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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서 한창원 경사 “시각장애인도 경찰 민원서류 직접 작성할 권리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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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음성 서식 도입 주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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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경찰서 정보안보외사과 소속 한창원 경사가 16일 기자와 만나 ‘경찰 점자 민원서식’ 책자를 설명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서울 마포경찰서가 민원실에 비치한 ‘경찰 점자 민원서식’ 책자 표지. 조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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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6일 민원실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및 음성 민원서식’을 비치했다. 전국 경찰서 중 최초였다. 집회신고서나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는 시각장애인은 종종 있지만 이들이 직접 작성할 수 있는 서류는 없었다. 대부분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서류를 썼다. 시각장애인이 읽고 들을 수 있는 민원 서식이 놓인 곳은 현재 마포서뿐이다.

한창원 경사는 점자·음성 서식 도입의 숨은 공신이다.

마포서 정보안보외사과 정보분석팀 소속인 그는 민원실에서 우연히 시각장애를 가진 민원인을 목격한 뒤 서비스 도입을 부서에 제안했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도 ‘시각장애인’ 글귀가 적힌 종이가방을 들고 왔다. 가방에는 집회신고서, 고소장, 범죄경력조회 신청서, 정보공개청구서, 성범죄 및 아동학대 관련 범죄전력 조회 요청서 등 점자·음성 서비스가 도입된 서식 5종이 담긴 책자가 들어 있었다. “서식을 만들면서 오히려 시각장애인 권리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하는 그를 지난 16일 마포서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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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경찰서가 민원실에 비치한 ‘경찰 점자 민원서식’ 책자 표지에 16일 점자가 표기돼 있다. 조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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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조인 없이도 민원 가능
개인정보 보호에도 ‘효과적’
행정서비스 접근권 보장 기여

- 시각장애인용 서류 제작을 구상한 계기가 있나.

“지난 5월 민원실을 찾은 시각장애인을 보고 나서다. 평소 업무는 정보분석이지만 집회신고 담당 직원이 휴가나 다른 이유로 자리를 비우면 대신 민원실에 오곤 한다. 2014년 마포경찰서 정보과에 배치됐을 때 처음 맡은 업무가 집회신고 담당이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민원실을 찾은 건 5월에 처음 봤다. 어떻게 서류를 쓰려나 싶어 지켜보니, 활동보조인이 불러주는 대로 답변하더라. ‘이름’ 하면 ‘누구’, ‘주소’ 하면 ‘어디’ 식으로. 자칫 시각장애인이 전체 내용을 모른 채 수동적으로 서류를 쓰게 되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활동보조인이 잘못 적을 수도 있고, 장애인 당사자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한 답을 했는데도 수정하지 못할 수 있다. 또 범죄경력조회 문서를 쓸 때 일일이 듣고 말로 답한다면 개인정보가 제대로 지켜진다고 할 수 있겠나.”

- 평소에도 시각장애인의 불편에 관심이 많았나.

“주변에서 마주할 기회가 많지는 않다 보니 사실 큰 관심은 없었다. 오히려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기억이 있다. 경찰 일을 2010년 시작해 기동대에서 2년4개월을 보냈다. 그때 집회에 나선 시각장애인들을 종종 봤다. 경찰로서는 다수가 모이거나 행진을 하면 현장 관리를 하게 되는데, ‘우리를 왜 막냐’며 안 좋게 보시는 분들이 많더라. 이번에 민원서류를 만들면서 배운 게 많다.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이병돈 대표에게 점자 서류를 만들겠다며 조언을 구했는데 발상이 좋다며 반겨줬다. 시각장애인을 민원인, 공공 서비스의 이용자로 여겨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각장애인이라고 모두 점자를 아는 건 아니더라. 처음에는 점자만 포함했다가 장애인 단체 분들 의견을 듣고 서비스를 시범운영한 뒤 음성서비스도 제공하게 됐다.”

- 5개 문서가 점자·음성 서비스로 제공되는데.

“당사자에게 필요한 문서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많이 쓰이는 서류를 기준으로 한다면 교통 관련 민원이나 신고를 골랐겠지만 시각장애인 분들 가운데 차량 운전을 하는 분은 없지 않나. 의외로 범죄경력조회 신청서나 성범죄 및 아동학대 관련 범죄전력 조회 요청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취업 시 기관이나 기업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회신고서나 정보공개청구서, 고소장은 시민의 권리 행사를 위해 필요한 문서다.”

- 제작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제작부터 민원실 비치까지 3개월 정도 소요됐다. 조금 더 일찍 도입할 수도 있었는데, 작업 중 사무실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20명이 해야 할 일을 6명이 담당해 손이 부족했다. ‘그런 거 만들어봤자 1년에 몇 명이나 쓰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일부 있었다. 그럼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나 경사로는 왜 만드나. 다행히도 서장의 반응이 좋았다. ‘있어야 할 것이 그동안 없었다니 놀랐다’고 하시더라. 팀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팀장은 서울청에서도 정보 업무를 했던 터라 시각장애인 단체와도 인연이 있었다. 덕분에 한국장애인소비자연맹,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대한안마사협회 등의 조언을 구했다. 완벽하긴 어렵겠지만 최대한 시각장애인 분들의 접근권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 앞으로 과제는.

“도입 초기라 이용자가 거의 없다. 집회신고를 예로 들자면, 시각장애인 분들은 거리 행진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개 경찰서 이상 관할 지역을 행진하게 되면 서울청에 신고하게끔 돼 있다. 그렇다 보니 마포서에서 집회신고 서류를 접수한 사례는 아직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이다 보니 집회 자체가 없기도 하고. 앞으로 이용 사례가 늘면 지금 제공되는 서비스의 장단점을 듣고 보완해 나가고 싶다. 조언을 구한 시각장애인 단체 분의 말이 기억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있지만 문서는 없다.’ 경찰서만이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적극행정’이라는 게 생각해보면 별것 아니다. 서비스를 찾는 시민이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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