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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배고픔에 연휴가 있나요"…탑골공원 담장에 줄지어 앉은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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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성시호 기자,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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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7시 30분 경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 무료급식소 배식을 기다리며 줄지어 앉아있다/사진=성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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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북문 앞. 공원 담장을 따라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100여미터에 이르는 줄의 가장 앞쪽으로 걸어가니 원각사 무료급식소 입구가 나왔다.

긴 행렬은 오전 8시에 시작되는 무료 아침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줄의 가장 앞쪽에 앉은 한 노인에게 몇시부터 나와 있었나 묻자 그는 "새벽 6시"라 답했다.

무료급식소 간판이 걸려있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25평 남짓한 주방에 남성 1명과 여성 3명이 아침식사로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사람 몸통만한 밥솥 2개가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가 있었다. 밥 한통은 벌써 조리대 위로 옮겨졌다. 밥통에서 새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취재진은 이날 오전 7시40분부터 오후 1시까지 노인들에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일일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1992년부터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해 온 이곳은 코로나19(COVID-19) 때문에 각종 공공시설이 문을 닫아도 하루도 빠짐 없이 아침·점심 배식을 하고 있다.


자그마한 주먹밥…"이걸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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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7시30분쯤 손영화씨가 밥을 버무리고 있다. /사진=성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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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요? 앞치마 입고, 장갑은 저 선반에 (있어요). 빨리 버무려서 포장해야 돼."

인사를 나눌 틈도 없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손영화씨(67)의 다그침에 서둘러 앞치마부터 꺼내 입었다. 아침메뉴는 주먹밥이다. 손씨는 조리대 위에 올려진 밥에 참기름과 양념을 뿌린 뒤 버무렸다. 버무려진 밥을 자원봉사자 이순자씨(81·여성)가 어른 주먹 한개 반 정도의 크기로 뭉쳐 주먹밥으로 만들면 자원봉사자 3명이 단무지와 65ml짜리 요구르트를 비닐봉투에 포장했다. "주먹밥이 크다 "는 쥐재진 말에 손씨는 "하루에 이걸로만 끼니를 때우는 어르신들도 많아 일부러 크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날 아침만 주먹밥 200인분을 준비했다. 오전 8시30분쯤 주먹밥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노인들이 일렬로 늘어섰었다. 손씨는 주먹밥을 하나씩 건냈다. "공양 받으십시오"란 간단한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줄지어 선 사람들 사이에 계절에 맞지 않게 겨울 외투를 입은 노숙인들도 보였다. 그들은 차례로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아침식사를 받았다. 배식은 10분 만에 끝났다.


코로나19로 자원봉사자 줄어..."일정이 빡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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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준비된 밥을 취재진이 직접 도시락 용기에 퍼담았다. /사진=성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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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배식을 무사히 넘겼지만 정말 고된 일은 이제 시작된다. 손씨, 자원봉사자 3명과 쉴 틈도 없이 점심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부엌 한켠에 불려둔 쌀을 빈 밥솥에 들이부었다. 자원봉사 3일차를 맞은 A씨(61·남성)는 "어제는 몇명 더 있어서 조금 쉬었는데 (오늘은) 조금 빡빡하다"고 말했다.

손씨도 일손 부족이 가장 큰 고민이다. 코로나19 전에는 자원봉사자가 하루에 최대 20명까지 몰려들었다. 이제 식사를 돕는 봉사자는 한 자리 수에 불과하다. 손씨는 "오늘 취재진이 봉사를 안 도왔다면 큰일났을 것"이라며 "와줘서 다행이다. 배식시간이 늦어지면 큰일 난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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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황승리(20·여성)씨가 반찬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성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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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메뉴는 햄 양념밥과 어묵양배추볶음, 미역국이다. 손씨는 밥솥에서 막 나온 밥에 볶은 햄조각과 참기름을 버무리며 "코로나19로 좁은 실내에서 단체로 식사를 하기 어려워지지 않았나"라며 "식사를 전부 도시락용 일회용기에 담아서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약 300인분에 달하는 밥과 국, 반찬을 용기에 나눠담고 일회용 숟가락과 요구르트도 비닐봉투에 담았다. 식사 준비는 배식시간인 오전 11시30분을 불과 10분 앞두고 마무리됐다. 가스레인지와 밥솥 열기로 달아오른 주방에서 음식을 포장하느라 바쁘게 움직인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에는 구슬땀이 흘렀다.


"노인들이 배식소에 놀러 오는 게 아니다"…추석 연휴도 쉬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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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준비한 17일 점심식사 /사진=성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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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먹밥을 나눠주고 난 뒤 흩어졌던 급식소 앞 줄은 시간이 점심 배식시간인 11시 30분이 가까워지자 다시 길게 늘어섰다. 손영화씨와 자원봉사자들은 줄지어 기다리던 노인들에게 합장 인사를 한 뒤 도시락을 건넸다. 도시락은 15분 만에 모두 떨어졌다. 줄 맨 뒤에 있던 노인들 20여 명은 "죄송하다. 도시락이 다 떨어졌다"는 손씨의 외침을 듣고 익숙한 듯 발길을 돌렸다.

도시락을 받아든 노인들은 종로구청이 탑골공원 내에 임시로 마련한 야외 테이블 앞에 앉아 밥을 먹었다. 할머니 A씨(83)에게 밥맛이 괜찮은지 묻자 "자식들도 연락 끊긴지 오래인데 이렇게라도 따뜻한 밥을 먹어서 좋다. 코로나가 무섭다지만 우리는 하루 굶는게 더 무섭다"는 말을 남기며 남은 미역국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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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12시쯤 노인들이 무료배식소에서 나눠준 도시락을 먹고 있다. /사진=성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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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씨는 "추석은 안 쇠냐"는 질문에 "짬짬이 쇤다"며 "이 소임을 맡고 있는 한 무료급식이 우선"이라 말했다. 이어 "배식은 무조건 365일 한다. (노인들이) 놀러 오시는 것도 아니다. 형편이 넉넉한데도 이런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은 극소수일거고, 나머지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이것만 보고 오는건데 주다말다 할 수는 없다. 어떤 방법을 쓰든 밥을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추석연휴 첫 날인 내일도 급식소는 오전 8시에 주먹밥을 나눠준다. 2층 주방에서는 다음날 반찬인 애호박을 써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성시호 기자 shsung@mt.co.kr,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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