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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파지 줍는 노인이 줄었다"…고물상까지 덮친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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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코로나19 장기화에 고물상도 경제 타격
"추석이 대목인데"…어쩔 수 없이 휴업도
사장들 "노인들 잘 안 와…매출 반토막"
노인들 발걸음 분주…"손주 용돈 벌어야"
뉴시스

[서울=뉴시스] 전재훈 수습기자 =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일대의 고물상들에 파지 등을 팔기 위한 노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경제 피해로 고물상들이 대목인 추석 연휴 기간 휴업을 결정하면서 연휴 시작 전 손주들의 용돈을 벌기 위한 노인들이 주를 이뤘다. 2021.09.17. kez@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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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민기 전재훈 수습 기자 = "이렇게라도 해야 손주들 오면 용돈도 주고 닭이라도 한 마리 시켜주고 하지. 여기까지 오는데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잖아. 명절 전에는 더 부지런해야 돼."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금요일, 직장인들이 이제 막 출근을 시작하는 이른 아침부터 서울 마포구의 고물상 4곳에는 고물을 팔기 위한 노인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매년 추석 연휴는 고물상 입장에서 대목인 기간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올해는 문을 닫기로 결정하면서 연휴 시작 전에 고물을 팔기 위해서다.

이른 시간부터 한 두명씩 꾸준히 고물상을 찾았지만 사장들은 여전히 매출 타격을 호소했다. 코로나19 사태 전과 비교하면 고물상을 찾는 사람 수도 눈에 띄게 줄었고 매출도 절반 이상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부 사장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경제 타격이 일반 기업을 넘어 고물상까지 덮쳤다는 아우성이 나왔다. 실제로 뉴시스가 돌아본 4곳의 고물상은 대체로 한산했다. 평소라면 파지와 고철 등이 수북이 쌓여있어야 할 고물상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압축장에서 한 번씩 고물을 수거해가는 기간도 기존 4~5일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10일로 늘어났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고물상을 찾는 노인들이 줄어들면서 영업 시간도 자연스럽게 변경됐다. 지난 2018년 문을 연 서울 마포구의 한 고물상은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오전 5시에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오전 8시께로 늦춰졌다. 퇴근 시간 역시 기존 오후 8시에서 지금은 오후 6시로 2시간이 앞당겨졌다.

이 고물상 사장 A씨는 지난 17일 오전 8시께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등산복 상하의에 러닝화를 신고 출근한 A씨는 노인들이 실어온 파지를 집게로 집어 꺼낸 뒤 무게를 쟀다. 고철의 경우 따로 무게를 재고 계산기를 두들기더니 사무실에서 현금을 가져와 노인들에게 나눠졌다. 한 노인은 무게 15㎏짜리 수레에 31㎏의 파지와 고철을 담아왔고, A씨로부터 현금 1만100원을 받아갔다.

A씨는 "코로나 전 새벽 5시에 문을 열 때는 이미 할머니 10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며 "코로나 이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줄었는데 저녁 시간에 사람 2~3명이 더 오는 걸 기다리기 위해 영업을 몇 시간 더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평상시에는 하루에 100여명 정도는 고물상을 찾았는데 지금은 절반도 안 된다"며 "노인들은 특히 돈도 벌고 운동도 할 겸 동네 걸어다니면서 폐지도 줍고 돈도 벌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위험해서 다들 잘 못 나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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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전재훈 수습기자 =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일대의 고물상들에 파지 등을 팔기 위한 노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경제 피해로 고물상들이 대목인 추석 연휴 기간 휴업을 결정하면서 연휴 시작 전 손주들의 용돈을 벌기 위한 노인들이 주를 이뤘다. 2021.09.17. kez@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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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운영하는 고물상의 매출 70~80%는 노인들이 가져오는 파지와 고철이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장기화로 점차 찾아오는 노인들의 수가 줄어들었고 매출도 반토막이 난 지 오래다.

A씨는 "특히 명절에는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려고 파지를 주워오는 노인들이 많았다. 코로나 전에는 명절에 약 300명이 오기도 했다"며 "고물상 입장에서도 명절은 대목인 기간인데 영업을 쉰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 상황이 힘들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012년 문을 연 마포구의 다른 고물상도 상황은 비슷했다. 파지와 고철 등을 팔러 오는 노인들의 발걸음이 듬성듬성 이어졌지만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이 고물상 사장 B씨는 "전에는 노인들이 날씨가 더워도 나오고, 명절 때는 특히 더 많이 왔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매출 타격이 크다"며 "매출이 절반만 줄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절반보다 더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B씨는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틈틈이 노인들을 상대했다. 남색 반팔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손에는 목장갑을 낀 B씨는 노인들이 가져오는 파지를 저울에 올린 뒤 무게를 확인했다. B씨의 얼굴은 금세 땀범벅이 됐지만 목장갑으로 슥 훔쳐낸 뒤 노인들 손에 현금을 쥐여줬다.

인근의 다른 고물상은 앞선 두 곳에 비해 찾아오는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적었다. 등이 90도로 굽은 할머니가 파지로 꽉 찬 수레를 끌고 들어가자 직원이 나와서 무게를 측정하고 파지더미를 옆으로 옮겼다. 이 직원이 빈 수레에 '스팸 선물세트'를 올려놓자 할머니는 "아니, 이런 것도 주느냐"고 말했다. 직원은 "명절이잖아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답했다.

이 직원은 "명절 때는 노인들이 선물을 받거나 손주들 줄 용돈을 마련하려고 더 열심히 나오니까 고물상 입장에서도 대목이긴 하다"며 "근데 코로나 이후에는 자주 오던 분들 2~3명만 계속 오고 다른 분들은 거의 안 나온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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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전재훈 수습기자 =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일대의 고물상들에 파지 등을 팔기 위한 노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경제 피해로 고물상들이 대목인 추석 연휴 기간 휴업을 결정하면서 연휴 시작 전 손주들의 용돈을 벌기 위한 노인들이 주를 이뤘다. 2021.09.17. kez@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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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제 피해로 고물상들이 추석 연휴 기간 문을 닫기로 결정하면서 고물을 팔려는 노인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추석에 자신을 찾아오는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 위해서는 고물을 미리 팔고 돈을 모아놔야 하기 때문이다.

고물상 앞에서 마주친 C(82)씨는 냄비와 옷, 고철 등을 실은 수레를 끌고 와 5000원을 받았다.

C씨는 "이렇게 해서 남편이랑 둘이 밥 먹고 손주들 용돈도 주고 하는 것"이라며 "자식들 다 키워놨는데 나한테 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래도 내 손주들은 예쁘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에 (손주들이) 올지 안 올지 모르겠는데 혹시 왔을 때 뭐라도 해주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집에 있던 옷이랑 고철들 들고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60대로 보이는 여성 D씨는 작은 손수레에 신문과 휴지심 등 파지들을 담아 왔고 고물상에서 1000원짜리 몇 장을 받은 뒤 돌아섰다.

D씨는 "이번에 우리 애기들 오면 닭이라도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 근데 이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간신히 한 마리를 시킬 수 있다"며 "그렇다고 또 손주가 여러 명인데 한 명만 시켜줄 수 있느냐. 명절에는 더 부지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minki@newsis.com, kez@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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