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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딸 만나러 입국한 고려인 60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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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스트레스' 딸 만나려 7개월여간 수속 밟아

2주 격리기간 동안에도 "딸 가족 먹여야"…만두 조리

"코로나 시국에서 노인 부부의 의지가 만든 소소하지만 큰 감동 사연"

노컷뉴스

고려인 3세 김엘레나씨의 자녀가 최근 우즈베키스탄에서 입국한 외조부모와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 김엘레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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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3세 김엘레나씨의 자녀가 최근 우즈베키스탄에서 입국한 외조부모와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 김엘레나씨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석 연휴 가족 모이기가 어려운 가운데 한국인과 결혼한 딸을 만나기 위해 이역만리에서 건너온 60대 부부의 사연이 눈길을 끈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고려인 3세 김엘레나(39·여)씨는 20일 고향 우즈베키스탄에서 비행기를 타고 건너온 부모를 만난다. 김씨의 부모는 지난 6일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에 입국해 최근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쳤다.

김씨 부모가 한국을 찾은 건 코로나19가 전세계에 퍼지면서 앞으로 딸을 만나기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김씨는 14년 전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한국인 남자를 만난 뒤 결혼해 인천에 정착했다. 현재는 중학교 1학년 딸과 초등학교 3·4학년 아들을 둔 세 남매의 엄마다. 그는 한국어도 빠르게 배워 비교적 성공적으로 국내에 안착한 결혼이주민이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뜻하지 않은 '육아스트레스'로 고생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김씨와 김씨 주변의 삶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고향에서는 옛 친구들이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는 등 고향에 있는 가족 걱정이 커졌다. 국내에서는 각 학교에 원격수업이 시행되면서 자녀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매 끼니는 물론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초등생 아들들이 한 집에 장기간 지내면서 크고 작은 갈등도 야기됐다.

평상시라면 혼자라도 고향을 찾아가 부모와 친인척을 만나며 힘을 얻어 왔을 김씨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모든 길이 막혔다. 원격수업이 일반화되면서 남편과 자녀들만 두고 1달 이상 집을 비우는 게 쉽지 않다. 해외를 오가려면 각 나라에서 2주씩 격리 기간을 거쳐야 한다.

김씨가 고향을 가기에도, 김씨의 부모가 한국을 오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우리 정부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즈베키스탄인의 방문 허가를 내주지 않는 편이다. 코로나19가 잠시 주춤하던 올해 2월 한시적으로 국내 체류 비자 신청을 받았지만 7월부터 다시 비자 접수를 받지 않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현지도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68세인 김씨의 아버지와 63세인 김씨의 어머니는 올해 초 한국행을 결정했다. 딸 걱정과 자라는 외손주들의 모습을 앞으로 더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노컷뉴스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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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황진환 기자
김씨 부모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반 년의 시간이 걸렸다. 주변의 도움없이 경쟁이 치열한 비자 신청 단계를 거쳐 코로나19 검사와 백신 접종, 비행기 표 구매를 마쳤다.

입국에 앞서 김씨의 부모는 딸에게 숙소에 만두 소 재료와 갈비찜 재료를 미리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자가격리 기간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일부러 보관만 잘한다면 딸 가족들이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택했다.

김씨는 부모의 한국행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올해 구순인 외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며 "장녀인 어머니가 형제자매와 친척들에게 번갈아가며 외할머니를 돌봐드리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한국행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3년여 만에 부모를 볼 수 있다는 설렘과 동시에 걱정도 크다.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광보다는 김씨의 집에 지내면서 김장이나 된장 담그기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인천 디아스포라연구소 박봉수 소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국가간 왕래가 어려워지면서 타국에 사는 가족을 만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노인 부부의 의지가 만들어낸 소소하지만 큰 감동 사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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