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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후견 받는다고…복지사 꿈 잃고 공무원 잘리는 피후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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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존능력 최대 발휘하기 위해 2013년 성년후견제 도입했지만

특정직업 도전 못하고 직장 잃기도…"일률적 제한은 부당"

뉴스1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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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 경증 지적장애를 가진 A씨는 2018년 가정법원에 한정후견 개시 신청을 해 한정후견을 받게 됐다. 한정후견은 장애나 치매 등으로 일상업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일상 업무 처리 능력이 완전히 상실된 성년후견과는 차이가 있다.

이후 A씨는 자신과 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지난해 사회복지사 전문학사 학위도 취득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A씨는 사회복지사 시험 자체를 응시할 수 없었다.

사회복지사법은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을 받는 사람이 사회복지사가 될 수 없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가정법원에 한정후견을 종료해달라고 신청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민법에서 후견 종료 사유를 '원인이 소멸했을 때'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법원에 해당 민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다.

# 검찰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B씨는 2016년 뇌손상을 입어 질병휴직에 들어갔다. 같은해 12월 B씨 가족들이 가정법원에 성년후견을 신청해 B씨는 피성년후견인이 됐다. 이후 2018년 남편이 회복되지 않자 B씨의 아내는 검찰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그런데 검찰은 B씨가 명예퇴직 대상자가 아니라는 것과 함께 피성년후견인이 된 2016년 12월부로 당연퇴직이 됐다고 통지했다. 우리나라 공무원법은 공무원이 피성년후견인이 되는 순간 공무원에서 퇴직한 것으로 본다.

유족들은 서울행정법원에 B씨가 당연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보수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내면서 아울러 해당 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다. 법원도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공을 넘겼다.

# 지방공무원인 C씨는 갑작스런 사고로 의식을 잃게 됐다. 가족들은 C씨 이름으로 된 임대차 계약 등 직면한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에 성년후견 개시 신청을 했다. 그런데 데 신청 이후 C씨가 성년후견 개시를 받게 되면 공무원직에서 자동으로 퇴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장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후견개시가 필요하지만 만약 후견개시 후 C씨의 의식이 돌아오면 C씨는 직업을 잃게 되는 것이다. 가족들은 후견개시 신청을 계속 해야 할지, 신청을 취하해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성년후견 시행 8년…아직도 남은 과거의 잔재

질병과 장애 등으로 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들의 주체적 삶을 더 보장하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의사결정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의 법률상 권리 제한을 중심으로 둔 금치산·한정치산제도를 대신해 도입됐던 성년후견제가 시행한 지 8년이 넘었다.

2013년 7월1일부터 시행된 성년후견제도는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의 의사와 남아있는 능력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이를 부양시키고자 하는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 전까지 시행됐던 금치산·한정치산자 제도는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의 남아있는 능력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행위 능력을 제한했다.

이와 반대로 성년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의 경우 후견인에게 포괄적 대리권과 취소권을 부여하는 성년후견,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원칙적 행위능력자로 보고 후견인에게는 법원이 정한 범위 내에서의 대리권 등만 부여하는 한정후견제 등으로 세분화해 피후견인의 개별적 상황에 최대한 맞는 후견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령에는 권리 능력 제한에 중심을 둔 금치산·한정치산제도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어, 피후견인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아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들이 앞선 사례들에서 언급한 피성년후견인이나 피한정후견인이면 특정 직업을 아예 할 수 없게 만들거나, 해당 직업을 강제로 잃게 만드는 법률 조항들이다.

과거 금치산·한정치산제도를 운영하던 시절 이들의 권리 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뒀던 조항들이 그대로 피성년후견인과 피한정후견인으로 이름만 바뀌어 남아있는 것이다.

공무원의 경우 피성년후견인과 피한정후견인 모두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고,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을 받으면 모두 당연퇴직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피한정후견까지 제한을 두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들이 나오자 올해 법을 개정해 피한정후견인을 공무원 결격사유나 당연퇴직 규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공무원만 빠졌을 뿐 변호사, 법무사, 의사 등 대부분의 전문자격사들은 피한정후견인을 결격사유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전문자격뿐 아니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2016년 논문 '피성년후견 및 피한정후견을 이유로 한 결격조항의 폐지'에 따르면 후견제도를 이용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후견인의 권리나 자격을 박탈하거나, 사업을 수행할 수 없게 하는 법률규정이 300여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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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 9일 피성년후견인 국가공무원 당연퇴직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을 심리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헌재에서는 질병으로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져 피성년후견인이 된 공무원을 당연퇴직하도록 한 국가공무원법 69조 1호 등이 헌법에 어긋나는지에 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2021.9.9/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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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후견인 일률적 제한 부당…성년후견제 취지 맞게 법률 정비해야"

전문가들은 일부 전문 자격사 같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직업들의 경우 일정한 제한을 두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후견을 받게 되는 피후견인들을 일률적으로 특정 직업이 될 수 없게 하거나 직업 자체를 잃게 되는 법조항들은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후견을 받는다고 자격이 자동으로 없어지거나, 지원 자체가 어렵다고 본 법률 조항들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실질적으로 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있는지 등을 잘 따져 판단해야지, 피후견인이라고 일률적으로 제한을 두는 것은 불합리하다. 법률이 정리돼야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성년후견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도 "형사처벌이 확정돼 직업을 자동으로 잃게 되는 케이스는 당사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피후견인들은 본인의 책임이 없는 사유로 피후견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형사처벌 대상자들과 동일하게 당연퇴직 등 직업을 자동으로 잃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급적 행위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잔존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는 후견제도의 취지상 직업 제한과 당연퇴직 등 피후견인에 대한 일률적 제한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제철웅 교수도 논문에서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 개시를 자격취득 결격 사유로 삼게 되면 힘들게 취득한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데, 후견이 종료됐더라도 이미 상실한 자격을 다시 취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피후견인은 결격조항 때문에 휴직기회가 박탈돼 휴직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불이익을 받는데, 이는 다른 질병으로 직무수행이 어려울 때와 비교하면 차별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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