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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선취수수료의 늪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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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 빠진 대면채널 [비즈니스워치] 김진수 kjinsoo@finevery.com
비즈니스워치

9월24일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 계도기간이 끝난다. 금융 전반에 대한 법률이지만 보험 산업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신계약 점유율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대면채널도 관련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체 금융 민원 중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보험 산업을 볼 때 금융소비자와 긴밀한 접점에 서 있는 대면채널도 법률 시행을 계기로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규제 중심의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안정적 안착과 소비자 보호 사이의 간극이 메워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보험관련 민원이 지속되고 높은 것은 대면채널에 있는 설계사 개인의 일탈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취수수료에만 집중하는 구조가 다양한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손해보험사는 3대 진단비 중심의 장기인(人)보험 내지 운전자보험의 체결만을 강요한다. 재무설계를 표방한 생명보험사도 상담의 결론이 종신보험으로 흐른다. 이런 귀결은 설계사 개인의 선택보다는 보험사 입장에서 장기보험, 그 중에서도 피보험목적이 사람인 보험이 이익이 높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장기보험을 원하기에 해당 보험에 높은 수수료를 적용한다. 올해 초년도 모집 수수료 1200% 규제가 시행되었지만 어찌되었건 장기보험이 설계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보험사는 수수료로 대면채널에서 모집되는 계약의 집중도를 통제하고 설계사에게 장기보험을 모집해 올 것을 강요한다. 물론 설계사 입장에서도 장기보험의 선취수수료가 높기에 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장기보험을 모집할 계약자와 피보험자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신인 설계사의 정착률이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기 교육에서 장기보험만을 회수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기에 한 명의 고객을 만나 체결을 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보통 장기보험은 20년납 100세만기 등으로 모집되는데, 한 명을 고객으로 만들면 향후 해당 고객에게 또 다른 장기보험을 제안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주변 지인을 중심으로 6개월 정도 활동을 하게 되면 운이 좋아 체결률이 높더라도 이후 지속적인 신규 고객 확보에 실패한다. 이 때문에 보험사의 전속 설계사를 관찰하면 시장포화 전 살아남은 경력이 오래된 설계사와 1년 미만의 신인 설계사가 대다수며, 3~5년 내외의 중간 경력의 설계사가 매우 적다. 장기보험만을 강요하는 교육체계에서는 불완전판매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또한 최초 모집자가 사라진 '고아계약'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면 아무리 소비자 보호를 강조해도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장기보험만을 강요하여 설계사를 선취수수료의 늪에 빠트리는 것은 구조적 상품설명 부실의 위험성을 높인다. 매달 장기보험을 수납해야함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설계사는 '당장 이번 달 마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만 집중한다. 이런 구조는 설계사의 삶은 불안정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이 구조는 장기보험을 제안할 고객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데,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당장 이번 달 마감을 하지 못하면 다음 달 수수료 획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장기보험에 대한 집착은 여러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체결을 위한 절박감은 의도적 상품설명 부실이나 대납이라 불리는 특별이익제공 등 소비자 보호에 반하는 행동을 야기하는 근본적 원인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소속을 옮기더라도 선취수수료의 늪을 반복하기에 설계사도 고객도 행복해질 수 없다. 대다수 경력 및 신인 설계사를 모집함에 있어 다른 곳보다 장기보험의 수수료를 많이 지급하는 것만 강조한다. 더불어 고객 DB나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부각시키지만 결국 장기보험 모집을 강요하는 구조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마감에 지치지만 생존한 소수도 선취수수료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설계사를 늪으로 끌어들이는 관리자로 탈바꿈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면채널의 소비자 보호 활동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정리하면 보험사가 만든 선취수수료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설계사는 매달 장기보험을 체결해야 하는 상당한 압박을 받는다. 이는 설계사의 일상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고 당장 마감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장기보험을 체결해야 하는 늪으로 밀어 넣게 된다. 이 구조가 대면채널이 품은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근본적 원인이다. 이 때문에 설계사도 관리자도 불안에 시달리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그들과 관계를 맺은 고객에게 전가되어 소비자 보호를 멀어지게 만든다. 결국 아무리 소비자 보호를 외치고 강도 높은 제재 방안을 마련하더라도 설계사를 억누르는 선취수수료 구조와 장기보험 강요를 해결하지 못하면 모두가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다.

오래 전부터 어떤 보험 상품이 좋은지에 대한 고객의 질문에 농담 반 진단 반으로 '좋은 설계사를 만나는 것이 좋은 보험을 만나는 길'란 말을 많이 했다. 고객 입장에 서서 객관적으로 기존 계약을 분석하고 합리적인 보험료와 알맞은 보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어 설계사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올바른 설계가 곧 보험의 꽃인 보험금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면채널이 과연 좋은 설계사를 존재하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좋은 설계사가 존재할 수 없는 근원적 문제를 무시하면 결국 대면채널의 장기적 발전을 도모할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할 시간이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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