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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삼성 꼭 필요했나" 백신주권 없는 우리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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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영 기자]

백신은 코로나19 극복의 열쇠다. 종식을 위해서든 공존을 위해서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백신주권'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수급이 불안한 해외 백신에 의존해선 언제 닥칠지 모르는 팬데믹 위험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사용허가를 받은 21개 백신 중 국내 기술로 만든 백신은 아직 없다. 제네릭(복제약)만 주야장천 만들어낸 덩치만 커진 제약바이오업체의 민낯, 부실한 기초연구, 애매한 정부 기조 등 원인은 수두룩하다. 그러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가석방하면서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한다"는 이상한 논리까지 만들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우린 백신주권을 확보할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백신주권 없는 우리나라의 불편한 자화상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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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긴급사용허가를 받은 코로나19 백신은 총 21개다. 그중 국산 백신은 없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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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률 70%".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코로나19의 종식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월 "백신 접종률이 70%에 도달하면 집단면역이 형성돼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WHO의 전망대로라면 '포스트 코로나'는 그리 먼 미래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이 예상은 틀렸다. 현재 백신 접종률 70%를 달성한 국가는 적지 않지만,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한 곳은 없다. 가령, 세계에서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포르투갈의 완전 접종률은 84.2%(9월 21일)에 이른다.

그럼에도 하루 1000여명에 이르는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영국(65.3%), 이스라엘(63.6%) 등도 백신 접종 속도가 빠르지만 일일 확진자 수가 수만명에 달한다.

WHO의 분석이 빗나간 건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이다. 전파력이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고 돌파감염 사례가 늘면서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속도가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코로나19 완전 종식'이란 종착지가 사라지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ㆍpandemic)이 장기화할 우려가 커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부터다. 코로나19가 종식되긴커녕 확산일로를 걷자, 세계 각국은 방역 패러다임을 바꿨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는 대신 봉쇄를 해제하고 일상을 회복하려는 국가가 부쩍 늘어났다. 이른바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시대를 선언한 셈인데, 코로나19를 종식 대상이 아닌 공존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정재훈 가천대(예방의학) 교수는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종식이라면 그건 불가능하다"면서 "이제는 코로나19를 관리할 수 있는 정도의 체계를 만드는 걸 종식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6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방역과 일상을 조화롭게 만드는 새로운 방역체계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방역체계를 '위드 코로나'로 전환할 것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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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력이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집단면역 계획이 물 건너갔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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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새로운 방역 체계로 전환하는 시점은 백신 완전 접종률이 70%(9월 22일 기준 43.2%)에 도달하는 오는 10월 말쯤으로 예상된다.[※ 참고: 정부가 밝힌 새 방역체계의 핵심은 거리두기 완화를 통한 일상 회복과 치명률 관리다. 기존엔 감염률을 낮추는 데 중점을 뒀다면 새 방역체계에선 사망자와 중증환자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위드 코로나의 전제 = 하지만 위드 코로나로 진입하기 위해선 달성해야 할 전제 조건이 있다. 백신 확보다.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서 (백신의) 감염 예방률이 낮아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백신은 치명률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백신 접종률이 높을수록 중증환자 관리도 수월하다.

코로나19가 이제 독감과 같은 엔데믹(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감염병ㆍendemic)이 되면 주기적으로 백신을 맞아야 할 수도 있다. 정재훈 교수는 "접종률이 높을수록 미래 상황을 통제하는 게 쉽고, 중증환자를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서 "(코로나19와 공존하기 위해선) 코로나19가 더 이상 특별한 감염병이 아니어야 하는데, 그 열쇠가 백신에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와 공존하기 위해 백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거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백신주권'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백신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급이 불안정한 해외 백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고민거리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백신 개발 속도가 더디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은 21개(8월 10일 기준)다. 미국에서 만든 백신이 3개, 영국이 1개, 일본이 2개, 중국이 6개, 러시아가 3개, 인도가 2개다. 대만, 이란, 카자흐스탄, 쿠바도 1개씩의 백신을 개발했다.

[※참고: 1개 이상 국가에서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백신 21개를 만든 곳은 미국의 화이자ㆍ모더나ㆍ얀센,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일본의 다케타 약품공업ㆍ고베 첨단의료복합단지, 중국의 시노백ㆍ시노팜(2개)ㆍ민하이 바이오테크놀로지ㆍ칸시노 바이오로직스ㆍ안후이 지페이 롱콤 바이오파마슈티컬, 러시아의 가말레야 연구소(2개)ㆍ추마코프 센터, 인도의 세럼연구소ㆍ바라트 바이오텍, 대만의 메디젠, 이란의 시파 파메드, 카자흐스탄의 RIBSP, 쿠바의 유전생물공학센터 등이다. 그중 WHO로부터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백신은 모더나ㆍ화이자ㆍ얀센ㆍ아스트라제네카ㆍ시노백ㆍ시노팜ㆍ세럼연구소 등 7곳에서 개발한 백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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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여기에 우리나라가 개발한 백신은 없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넥신, 유바이오로직스, 진원생명과학 등 9개 기업ㆍ기관에서 백신 개발에 힘을 쏟고 있지만, 지난 8월 10일 임상3상에 돌입한 SK바이오사이언스(재조합 백신)를 제외하곤 임상1ㆍ2상에 머물러 있다. 임상 한 단계당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신주권을 확보하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가 지난 8월 5일 'K-글로벌 백신 허브화 비전ㆍ전략 보고대회'에서 백신 산업 육성 로드맵을 공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입해 글로벌 백신 생산 5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게 로드맵의 골자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내년 상반기까지 국산 1호 백신의 상용화가 기대되고 있다"면서 "늦더라도 이번 기회에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까지 반드시 개발해 끝을 본다는 각오를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참고: mRNA 백신은 바이러스의 표면항원 유전자를 RNA(DNA가 갖고 있는 유전정보에 따라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작용하는 고분자 화합물) 형태로 주입하는 백신이다. 대표적인 게 화이자ㆍ모더나 백신이다. 국내에선 큐라티스와 아이진이 개발하고 있는데, 각각 임상1상, 임상1ㆍ2a상을 진행 중이다. 반면,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임상3상을 진행하고 있는 백신은 유전자재조합 기술로 만든 바이러스 표면항원 단백질을 주입하는 재조합 백신이다.]

■이재용과 백신 역할론 =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많은 이목을 받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삼성이다. 백신 확보를 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는 이 부회장의 출소 당일인 8월 13일 청와대가 밝힌 입장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많다.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로선 이런 국민의 요구에 따라 이 부회장이 이에 부응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백신 역할론이 부상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삼성의 글로벌 네트워크다. 삼성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백신 공급 물량을 협상할 때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지난해 정부와 화이자의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의 위탁생산(CMO)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로부터 백신 원액을 받아 병에 주입하는 '완제 공정'을 담당하고 있다. 이르면 10월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한 모더나 백신이 시장에 공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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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백신 수급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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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역할은 백신 물량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백신주권을 확보하는 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생산한 모더나 백신이 국내에 공급된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백신을 위탁생산하면 원 개발자나 생산공장에서의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어 국산 백신을 개발한 이후 대량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도 "하지만 백산 개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백신 물량을 확대한다고 해도 해외 기술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복제약과 허약한 기초연구 =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내로라하는 제약바이오기업들을 놔두고 정부는 왜 삼성에 해결사 역할을 맡긴 걸까.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허약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엔 시가총액이 수조원에 이르는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주식시장 상단을 꿰차고 있다.

상위 50개 제약바이오기업의 시총 합산은 218조원(9월 7일 기준)에 달하는데, 이는 전체 시총(2448개 종목 2697조원)의 8.1% 규모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바이오의약품 수출 분야 세계 7위,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 세계 2위에 오를 만큼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한국무역협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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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숱한 제약바이오기업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삼성만 남았을까.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왜 이들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걸까. 우리나라 기업들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부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 사무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코로나19 백신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백신이다.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백신ㆍ신약을 만드는 것보다 해외 기술을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네릭(복제약)을 만드는 데 집중해왔던 우리나라로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게 당연하다."

새로운 형태의 백신이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건 '기초연구'다. 하지만 기초연구가 약한 건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의약품산업에서 기업들이 사용한 연구비는 총 1조5771억원이었다.

그중 기초연구에 쓴 비용은 8.6%(1351억원)에 불과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그동안 기초연구 투자에 소홀하다가 코로나19 이후 갑자기 새 백신을 개발하려니 힘들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화이자ㆍ모더나 등 성과를 내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화이자ㆍ모더나 백신의 원천기술인 mRNA의 연구가 시작된 건 20여년 전이다. 그동안 상업화 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꾸준히 기초연구에 매진해온 결과, 코로나19 백신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오락가락 정부 기조도 문제 = 국내 백신 개발이 더딘 데는 정부의 애매한 기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동근 사무국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백신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목표나 목적이 분명하면 어디에 돈을 쓰고 무엇을 연구ㆍ개발(R&D)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하지만 정부도, 기업도 분명한 목적이 없다. 어떨 때는 생산을 극대화하겠다고 하고, 어떨 때는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둘은 엄연히 다르고 그에 따른 대응도 다르다."

실제로 정부는 앞서 말했듯 '글로벌 백신 허브로의 도약'과 '국산 백신 개발'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분명한 성과를 내기 위해선 전략을 한곳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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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코로나19는 시작점에 불과할 수 있다. WHO는 2018년 "에볼라ㆍ사스ㆍ질병X(미지의 신종 감염병) 등 9개 감염병이 앞으로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로부터 2년 만인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쳤다. 우리가 백신주권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코로나19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란 얘기다.

송대섭 고려대(약학)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은 계속해서 나타날 텐데, 그때마다 해외 기술에 의존할 수는 없다"면서 "개발부터 생산까지 커버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야 반복되는 신종 감염병 창궐에 대비할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백신주권을 확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백신주권 확보, 한발 늦었지만 그리 늦은 건 아니다. 골든타임은 아직 남아 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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