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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닭장차를 탈출한 새 ‘여름이’와 최초의 락다운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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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

7회 도살장 트럭 멈춘 세계 동물권리장전 시위



내가 처음 1인 방해시위를 한 곳은 닭을 파는 식당이었다.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식사 중인 사람들을 찾아갔다. 2019년 5월 어린이날 연휴 저녁이었다. 도살장 앞에서 살아있는 닭들을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까지 나에게 그들은 어떤 ‘뭉텅이’였다. 수천 마리의 생명이었지만, 개별적 존재라기 보다 닭이라는 하나의 종으로만 인식됐다. 나의 첫 방해시위 발언도 딱 그만큼이나 건조했다. 통계수치를 늘어놓았다. 한국에서 사육되고 있는 닭의 숫자, 그리고 도축 실적을 또박또박 읽었다. 나조차 그 숫자의 무게를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멀게 느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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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온 새 ‘여름이’


‘닭장차’라는 말이 있다. 속어로는 철망을 부착한 경찰버스를 말하지만, 승객이 빼곡한 일반 대중교통을 뜻하기도 한다. 둘 다 비좁고 불쾌한 부정적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닭장차라는 표현은 어째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수천 명의 닭들이 빽빽하게 처박혀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고 있는 도계장 앞 트럭을 본다면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그들을 고유한 개성을 지닌 존재라고 느끼기가 정말 어렵다. 그 트럭에 실린 것이 닭이 아니라 인간이었더라도 그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트럭의 철망만큼 견고한 마음의 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개월 뒤, 한 마리의 닭이 그 철창을 넘어 우리에게 왔다.

2019년 8월 말복을 앞둔 충주의 어느 닭 도살장 앞이었다. 수십 명의 활동가들이 무더위를 뚫고 말복에 맞춰 도살될 동물들의 증인이 되기 위한 비질(Vigil)을 하러 갔다. 복날은 특히나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의 닭들이 살해되는 시기다. 역시나 도계장 앞에는 수십 대의 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닭들은 귀가 아플 정도로 삐약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 목말라하는 그들을 위해 물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한 새가 필사적으로 트럭의 철창을 뚫고 뛰쳐나왔다. 새는 어리둥절해 보였다. 그는 갇혀있는 새들 사이를 혼란스럽게 배회하며 뛰어다녔다. 우리는 곧 그를 품에 안았다. 생후 30일이 채 안되는 어린 새였다. 그동안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그는 곧 품안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우리는 그 새에게 ‘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