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대장 수술한 교황 “내가 죽길 바라던 자들, 새 교황 뽑으려 했다”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신부들 대화, 예수회 매체 ‘라 치빌타…’가 공개

“역겨운 말 하는 성직자들 있어… 나도 가끔은 참지 못해” 돌직구

조선일보

지난 12일 슬로바키아를 방문했을 때 예수회 신부들과 대화를 나눈 프란치스코(가운데) 교황. /라 치빌타 카톨리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달 중순 가톨릭 내부의 반대파들을 작심하고 거세게 비판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교황은 2013년 선출된 이후 재정 투명화, 성(性) 비위 성직자 퇴출 등 고질적인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가톨릭계 내부에서는 적잖은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회 소식지인 ‘라 치빌타 카톨리카’는 지난 12일 교황이 슬로바키아를 방문했을 때 53명의 예수회 신부들과 나눈 대화를 21일 공개했다. 신부들이 묻고 교황이 답했다. 교황은 “골키퍼가 되겠다”고 했다. 공격적인 질문도 좋다는 뜻이었다.

첫 질문은 “(건강은) 괜찮으신지요”였다. 잇따른 건강 이상설에 대한 당사자의 해명을 듣고 싶어한 것이다. 교황은 “일부 사람들은 내가 죽기를 바랐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의 몸 상태가 외부에 공표한 것보다 나쁘다고 생각한 고위 성직자들이 모임을 가졌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그들은 콘클라베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콘클라베는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추기경들의 비밀투표를 말한다. 교황이 선종할 것으로 보고 후임 선출을 논의한 고위 성직자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지난 7월 초 지병 치료를 위해 대장 수술을 받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가톨릭 내부 반대파들을 격한 어조로 비판한 사실이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15일 슬로바키아 사스틴에 도착한 교황.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황은 지난 7월 초 지병인 결장 협착증을 치료하기 위해 대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열흘 만에 퇴원했다. 당초 교황청 예고보다 입원 기간이 며칠 길어지면서 교황이 고비를 맞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교황은 이때 일부 성직자들이 후임 선출을 논의했다고 말한 것이다. 올해 85세인 교황은 고령으로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거동이 불편한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교황은 자신의 개혁 노선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다소 거친 발언도 했다. 한 신부가 “심지어 당신을 이단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당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룹니까”라고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교황은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는 공격과 모욕을 당할 수도 있지만 가톨릭 교회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교회를 공격하고 모욕하는 이들은) 악마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교황은 이어 “나에 대해 역겨운 말을 하는 성직자들이 있다”며 “그들이 진솔한 대화도 없이 (나에 대한) 판단을 하면 나도 가끔 인내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어떤 이들은 내가 사회 이슈를 이야기하면서 (종교적) 거룩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하고 공산주의자라고도 비난한다”며 “그러나 나는 거룩함에 대한 책도 썼던 사람”이라고 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교황은 1282년 만의 비(非)유럽권 교황이자 가톨릭 역사상 첫 미주 대륙 출신 교황이다. 교단의 비주류였던 교황이 가톨릭의 과거사를 공개 사과하고 동성애를 비롯한 사회적 이슈에 전향적인 입장을 표시하는 행보에 대해 가톨릭 내부에서는 불편해하는 기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교황은 사제들이 라틴어를 고집하지 말고 다른 외국어를 배우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구체적으로 스페인어와 베트남어를 예시로 들며 “강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을 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