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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줌, 17조원 들여 추진하던 기업 인수 난항… 美, 국가 안보 차원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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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실밸 레이더]

가속화된 기술 보호주의

조선일보

에릭 위안 줌 창업자 /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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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급성장해 단숨에 전 세계 화상회의 솔루션 1위 업체가 된 줌이 중국과의 관련성 때문에 미래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 정부 위원회가 줌이 약 17조원을 들여 추진하는 인텔리전트 클라우드 컨택트센터(가상 콜센터) 업체 파이브나인 인수에 대해 국가 안보 차원으로 검토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CNBC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미 법무부는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줌의 파이브나인 인수 건을 미 통신서비스 분야 외국인 참여 평가 위원회에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위원회는 미 법무장관인 메릭 갈런드가 의장으로 있다. 법무부가 직접 줌의 인수 건을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줌은 지난 7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파이브라인 주식 전량을 매입한다고 밝혔다. 파이브나인의 솔루션과 줌의 화상회의를 합쳐 고객 참여형 서비스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에릭 위안 창업자 겸 CEO는 “기업은 주로 컨택트센터를 통해 고객과 소통하는 만큼, 이번 인수를 통해 모든 기업이 고객과 연결되는 방식을 재정의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법무부가 인수건 검토에 들어가면서 줌의 미래 계획이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나스닥에 상장된 줌 주가는 전날보다 1.36% 하락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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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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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가 중국인이라서?

줌은 미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인 산호세에 본사를 두고 있다. 창업자인 에릭 위안은 중국 태생으로 현재는 미국 시민권자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몸집이 급속도로 커진 줌은 미국에서 ‘중국 기업’으로 오해받고 있다.

작년 4월 줌이 중국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줌에서 회의한 내용이 중국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캐나다의 보안업체인 시티즌랩은 줌의 실질적인 개발이 줌의 중국 법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보안을 위한 암호화키 관리 서버도 중국에 있다고 폭로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줌을 ‘중국 기업’이라고 했다. 작년 12월엔 줌의 중국인 직원이 줌 내에서 벌어진 톈안먼 사태 추모 화상회의를 방해한 혐의로 미 FBI에 체포됐다.

미국을 비롯해 독일, 대만, 베트남 등에서 보안 문제로 줌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지자, 줌은 “급작스럽게 늘어난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중국 지역 데이터센터를 늘리다가 벌어진 실수”라며 해명하고, 보안기능을 강화했다. 작년 8월 중국 시장엔 신제품 직접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당시 테크 업계에선 “에릭 위안이 중국 태생이라 손해 보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번 미 법무부가 줌의 파이브나인 인수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법무부는 FCC에 보낸 서신에서 “법무부는 (이번 인수 건이) 외국인의 참여에 의해 국가 안보 차원의 위험이 제기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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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ARM 인수를 추진 중인 미국의 엔비디아.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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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보호주의에 사라진 빅딜

최근 세계 각국은 기술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 전 세계 M&A 시장은 뜨겁다. 금융정보 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전 세계 M&A 규모는 3조9000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의 2배다. 하지만 국가가 다른 테크 기업 간 빅딜은 사라졌다. 블룸버그는 20일(현지시각) “소액 인수합병은 늘어났지만 큰 액수의 메가 딜은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500억달러(59조원) 이상 대형 M&A 건수는 작년엔 0, 올해는 1건에 불과하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5건씩 있었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국은 자국의 테크 기업이 다른 나라의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앞장서서 막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테크 기업 간 대형 빅딜은 각 국가와 기업 간 이해득실에 따라 평가되며 허가를 받는 데 오랜 시일이 겪었지만, 최근엔 이러한 현상이 더 잦아졌다”고 말했다. 공정과 공평이 중요해지면서 독과점을 막으려는 정부의 반독점 규제도 한 배경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엔비디아가 영국의 ARM을 인수하려는 건이다. 영국 경쟁시장청이 해당 M&A가 혁신을 저해하고 경쟁자들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밝혔고, EU에서도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라고 이달 초 FT는 보도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매그나칩은 중국계 사모펀드에 인수될 계획이었지만, 지난달 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가 “매그나칩 매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미국 국가안보상 위험성을 확인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정부는 밀라노에 있는 반도체 기업 LPE가 중국 선전투자홀딩스에 매각되는 것에 대해 기술 안보를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시장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일본의 반도체 업체 키옥시아와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의 합병에 대해서도 벌써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일본 전 경제장관이자 자민당 의원인 아키라 아마리는 로이터에 “미국이 (키옥시아의) 모든 것을 가져가도록 허락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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