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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코로나19가 앞당긴 한국 대학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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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이투데이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4학기에 걸쳐 대학이 ‘휴점 개업’ 상태이다. 대학 문은 닫혀 있지만, 강의는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강의실에서 대면 수업을 안 한 지 1년 반이 넘는다. 그동안 학생들을 학교에서 만난 적이 없다. 학생들도 대학에 와 본 지 오래되었다. 2020학번 신입생이 제일 불쌍하다. 입학하고 2년이 되어 가도록 학교에 오지 못하고 있다. 선후배나 동급생이 누군지도 모른다. 대학생의 특권인 동아리, 체육대회, 종강파티, 축제와 같은 활동은 전설 속의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가끔 학교에 가면 황량한 캠퍼스가 을씨년스럽다. 학생들로 붐비던 건물과 운동장에 사람 찾아 보기 어렵다. 어느 시설 치고 이렇게 오랫동안 비워둔 곳이 없다. 그래도 망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 신기하다. 아마 대학이라 가능할 것이다.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강의를 온라인으로 전달하면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코로나19가 끝나도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까? 다시 예전으로 학생들로 북적이는 캠퍼스를 볼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소상공인을 비롯해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속으로 가장 골병든 곳이 대학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합금지 조치에서 대학은 무풍지대로 치부된다. 대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별 관심이 없다. 간간이 학생들이 비대면 강의에 불만을 품고 등록금 반환을 요구한다는 기사가 나와 눈길을 끌 뿐이다. 조용히 대학이 망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2021년 대학 신입생 충원율이 발표되면서 충격을 불러왔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학년도 전국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은 91.4%로 총 4만486명이 미충원되었다. 지방 주요 대학들은 신입생의 80%를 채우지 못하였다. 올해는 대규모 정원 미달 사태가 국공립대로도 확산되는 특징을 보였다. 2020년도에 99% 이상의 충원율을 보인 경북과 전남의 국공립대 충원율은 올해 80%대로 대폭 하락하였다. 사상 최악의 신입생 미달 사태에 충격받은 일부 국공립대에서는 총장이 사퇴하기까지 하였다. 신입생 정원의 20%를 채우지 못했다는 것은 대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이다.

아직 신입생 충원을 걱정하지 않는 수도권의 대학에서는 자퇴율 증가가 고민이다. 2020년 대학에 합격한 ‘코로나 학번’의 자퇴율은 7%에 이른다. 수험생의 선호도가 높은 명문 사립대의 중도 탈락률도 5%를 넘는다.

한국 대학의 쇠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정원 미달은 오래 전부터 예고되었다. 대학 입학연령(만 18세) 인구는 2000년 82만7000명에서 2021년 47만6000명으로 감소하여 대학정원 47만4000명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고교생의 대학 진학률이 8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신입생 충원율이 80%대로 나타난 것이 자연스럽다. 출생아 수가 1995년 71만5000명에서 2005년 43만9000명으로 급감하여 앞으로 대학의 정원 미달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국내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대학들은 외국 유학생을 유치해 대응해 왔다. 그런데 이를 코로나19가 막아 버린 것이다.

사실상 대학 위기의 뿌리는 등록금 동결에 있다. 대학등록금은 2012년 이후 10년째 인상되지 못하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대학등록금 이외에 10년 동안 가격이 안 오른 것이 또 있을까?

등록금 동결정책은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파동에 흔들리는 민심을 잡으려고 당시 여당에서 제안하여 시행되었다. 자칭 보수 정부에서 시작한 등록금 동결을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10년 동안 등록금은 제자리에 머물렀고 앞으로도 계속 동결될 것이라 예상한다.

정부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고 말은 한다. 하지만 등록금을 인상하면 정부의 재정 지원에서 제외된다. 특히 장학금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타격이 크다. 정부 지원을 포기하고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등록금을 올릴 배짱과 재정을 가진 대학은 없다.

우리 대학의 주수입원인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학의 재정 상황은 엉망이다. 재학생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대학이 매년 수십억 원에 이르는 결손을 감수하고 있다. 이런 결손이 10년 동안 누적되면 살아남을 대학이 없다. 그럼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외국인 학생들이 먹여 살렸다.

코로나19가 대학에 미치는 영향은 방한 관광객 유치가 끊어진 여행사를 생각하면 된다. 외국 유학생과 국내 신입생이 동시에 감소한 국내 대학이 벚꽃 지듯이 우수수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 유학생들이 다시 한국 대학을 찾아 줄지 의문이다. 대학의 국제경쟁력이 많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다. 물가 인상에 상응하는 운영비 지출에도 허덕이는 대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교수 급여도 동결되어 우수한 연구자를 교수 인력으로 채용할 형편이 안 된다. 요즘엔 국제 대학 평가에서 중국 대학에 밀리기 시작했다.

등록금이 동결되면 교육의 질도 동결된다. 그런데도 외부에서는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는 불만만 늘어 놓는다. 규제와 방관 속에 방치되어 망가진 한국 대학을 회생할 방도는 어디서도 논의하지 않는다. 참 안타깝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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