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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추석 선물이 설탕? 라떼는 말야"…명절 선물세트 7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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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쌀·달걀'→코로나 시대 '손 세정제'…각 시대상 반영

IMF형 실속선물 '햄+참치' 등장…코로나 시대 '비대면 선물'

뉴스1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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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달걀꾸러미→설탕→넥타이→참치선물세트→손 소독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절 선물들이다. 명절 선물에는 그 시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명절선물 트렌드를 읽으면 시대별 사회상을 엿볼 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중적인 선물로 인기가 높았던 상품은 당시 경기(景氣)와 생활습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명절 선물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했던 전쟁직후부터, 2020년 코로나19로 마스크와 손 소독제가 명절선물로 등장하기까지 7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선물 속에 담긴 정성만큼은 변하지 않는 가치다. 명절마다 반가운 이웃과 가족에게 마음을 대신 전달해준 선물세트 역사를 짚어본다.

◇ 6·25 직후 먹거리 '최고 선물'…산업화 이후 비누·치약·과자 등으로 다양화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경제와 사회 상황에 따라 명절 인기 선물품목도 달라지고 있다.
1950년대 전쟁 직후 명절선물을 주고받는 풍경도 낯설었던 당시에는 폐허 속 끼니를 이을 수 있는 식재료가 최고의 선물이었다. 집집마다 짚으로 만든 달걀 꾸러미와 쌀·돼지고기와 같이 허기를 채우기 위한 먹거리를 선물로 전달하며 어려운 시절 마음을 나눴다. 전쟁고아와 구호시설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위한 고무신과 의류도 각 구청에서 명절 선물로 전달하는 풍경이 일상이었던 시기다.

1952년 한 신문기사에는 "추석 명절은 피난생활에 시달린 서울 시민에게 반가운 가운데서도 조상을 위로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을 것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며 "서울시는 시민들의 곤궁을 다소나마 위로하는 의미에서 (극빈자들에게) 추석명절에 쌀을 선물할 것이라고 한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어 당시 명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경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1960년대를 대표하는 명절 선물은 설탕이었다. 먹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 설탕은 생필품이었지만, 쉽게 구매하기는 어려운 상품으로 지금과 위상이 달랐다. 60년대 각설탕 240개입 3상자와 설탕 집게 선물 가격이 650원으로 현재 초콜릿 1개 가격보다도 저렴했다. 1965년 한 신문에 실린 '우리들의 최고선물은 영양 많은 설탕으로!'라는 광고 속에 "선물로는 안정된 가격으로 간편하고 촉감 좋고 중량 있는 설탕이 최적이랍니다"라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산업화가 활발히 진행된 1970년대는 비누와 치약 같은 공산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값싸고 실속있는 선물이 최고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어린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종합 과자 선물세트도 이 당시 처음 등장했다. 1973년 해태·롯데·오리온이 종합 과자 선물세트는 4~5000원대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커피 선물세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개인 취향' 또는 '기호식품' 이라는 개념이 확산하기 시작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백화점 인기 상품 중에선 당시 공업화를 상징하는 양말·스타킹·손수건·스카프·장갑·넥타이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1984년 추석, 명절 선물세트의 대명사 '참치선물세트'가 처음 등장했다. 기존 조미료나 공산품 위주였던 선물세트 시장에 '고급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동원참치선물세트는 출시 첫해 추석에만 30만세트 넘게 팔려나가는 대기록을 세웠다. 88서울올림픽을 거친 이후 국민소득은 더 높아져 고급 양주와 과일·정육 선물세트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선물세트 포장과 품질이 좋아져 가격이 10만원대까지 오른 상품도 등장했다.

◇ 90년대 '프리미엄' 등장, 2000년대 '건강 선물' 인기

명절 선물세트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한 차례 전환기를 맞이한다. 사회 양극화가 시작될 무렵 백화점 중심 프리미엄 선물세트와 마트 중심 실속형 선물세트가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 인한 경제 위기는 사회 분위기를 송두리째 바꿔 놨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기업들은 명절 상여금을 없애거나 선물세트 지급을 중단하는 등 전 국민이 '전후 가장 어두운' 명절을 보냈다.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명절 선물 아니겠느냐"는 한 직장인의 푸념이 당시 신문 1면을 채우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실속 있는 선물이 대세를 이루며 참치캔·캔햄·참기름을 함께 구성한 '혼합선물세트'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백화점이 저마다 용량과 가격을 반으로 줄인 'IMF형' 선물세트를 내놓고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IMF 여파로 '복고 바람'이 되살아나면서 설탕이나 조미료와 같은 과거 인기 선물세트가 부활하기도 했다.

2000년대는 '웰빙'과 '자연주의'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시기다. 삶의 질과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명절 선물도 홍삼(건강기능식품)·와인·올리브유와 같은 식품에 집중됐다. 밀가루를 쓰지 않은 과자 등 건강 원료로 만든 먹거리도 이때 함께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정육·굴비·청과와 같은 선물세트부터 전통주나 전통장류까지 고급 식재료를 명절 선물로 주고받는 소비자가 크게 늘기도 했다. 2016년 일명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에는 5만원 미만 중·저가형 실속 선물이 대세가 됐다.

온라인 쇼핑몰과 배송이 주도한 유통구조의 변화는 소비방식의 혁신을 몰고온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시작된 비대면 라이프 스타일 변화는 명절선물을 주고 받는 방식마저 바꿔놨다. 백화점이나 마트는 온라인을 통한 선물 주고받기 서비스를 도입했고 아예 귀성 대신 고가 선물로 마음을 대신 전하려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귀성풍경이 가벼워졌다.

실제 100만원이 넘는 한우·굴비·와인과 같은 프리미엄급 선물세트가 대량 판매됐다. 올해 현대백화점에서 판매한 100만원 이상 프리미엄급 선물세트 매출은 지난해보다 80%넘게 증가했다. 코로나19 펜데믹 시대를 상징하듯 마스크와 손 세정제로 구성한 선물세트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급기야 받는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마트에서 선물을 소량씩 나눠 받을 수 있는 있는 '구독권 선물세트'까지도 등장하는 등 명절 선물세트 소비와 판매 방식이 또 한 번의 격변기를 지나고 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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