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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용광로 근처 고온과 소음 속 야근하다 사망…법원 "업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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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지난해 4월27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산재사망대책마련공동캠페인단 주최로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최악의 살인기업으로는 올해 하청 노동자 7명이 사망한 대우건설이 선정됐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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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간 용광로 근처에서 야간 근무를 해왔던 노동자의 사망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종환)는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 A씨(사망 당시 43세) 사망에 대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유족에게 지급하지 않겠다고 내린 처분을 취소하라고 20일 판결했다.

A씨가 근무하는 회사 공장에서는 용광로에서 쇠를 녹여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공정이 있었다. 이 중 A씨는 용광로 부근에서 주입기로 용해된 원료에 첨가제를 배합하고, 시료용 쇳물을 길이 1.5m의 긴 국자를 이용해 채취·검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 공장은 24시간 용광로를 가동해 용광로 근처 온도가 약 35도에 이르고, 평균 소음은 만성 소음 수준인 82dB(데시벨)에 달했다. 공장 안에 선풍기와 이동식 냉방기가 있었지만 A씨는 화상을 막기 위해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방화 도구 등을 착용한 상태에서 일했다.

A씨는 야간 근무를 하던 2019년 8월26일 새벽 0시쯤 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처치를 받았으나 같은 날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같은 해 9월6일 A씨를 부검하고 사인을 ‘허혈성심장질환’으로 판단했다. 유족은 A씨가 과로, 주·야간 교대업무 등으로 발병해 사망했다며 유족급여·장의비 지급을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업무와 사망 간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줄 수 없다”며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의 이 같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씨 업무와 사망 간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주·야간 교대근무를 오랫동안 해왔고, 일정 기간 평균 주당 59시간 이상 근무하는 등 과로 상태에 놓였다고 했다. 또 A씨가 일하던 작업장의 온도가 약 35도였고, 소음 수준도 기준치를 상회해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라 봤다. 재판부는 “질병의 발생 원인이 수행한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을 유발·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고 판시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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