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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오늘과 내일/박중현]文정부 자영업자 잔혹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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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은 ‘자영업 구조조정’

‘自-自갈등’으로 번지는 비극

동아일보

박중현 논설위원


‘과로사하는 자영업자가 나오겠다.’ 정부 경제정책이 시차를 두고 어떤 사회적 사건으로 이어질지 예상하는 건 경제기자를 오래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이듬해 최저임금 10.9% 인상이 결정된 2018년 7월 떠오른 섬뜩한 예감은 이런 거였다. 전년 16.4%에 이은 2년 연속 10%대 인상. 편의점주들 사이에선 이미 “아르바이트생 해고하고 부부 맞교대로 24시간 가게를 지키느라 생활이 파괴됐다”는 비명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는 ‘월급 주는 자’가 아닌 ‘월급 받는 자’의 편에 섰다.

악화한 여론을 의식해 청와대는 2019년 2월 자영업자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부산 영도에서 연탄가게를 했던 부모 얘기를 꺼내며 “저는 골목 상인의 아들이다. 여러분의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은 “길게 보면 결국은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되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편의점주들 얼굴엔 피로가 쌓여갔다. 직원이 줄어든 음식점의 서빙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자영업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주범’으로 높은 수수료와 가맹료를 받는 신용카드 회사와 편의점 본사, 임대료를 올리는 상가 주인들을 돌아가며 표적 삼아 공격했다. 그래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주 15시간 이상 일 시킬 때 줘야 하는 주휴수당을 아끼려는 자영업자들이 많아져 ‘초단시간 알바’가 저소득층 일자리의 표준이 됐다.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들을 쓰러뜨린 건 코로나19 사태였다. 작년 여름 정부의 영업시간, 모임인원 제한이 본격화하면서 손님 끊긴 노래방, PC방의 폐업이 줄을 이었다. 매출이 뚝 떨어진 음식점, 주점 주인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마다 음식배달, 대리운전에 나섰다. 이렇게 버틴 지 1년. 23년간 장사해온 마포 맥줏집 여사장은 최근 원룸 보증금을 빼서 직원들 월급으로 나눠 주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선택을 하는 주점, 치킨집 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직원들까지 최대 다수 국민에게 현금 쥐여줄 방법을 고민하는 정부, 여당이 자영업자들에게 할애한 지원금은 이들에게 계속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한쪽에선 자영업자인 택배노조 기사들로부터 집단괴롭힘을 받던 40대 자영업자 택배대리점주가 목숨을 끊었다. 현 정부 들어 합법 노조로 인정받고 목소리가 커진 민노총 가입 자영업자와 제 몸 하나 챙기기도 힘겨운 보통 자영업자 사이에 벌어진 ‘자-자(自-自) 갈등’의 결과였다.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카카오, 네이버 등 플랫폼업체들의 행태엔 문제가 있지만 최근 정부, 여당의 일사불란한 플랫폼업체 공격에서 자영업자 고통의 책임을 카드사, 편의점 본사로 돌리던 때의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올해 8월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1990년 이후 31년 만에 최저로 줄었다.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0% 선으로 낮아졌고, 10명 중 4명이 폐업을 고민하고 있어 ‘선진국 수준’ 자영업자 비중인 10%대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한국 경제가 언젠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던 ‘자영업 구조조정’에 유일하게 성공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길한 예감은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현실이 돼가고 있다. 이 모든 게 자영업자들에게 늘 미안한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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