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쿠데타 발발’ 230일, 미얀마 시민들이 남긴 생존의 기록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가 발발한 지 어느덧 230일이 흘렀다. 강력한 보도 통제로, 미얀마의 비극을 해외 언론이 직접 취재할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 다수의 현지인 제보가 있더라도 한국의 6배에 달하는 미얀마 전역의 소식을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꾸준히 이들의 투쟁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표출된 시민들의 용기 덕이다. 모든 검문소에서 시민들의 휴대폰 검사가 진행됐음에도, 그 안에 쿠데타와 관련된 사진이 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이들이 체포됐음에도, 미얀마인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SNS에 남긴 사진들은 민주화에 대한 미얀마인의 열망을 세계에 절박하게 알리고 있다.

한국일보

지난 2월 27일 체포돼 이송 중인 미얀마 양곤 반군부 시위대의 모습.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1일 쿠데타 발발 직후, 시민들은 대규모 거리시위로 군부에 저항했다. 그러나 같은 달 19일 양곤에서 먀 트웨 트웨 킨(20)이 군경의 실탄에 사망한 뒤 상황은 급변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들불처럼 커졌고, 군부는 결국 27~28일 18명의 시민을 사살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대학살의 전조가 된 이른바 '피의 일요일'로 불렸던 당일, 군부에 대항하다 체포된 시민들이 군용 트럭의 틈새로 민주화의 상징 '세 손가락' 경례를 하는 이 사진은 다가올 본격적인 비극을 암시했다.

한국일보

지난 3월 16일 미얀마 양곤의 한 도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가 불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피의 일요일 사흘 뒤인 지난 3월 3일 군부는 최소 38명의 시민을 학살한 '검은 수요일'을 일으켰다. 이어 같은 달 중순 미얀마 최대 도시이자 저항의 중심지인 양곤 흘라잉타야 등에 계엄령을 발동했다. 거칠 것이 없어진 정부군은 가장 먼저 도심 곳곳에 군병력 이동을 막기 위해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불태웠다. 16일 아침, 폐허가 된 양곤의 모습을 찍은 시민은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일보

지난 4월 17일 미얀마 만달레이 군경이 반군부 시위 과정에 부상 당한 시민들을 모처로 옮기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학살의 여파는 정부군 내에 광기를 주입했다. 두 달 만에 군경의 총탄에 600여 명이 사망했다. 도시의 시민들은 게릴라전을 벌였고, 소수민족 반군들은 국경지대에서 재래식 전투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류탄과 기관총 등 중화기로 무장한 군경은 막강했다. 미얀마 최대 명절인 '띤잔' 연휴였던 지난 4월 17일, 제2의 도시 만달레이 시민들의 죽음은 그 전력 차를 여실히 증명했다. 군경은 학살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상자들을 짐짝처럼 모처로 끌고 갈 뿐이었다.

한국일보

지난 5월 27일 미얀마 정부군의 공격에 초토화된 카야주 한 교회 내부의 모습.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무기가 없는 민간인들은 군의 대대적인 무장 저항세력 토벌 작전 이후 도망 다니기 급급했다. 반군의 정보를 주지 않으면 다짜고짜 구타하고 체포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처음 선택한 도피처는 중립지대인 교회와 성당이었다. 하지만 악랄한 군부는 종교 시설마저 초토화시켰다. 지난 5월 27일 카야주의 한 교회에 피신해 있던 500명의 민간인들은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밀림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일보

지난 6월 30일 정치범의 가족들이 미얀마 인세인 교도소 앞에서 석방을 기다리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미얀마 사태 해결에 소극적이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권이 군부에 대한 경제제재를 이어가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이 특사 파견을 통한 중재를 시도했지만 군부는 버티고 시간을 끌며 권력을 놓지 않았다. 유일한 화해의 제스처는 정치범 일부를 석방한 일이다. 쿠데타 후 수감된 500여 명의 민주화 인사들이 석방된 지난 6월 30일. 교도소 앞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았다.

한국일보

지난 7월 29일 미얀마 몬주의 한 시민이 아이를 이고 대피 중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이 미얀마를 버린 것일까. 지난 7, 8월 미얀마는 군부의 만행 속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대확산되는 이중고에 놓였다. 여기에 남부 지역을 강타한 폭우는 남아 있던 가녀린 삶의 의지도 앗으려 했다. 하지만 같은 달 29일 폭우로 집을 잃은 몬주의 한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머리에 인 그는 범람한 강물을 뚫고 임시 대피소로 발걸음을 이어갔다. 당시 수재민을 도운 건 이웃들뿐이었다. 군정은 반군부 지역에서 발생한 자연재해에 대해 단 한 줄의 성명도,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한국일보

지난 7일 미얀마 사가잉주에서 진행된 NUG 지지 촛불집회의 모습.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의 성공 여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민주진영의 핵심 축인 국민통합정부(NUG)와 전국 각지의 소수민족 반군, 시민군 모두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지난 7일 군부를 향해 '통합 저항전'을 천명했다. 아직 전국 규모의 동시 전투는 발생하지 않고 있으나, 포기할 단계 역시 아니다. 선전포고가 발표된 지난 7일, 최대 격전지인 사가잉주 주민들이 밝힌 촛불은 그 희망의 뚜렷한 증거다.

18일 현재 미얀마 정치범 지원협회가 추산한 반군부 활동 사망자는 최소 1,105명에 달한다. 불법 체포돼 이름 모를 장소에 구금된 인원은 8,223명이며, 이들 중 1,984명은 이미 형사처벌 절차가 진행됐다. 마궤주 등에선 선전포고 직후 시작된 군부의 무자비한 반군 진압 작전으로 민간인 인명 피해가 다시 폭증하고 있다. 이웃들이 목숨을 잃으니 반군부 무장 투쟁의 수위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권력을 향한 추악한 욕망과 민주화를 위한 염원, 양 극단의 생사결(生死決)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