고 군통수권자인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조속히 이에 합의하고 11월에 열릴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이를 공식화하길 바란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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