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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여보, 옆에 없어서 미안해"…추석에도 가족 얼굴 못 보는 선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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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라도 상황 발생하면 특근, 고된근무와 외로움에 지친다"

"컨선 투입 늘었는데 인원이탈 속출, 처우개선 필요"

뉴스1

항해 중인 컨테이너선 모습(HMM 해상노조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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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 #. HMM 기관사 A씨는 최근 명절마다 겹치는 승선 일정에 아내에겐 못난 남편, 자녀들에겐 무심한 아버지가 된 느낌이다. 올해 추석만큼은 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내고 싶었지만, 교대할 기관사가 없어서 승선해야 했다. 다른 가족들은 연휴에 여행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데... 결국 대화의 끝은 "여보, 옆에 없어서 미안해"로 끝난다.

#. 기관장 B씨는 지난 설 연휴 중에 부산 신항에 입항했지만, 하역 작업이 불가하니 다시 출항하라는 회사의 지시에 배에서 내리지 못했다. 한국에 입항에도 코로나19를 이유로 일정 기간 하선할 수 없어서다. 출항을 앞두고 가족들이 항구를 찾았지만, 만날 순 없다. 저 멀리 펜스 뒤에서 아이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에 B씨는 눈물이 났다.

선원들은 명절이 달갑지 않다. 육상에서는 연휴를 맞아 가족·친지모임, 가족여행 등으로 떠들썩한 것과 대조적으로 선원들은 동료들과 간단히 명절을 기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코로나19로 그마저도 제한적이다.

특히 자녀와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없다는 것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B씨는 "지난 설날 가족들이 항구에 찾아왔는데도 만나지 못한 채 출항해야 했다"며 "교도소 면회보다 더한 이 상황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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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원이 화물 구역 부식된 핸드레일을 정비하고 있는 모습(HMM 해상노조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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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진 선상 생활에 외로움을 호소하는 선원들도 적지 않다. 항해사 C씨는 "육상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는 현실에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며 "친구들과 모여 술 한 잔 웃고 떠들어 본 지도 오래됐다"고 말했다.

상황 발생시 노동강도도 고되다. 명절 연휴라 할지라도 비상상황 등이 발생하면 특근수당 없는 특근을 해야 한다. 항해사는 항해 당직을, 기관사는 순찰 당직을 교대로 서야 한다. 기관사 D씨는 "지난해 추석 연휴엔 순찰 중 연료라인에서 기름이 새는 것을 발견해 수일간 작업해야 했다"며 "평소와 똑같이 일하는데 연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선원들의 근무공간은 근무지와 거주지가 결합된 형태여서 상황이 발생하면 휴식시간이 침해된다. 이 때문에 초과근무가 빈번하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해상노조가 공개한 '5월 근로시간표'에 따르면 한 선원은 한 달 간 총 313시간을 근무한 사례도 있다. 승선 기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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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선원들이 소화훈련을 하고 있다.(HMM 해상노조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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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은 통상 4개월 승선한 이후 2개월 유급휴가(한 달 6일 발생)를 갖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컨테이너선 투입은 크게 늘었는데 인원 이탈은 속출하면서 유급휴가를 쓰지 못하고 교대 승선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원들은 1년 동안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호소했다.

전정근 해원노조위원장은 "승선 중 명절 기간 일을 하면 특근인데 선원법엔 아무런 언급이 없어 선원 입장에서 명절은 아무런 보상 없는 특근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승선 중 발생하는 공휴일에 대해 유급휴가를 주는 방향으로 선원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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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이 선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고 즐거워하는 모습.(HMM 해상노조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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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생활이 힘들고 외롭기만 한 건 아니다. 좁은 공간에서 동거동락하다보니 그 어느 직업군보다 '동료애'가 돈독하다. 동료들과 폭풍우 등 선상에서 발생하는 위기를 극복하다보면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정이 쌓여 또 하나의 가족이 된다.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다른 누군가에겐 감동을 전해줄 화물을 전달한다는 보람으로 고된 나날을 이겨내고 있다.

한 선원은 "국적선사로서 우리나라 물류를 책임진다는 각오와 자부심으로 고된 생활을 버텨오고 있다"며 "코로나 이전에는 타국에 입항하면 동료들과 해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많은 선원들이 다시 찾아올 봄날을 기대하며 지금을 이겨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원들 입장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통해 처우도 개선됐다.

HMM 노사는 지난 2일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에 돌입한 지 77일 만에 육상직원과 선원들의 임금을 총액기준 10.6%(해상직 11.3%·생수비 등 포함) 인상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HMM 선원 임금이 2015년을 제외하고 6년간(2013~2019년) 동결된 점과 지난해 2.8% 인상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눈에 띄게 인상됐다.

ideae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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