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이 순간] “서울로 병원 다니는데…노선을 끊어버렸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23일 아침 전남 보성군 보성역 승강장에서 한 노부부가 화순에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부부는 두달에 한번 서울 병원에 가는데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가 없어져 불편을 겪고 있다. 보성/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3일 아침 6시45분 전남 보성역. 배각산 뒤로 수줍게 떠오른 햇살이 승강장을 비추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첫차를 타고 학교에 가려는 학생, 추석 연휴를 마치고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 등 승강장은 이용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목발을 짚은 노부부가 서로를 의지한 채 힘겹게 무궁화호에 올랐다. 전남 화순에 있는 병원을 가려고 나선 노부부는 “두달에 한번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하는데, 한번에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가 없어져 여간 힘든 게 아니야”라며 한숨을 내쉰다.

한겨레

22일 오전 전남 보성군 보성역에서 한 시민이 광주송정역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향하고 있다. 보성/백소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민의 발’이었던 무궁화호 열차가 일부 지역에서 노선이 폐지되거나 단축되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철도공사는 운행 효율성과 수익성 제고를 위해 고속철은 늘리고, 무궁화호 운행은 줄였다. 무궁화호 일평균 이용객은 지속해서 감소해, 2005년 22만6천명에서 지난해는 11만4천명까지 줄었다. 한국철도공사는 철도 이용 수요 변화를 반영해 고속철도(KTX)는 장거리를 운행하고, 일반 열차는 주요 거점역을 중심으로 운행하는 열차 운행 및 환승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남 순천에서 출발해 서울 용산까지 달렸던 무궁화호는 순천에서 광주송정까지로 노선이 단축됐다. 화순이나 보성에서 기존 무궁화호를 이용해 서울을 갔던 이용객들은 광주송정이나 순천역에서 고속철도로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철도공사는 운행 구간이 단축된 무궁화호 이용객들을 위해 광주송정, 익산, 동대구 등 주요 거점역에서 환승해 이용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

코스모스가 핀 보성역 승강장으로 순천행 무궁화호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보성/백소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궁화호를 이용하던 고령의 어르신들에게는 이런 조처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서울로 한번에 갈 수 없을뿐더러, 고속철도 이용으로 경제적 부담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철도공사는 적자 해소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14개의 무궁화호 노선 폐지 및 감축으로 아낀 비용은 39억원이다. 국토교통부의 2022년 예산안 중 광역 교통서비스 개선을 위한 예산으로 2조4천억원이 책정된 것을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다.

보성군 토박이 안도순(67)씨는 “적자를 이유로 열차 운행을 중단하면 우리 같은 노인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고 말한다. 효율성 제고라는 열차가 이미 출발했지만, 숫자 이면의 사람을 살피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성/사진·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겨레

명봉역을 출발해 광주송정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 안. 보성/백소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광주송정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전남 보성군 노도명 일대 논밭을 지나고 있다. 보성/백소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2021년 9월 24일자<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