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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명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왜 '20년 인연' 워너미디어에 등돌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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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수현 기자] [크리스토퍼 놀란, 극장과 OTT 동시개봉 반발

넷플릭스, 거장 영화감독 계약 끌어들이며 경계 허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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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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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서 중요한 위치의 제작자, 감독, 배우들은 전날까지만 해도 최고의 영화 스튜디오와 일했다고 생각하고 잠들었다가 다음날 일어나 자신들이 하찮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화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을 제작한 유명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화계 상황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말이다. 놀란 감독은 최근 20년 가까이 손잡아온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 워너미디어와 결별했다. 그 배경에는 영화 관람객을 두고 급성장한 OTT와 극장가가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 담겨있다.


"극장 개봉 100일 동안은 OTT 공개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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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왼쪽)이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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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감독은 2023년말 공개 예정인 차기 작품을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내건 조건은 "개봉 후 100일동안은 극장에서만 상영할 것"이었다. 워너미디어가 지난해 9월 그의 영화 '테넷'을 극장과 OTT 'HBO맥스'에서 동시개봉하자 이 같은 가능성을 애초에 막겠다는 의지였다.

놀란 감독은 '극장 근본주의자'로 유명하다. 영화는 반드시 큰 스크린으로 봐야 한다는 신념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디지털 제작과 상영이 표준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70mm 필름으로 촬영하는 것을 고집한다. 놀란 감독은 대형 스크린의 대명사인 아이맥스 상영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어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놀란 감독은 워너미디어에 20년 만에 등을 돌리게 됐다. 그간 워너미디어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놀란 감독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놀란 감독은 30대 중반 신예 감독이었던 시절 워너미디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배트맨 시리즈(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만들 수 있었다. 이후 놀란 감독은 2014년 파라마운트 자본으로 '인터스텔라'를 제작할 때 계약 조건 중 하나로 워너브라더스를 어떤 식으로든 관여시킨다는 내용을 포함해 의리를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인터스텔라'는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 워너브라더스 배급으로 상영됐다.


극장가 vs OTT 대립,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는 영화관에서부터 영화를 내거는 관행을 가리키는 '홀드백'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극장가와 OTT간 대립이 심해지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는 11월 한국에 진출하는 디즈니+도 예외는 아니다. 스칼릿 조핸슨 측은 블랙위도우가 극장과 디즈니+를 통해 동시 공개됐다는 이유로 디즈니에 50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조핸슨이 극장 티켓 수익의 일정 비율을 받기로 했지만, 디즈니가 디즈니+에서도 블랙 위도우를 공개해 극장 수익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디즈니는 두손 들고 올해 선보일 영화를 자사 OTT인 디즈니+에서 동시 개봉하지 않고 극장에서 먼저 공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같은 OTT와 극장가의 대립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다만 초반에는 'OTT 콘텐츠를 영화로 볼 수 있는가'라는 원론적 갈등을 빚어왔다면, 최근에는 OTT의 힘이 커지면서 극장가가 수익성을 뺏기는 데 반발하는 형국이다. 앞서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늘리기 시작한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최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넷플릭스 콘텐츠가 수상 후보에 오르자 이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할리우드 관계자들도 "넷플릭스 콘텐츠는 영화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누누히 밝혀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갈등이 OTT의 성장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영화 제작 계약을 체결한 넷플릭스는 놀란 감독의 차기 작품 제작을 맡기 위해서도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넷플릭스는 전통적 극장영화를 만들어오던 거장 감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갈수록 OTT와 극장의 경계가 흐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승리호' 극장 개봉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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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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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4월 영화 '서복'이 이례적으로 영화관 개봉 당일 OTT업체 티빙에서 함께 개봉했다. 코로나19로 극장 개봉을 미룬 영화들이 아예 OTT로 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영화 '사냥의 시간'과 '승리호' 등이 영화관을 거치지 않고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승리호'는 넷플릭스 공개 후 첫 한 달 동안 전세계에서 2600만명이 시청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이 바뀌면서 '극장 우선 개봉'이라는 원칙이 깨졌다"며 "영화가 OTT에서 공개되기도 하는 반면, 거꾸로 OTT 오리지널 시리즈 중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OTT와 영화관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만큼, 양쪽이 상호 윈윈하는 전략을 택해야 할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김수현 기자 theksh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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