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나만의 음악 선택하고 파티같은 스몰 장례식"…계획하는 '좋은 죽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임종 앞둔 환자·노인→청장년층으로 확대…비혼·1인가구 증가 등 영향

유언장·상속·장례·유족 심리상담까지 포괄…고령화에 탄력 전망

뉴스1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김진 기자 = # '나는 햇살의 바다로 가노니, 남은 말은 바람에 속삭이세요.' 비혼주의자 여성 A씨(31)가 자신의 장례식 음악으로 선택한 노래의 가사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가까운 지인 위주로 초대해 파티처럼 밝은 분위기로 꾸밀 계획이다. A씨는 "유언장에는 유일한 혈육인 동생에게 재산을 상속하고, 바다장(葬)을 치러달라고 적을 것"이라고 했다.

# 60대 B씨와 동갑내기 친구들은 종종 수목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녀들이 매년 성묘나 벌초를 하러 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상속 문제도 관심사다. B씨는 "우리 세대는 장자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관습 때문에 부모 사후에 자녀들이 싸우는 경우가 흔했다"며 "많든 적든 살아있을 때 정리해 둘 필요성을 다들 느낀다"고 했다.

준비된 죽음, 이른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연령을 불문하고 높아지고 있다. 웰다잉은 금기시돼 온 죽음을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원하는 죽음을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개념이다.

1990년대 초 '죽음준비교육'으로 국내에 소개된 이래 웰다잉은 임종을 앞둔 환자 등을 대상으로 한 연명의료계획서나 유언장 작성 활동으로 요약됐다. 주요 연관 사례도 2009년 환자와 가족의 결정권을 우선한 대법원의 '세브란스 김할머니 판결', 2016년 존엄사법 국회 통과 등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혼주의 등 가치관 변화, 1인 가구 급증 등 핵가족체제 붕괴와 맞물리며 청장년층(20~40대)까지 웰다잉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전통적 장례문화를 과감하게 거부하는 이들은 자신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계획한다.

A씨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을 계획이라 자손이 상주를 맡는 전통적인 형태의 장례를 치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했다"며 "원하는 장례식을 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포함한 노후 대비 자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씨(27·여)는 "추모보다 손님맞이에 급급했던 조부모님 장례식을 경험하니 저런 마지막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격에 따라 천차만별인 공장식 상조서비스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스몰웨딩처럼 가족과 친한 친구들만 올 수 있는 스몰장례식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0여년간 관련 교육·상담을 진행해 온 김조환 웰다잉연구소장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도 초청될 정도로 웰다잉에 관심을 갖는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다"며 "이전에는 60대 이상 고령층이 대상이었던 반면 최근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상담을 받으러 오는 자녀도 늘었다"고 했다.

뉴스1

연명의료계획서. 뉴스1 DB © News1 박지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웰다잉의 범주도 사전(死前)·사후(死後) 준비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스타트업 빅웨이브는 이달 말 '웰다잉 플랫폼' 아이백(iback)을 출시해 별도 공증이 필요없는 음성 유언장 작성을 시작으로 향후 상속·기부 등 재산 정리, 사망신고와 각종 명의 변경 등 사후 행정절차, 유족 심리상담 등을 다룰 예정이다.

이 같은 국내 웰다잉 산업의 전망은 밝다. 빠른 고령화로 관련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임종과 무관하게 작성 가능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누적 등록자 중 60세 이상은 지난달 말 90만명으로, 2019년 8월 29만여명에 비해 3배 늘었다.

채백련 빅웨이브 대표는 "죽음은 모든 사람이 겪을 수 밖에 없는 경험인데 반해 준비된 '좋은 죽음'의 비용은 너무 높다"며 "2046년 세계 1위 초고령 국가가 될 한국에서 저출생을 넘어 웰다잉을 이야기할 때"라고 말했다.
soho0902@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