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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엄마의 엄마다, 우리 손주 내가 먹여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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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란주의 할 말 많은 눈동자

베트남 할머니 사총사

딸 따라서 한국 온 베트남 할머니들

말 몰라도 눈치로 유쾌한 한국생활

손주 키우며 양파까기 등 부업까지

근심, 웃음, 수다로 오늘도 무사히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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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딸, 드엉후엔짱(32)은 동네 이모들의 전속 통역사다. 이모들은 한국인과 결혼해 사는 딸과 손주들을 돌보러 출동한 베트남 할머니들이다. 한국어는 아무리 외워도 금세 까먹는다. 하지만 노동과 돌봄에 단련되고 눈치에 특화된 알파우먼들에게 그깟 말 따위가 무에 대수란 말인가.

손주 돌보고, 부업까지 똘똘 뭉쳐서


새벽부터 시장골목이 베트남 말로 가득해요. 잠결에 들으면 여기가 베트남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죠. “냉장고에서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 꺼내와.” 힘차게 울리는 건 레 이모 목소리군요. “성님, 물 끓어!” 하이 이모 목소리는 더 우렁차서 골목 잠을 다 깨울 정도죠. 바지런한 이모들이 벌써 다 나왔나 봐요. 한국 상인들이 채 나오기 전 시장골목은 베트남 사람들 차지예요. 원래 고향에서부터 새벽을 열던 사람들이거든요.

우리 동네에 베트남 이모들이 열댓 분쯤 계시는 것 같아요. 사총사는 그중 가장 똘똘 뭉쳐 다니는 이모들이죠. 레 이모는 손주 셋을 키워요. 딸이 아파서 돈을 못 버니 이모가 악착스레 벌어야 손주들 배를 채워줄 수 있대요. 집 나간 ‘사위 놈’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대요. 이모가 보는 앞에서 딸 머리채를 휘어잡고 머리를 바닥에 짓찧어 피가 줄줄 흐르게 했던 놈이거든요. 지금 이모는 한 가지만 생각한대요. 내 새끼들 내가 먹여 살려야 한다!

하이 이모는 사위 시집살이가 아주 된통이죠. 사위는 밥이 질면 질다고 타박, 되면 되다고 욕하고 소리지른대요. 이모는 사위 눈치 보느라 밥을 굶을 때도 있어요. “제 새끼들 키워 줄 때는 조용하더니 애들 좀 큰 뒤로는 장모 따위 필요 없다는 거지, 그놈을 아주 요절을 내야는데!” 이모는 우리 앞에서만 큰소리지 집에서는 꾹꾹 참는 것 같아요. 다 딸 때문이죠. 딸이 엄마 편 든다고 사위랑 싸우는 꼴 보기 싫어 이젠 정말 가야겠다 생각한대요. 하지만 기다리는 이 하나 없는 고향에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죠.

뚜엣 이모와 란 이모는 손주들이 아직 어려요. 딸네 부부 아침 먹여 출근시키고 나서 아이들을 깨워요. “세수, 세수, 먹어, 먹어.” “와~이, 밥.”(외할머니, 밥 주세요) “메, 고기.”(엄마, 고기 주세요) 메는 베트남 말로 ‘엄마’라는 말이지만, 손주는 제 엄마가 하는 대로 할머니를 메라고 불러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모는 신경도 안 써요. 아침마다 아이 머리를 곱게 땋아 예쁜 방울로 묶어주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죠. 버스도 택시도 탈 줄 모르는 이모들이지만 골목길은 손바닥처럼 훤히 알아요. 식구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혼자만 말을 알아듣지 못해 멀뚱하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래요. “힘들기는! 다 내 새끼들 위한 일이니까 견뎌야지.”

란 이모가 김치찌개, 미역국, 콩나물국 다 끓일 줄 안다고 자랑하고 있어요. 뚜엣 이모는 그 소리에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이고요. “성님, 누구한테 배웠수?” “배우기는! 딸 하는 거 보고 따라 했지. 사위도 잘 먹어.” “그 사위 참 착하기도 하네! 우리 사위는 음식 투정 말도 못 해. 베트남 음식이라면 아주 질색이고.”

오십대 초반에서 육십대까지 나이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한국살이도 4년에서 13년까지 다양한 이모들이 늘그막에 만나 절친이 되었어요. 이모들은 전기 멀티탭 조립하는 회사에서 부업하다 만났대요. 한 달 내내 일해도 고작 20만~30만원이지만 그 돈은 이모들에게 생명줄이거든요. 요즘은 뭉쳐 다니며 양파 까는 일을 해요. 손을 재게 놀리면서도 수다 떨며 나름 정보수집도 한답니다.

“돼지볼깃살 달라고, 엉덩이 팡팡”


지난번 네 이모를 모시고 코로나 백신 접종하러 갔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요. 이모들은 사람 많은 병원에서 누구 하나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서로 옷자락을 붙들고 한 덩어리로 붙어 다녔어요. 그 모습이 한없이 귀여웠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보탰어요. “한국 사람들 많은 데서 거리두기 잘하고 질서 지켜야 해요.” 하나라도 잘못되어 백신을 못 맞을까 봐 이모들은 바짝 긴장했어요. 접종 전에 문진하는데, 평소 복용하는 약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들 목이 움츠러들었죠. 지병 두어 개씩은 족히 달고 사는 이모들이지만 자기 병명도, 병원 이름도, 먹는 약이 뭔지도 잘 몰랐거든요. 간신히 필요한 절차를 다 마치고 나니 정말 파김치가 되었어요. 지친 이모들은 목이 말랐지만 책잡힐까 걱정에 자리에 꼭 붙어 앉아 있었어요. 정수기를 흘낏거리며 서로 눈치만 찡긋거렸죠. 결국 레 이모가 살그머니 일어나 까치발로 오가며 물을 배달합니다. 제비처럼 물을 받아먹는 세 동생 얼굴에 짓궂고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어요. 당신들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다는 것이 좋았던가 봐요.

사는 이야기를 다 하자면 근심이 열 보따리지만, 사총사가 모여 수다 떨고 푸념하고 어리광 부릴 때는 꼭 소녀들 같아요. “성님, 이거 봐. 나 이빨 빠졌어.” “아이구, 고기 좋아하는 사람이 큰일났네. 쯧쯧.” “어제 손주딸이 없어서 나 혼자 정육점 갔거든. 그런데 돼지족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내 넓적다리를 툭툭 치니 그걸 알아듣더라고, 하하.” “나는 말이야, 돼지볼깃살 달라는 말을 못 해서 내 엉덩이를 쑥 내밀고 팡팡 쳤다니까! 와하하하.”

사총사는 추석 때 같이 무엇을 해 먹을까 궁리하고 있어요. 딸 부부는 아이들 데리고 시가로 갈 테니 이모들은 잠시 해방이죠. 딸이 졸라서 같이 간 적도 있지만 이제 그런 불편한 자리는 절대 사양이래요. 사위 눈치 안 보고 원 없이 자유를 즐길 거라나요. 긴 추석 연휴에 배고픈 입을 벌릴 손주들에게 무엇을 먹여야 하나, 레 이모 마음속에 걱정이 스쳐 갔지만 그 걱정은 잠시 미루기로 했어요. 오늘은 오늘 걱정만으로도 차고 넘치니까요. 엄마들의 엄마들이 겪는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갑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꾼 . 국경을 넘어와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주민들의 그 이야기를 풀어내 당사자 시점으로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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