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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드로잉으로 만나는 거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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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작화랑 '원로작가 드로잉&판화전'

박래현부터 박서보·이우환·서세옥

전뢰진·이숙자·김영원의 드로잉도

서울경제


미술의 가치는 ‘유일성’으로 인해 더 높아지지만, 예술품을 열망하는 대중으로의 '확장성’을 고려해 탄생한 판화는 향유의 폭을 넓혔다. 앤디 워홀이나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팝아트(Pop Art)와 관련된 작가들이 판화를 주요한 수단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판화는 단순히 이미지를 복사하듯 찍어내는 게 아니다. 판화 또한 작업의 한 갈래로 간주하기에 작가는 친필 서명을 남기며, 몇 점을 제작했는지 에디션 관리를 철저히 한다.

기법도 중요하다. 한지의 물성에 행위의 과정을 더해 작업하는 박서보(90)의 작품은 그저 매끈한 평면이 아니다. 특히 1990년대 후기 묘법 연작은 겹겹이 쌓아올린 한지를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밀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하기에 그림에 밭고랑 같은 미세한 굴곡이 촘촘하다. 종이나 동판을 이용해 부조(浮彫) 같은 입체적 화면을 만드는 ‘믹소그라피아’ 판화기법이 박서보 작품을 판화로 제작하기에 적합했다. 믹소그라피아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렘바갤러리의 루이스 렘바가 창안해 국제 특허를 낸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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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청작화랑의 ‘원로작가 드로잉&판화전’에 선보인 박서보의 2002년작 ‘묘법(Ecriture) No.205’는 렘바 갤러리 공방에서 직접 제작한 판화다. 선명하게 붉은 색감에 한지층이 밀리고 쌓여 이룬 도톰한 선이 확연히 드러난다. ‘단색화’ 열풍과 함께 박서보 작품의 가격이 오르면서 판화 가격도 동반 상승해 최근 경매에서는 3,000만~4,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35년 전통의 청작화랑은 오랜 인연을 이어온 원로와 거장들의 판화·드로잉을 통해 미술 저변을 확대하고자 원로작가 8명의 작품을 모아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한지에 먹으로 그리는 서세옥(1929~2020) 작품의 농담과 번짐 효과, 정제된 붓질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이뤄낸 이우환(75)의 점 작품 ‘조응’의 판화도 렘바갤러리 공방의 믹소그라피아 기법으로 만날 수 있다. 서세옥·박서보·이우환은 김창열과 함께 지난 2002년 한국판화미술진흥회의 특별전 의뢰를 받아 이같은 한정판 판화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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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1920~1976)의 1971년작 판화도 주목할 만하다.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아내로 알려졌던 박래현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통해 재조명받았다. 현대적 한국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 속에 콜라주와 타피스트리 등 다양한 재료적 실험을 넘나든 작가라 에칭기법의 판화에서도 깊이감이 배어난다.

구상과 추상의 공존을 꾀한 김흥수(1919~2014)의 대표작도 판화로 선보였다. 원로조각가 전뢰진(82)의 드로잉은 묵직한 돌조각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가벼운 선이 인상적이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의 조각가 김영원은 캔버스 위에 손으로 유화물감을 휘저은 ‘기(氣) 드로잉’을 내놓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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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의 화가’ 이숙자는 푸른 보리밭과 누런 보리밭을 그린 판화와 더불어 여성 누드 드로잉을 함께 전시했다. 몇 개 되지 않는 선으로 인물의 근육과 특징을 정확해 묘사해 필력을 과시한 작품들이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원로 작가들의 강한 영감과 섬세한 감각, 풍성한 감성이 어떻게 이지적인 예술로 승화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10월5일까지.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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