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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땅값 올라 문닫는다는 청소년 쉼터, 이면엔 뿌리깊은 혐오·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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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된쉼터①] 위탁 만료 한달도 안남기고 돌연 종료 통보

이면엔 주민들 민원…"주민 설득 자치구 몫인데 역할 방기"

뉴스1

강남구청 전경.(강남구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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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1998년 자치구가 만든 최초의 구립 청소년쉼터로 설립된 강남구청소년쉼터가 시설폐쇄 위기에 놓였다. 강남 지역의 가파른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전 공간을 찾지 못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면에는 청소년쉼터를 '혐오·기피시설'로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구립 시설 운영을 위한 공간 마련이 구청의 역할임에도 자치구가 그 몫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뉴스1의 취재에 따르면 강남구는 지난달 27일 강남구청소년쉼터를 위탁 운영해온 태화복지재단에게 더 이상의 위탁계약 연장은 없으며 올해 12월까지만 남아있는 아이들을 위해 임시로 시설을 운영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위탁계약 만료일인 이달 22일이 한달도 채 안 남은 시점이었다.

강남구청소년쉼터는 구립 기관이기 때문에 구청이 나서 쉼터 사업을 유지할 부동산을 마련해야 했지만 그동안 고정된 입주 공간을 찾지 못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는 삼성동과 논현동 일대의 주택 4곳을 전전했다. 이후에도 이전 공간을 찾지 못했고 쉼터 위탁운영을 맡은 태화복지재단이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한개층(6층)을 무상으로 임대해 줘 현재까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태화복지재단은 복지관의 업무를 위해 마련한 공간을 장기간 다른 목적으로 무상 임차해 온 것에 부담을 느끼고 지난 2017년부터 구청 측에 새로운 쉼터 시설 마련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강남구는 4년이라는 시간동안 끝내 대체 공간을 찾지 못했다.

쉼터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겠다는 강남구의 방침에 쉼터 관계자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임성권 강남구청소년쉼터 사회복지사는 "그전에도 (시설 부지마련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위탁기간 만료까지 안 움직이다가 위탁 종료가 한달도 안 남은 8월27일에 시설을 폐쇄한다고 공문을 보냈다"라며 6월까지 구청과 함께 부지를 알아보고 다녔고 구청에서도 '기다려달라'는 반응이라 해법이 나올 줄 알았는데 돌연 폐쇄 결정이 내려져 황당했다"고 밝혔다.

강남구가 청소년쉼터 폐쇄 이유에 대해 표면적으로 내세운 것은 '최근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이전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구청 측은 애초에 9억원의 예산을 마련해 현재 시설을 대체할 부동산을 찾았지만 매물 가격이 오르면서 실패했고 이후에 추경을 통해 15억까지 예산을 늘렸지만 끝내 대체 공간을 찾지 못해 결국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동청소년들의 복지를 책임져야할 강남구가 구립 시설인 청소년쉼터의 운영을 땅값 때문에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장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땅값이 안 맞아서 안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일의 우선순위나 경중에 대해서 고민이 안 된 것 같다. 청소년들에게 쉼터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이해가 있다면 서울 한복판에라도 (쉼터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이어 장 교수는 "지옥 같은 가정이 있을 수 있는데 그 가정에서 맞아 죽을 때까지 살 수 없어 도망쳐 나온 아이들이 쉼터로 가는 것"이라며 "강남구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서 이렇게(폐쇄) 한다는 것은 지자체가 청소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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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청소년쉼터에 입소한 청소년들이 기초생활교육을 받고 있다.(강남구청소년쉼터 홈페이지 갈무리)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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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설 폐쇄의 이면에는 청소년 쉼터를 혐오·기피 시설로 바라보는 주민들의 차별적 시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강남구 관계자는 "그곳이 아무래도 가출청소년들을 수용하는 곳이니까 그런 곳이 자기 집 근처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해당 부서에서 여러 부동산을 돌아보면서 시설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저런 상황이 겹치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강남구와 청소년 쉼터 문제를 논의한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쉼터가 집에서 있기 어려운 아동들이 있다 보니까 가출을 했다는 생각을 하고 아무래도 어떤 사유로 인해서 집안에서 생활을 못해서 나왔으니 어른들 시각에서는 좋게 보지 않는 것 같다"라며 "강남권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쉼터 관계자들은 쉼터를 혐오·기피시설로 바라보는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이런 민원에 대해 구청이 적극적으로 나서 설득하고 해명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한다.

백현숙 서울시립은평여자중장기청소년쉼터 소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쉼터가 이전할 때 주민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설득을 통해 동의를 얻어냈다며 강남구가 주민 민원을 시설 폐쇄의 이유로 드는 것은 소극적 행정이며 핑계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백 소장은 "저희 시설도 5년 전에 주택가로 들어왔는데 앞에 빌라 주민들이 반대를 해서 설득을 했다. 시설의 아이들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여기서 공부를 하고 사회로 나가려고 하는데 어른들이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고 계속 설득을 하니 결국 주민 100%가 동의를 했다"라며 "설득을 하고 이해를 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서울시내 다른 지역에도 쉼터가 있어 청소년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청소년 문제 관련 전문가들은 여전히 쉼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존의 시설이 사라지면 결국 청소년들에게 피해가 갈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쉼터는 머무는 기간에 따라 임시(24시간~일주일), 단기(3개월 이내), 중장기(3년 이내) 세가지로 분류가 된다. 강남구청소년쉼터는 단기 쉼터로 집을 나온 청소년들을 원가정에서 분리시키고 보호라는 역할을 한다.

서울에서 남자 청소년이 머물 수 있는 단기 쉼터는 강남구청소년쉼터를 포함해 3곳뿐이다. 강남구청소년쉼터가 없어지면 서울 동부권에는 남자 청소년 단기 쉼터가 완전히 사라진다.

박건수 강남구청소년쉼터 소장은 "도움이 필요한 가정 밖 청소년들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서 갑작스럽게 폐쇄가 되는 상황"이라며 강남구의 결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한편, 강남구는 유니세프로부터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동모니터링단을 설치하고 '아동친화도시추진지방정부협의회'에도 가입을 했다. 협의회 연회비만 매년 500만이다.

이에 한국청소년정책연대는 최근 성명을 통해 "그동안 복지부동과 안일함으로 공간 확보를 하지 못한 책임을 부동산 폭등으로 돌리고 도대체 어떤 주민들이 반대했는지 실체도 없는 주민 탓을 하는 것은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아동친화도시를 하겠다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대표는 "강남구가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침묵할 경우 유니세프에 강남구의 아동친화도시 추진이 문제가 있음을 알릴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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