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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5조 사기 조희팔 사망 10년…"생존 정황 있다" 쫓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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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유사수신업체를 통해 5조원대 사기 행각을 벌인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은 공식적으론 2011년 12월 19일 사망했다.

“조희팔이 2011년 12월 18일 저녁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의 한 가라오케에서 내연녀 등과 음주를 한 뒤 호텔 방으로 갔다가 쓰러졌고, 인근 중국 인민해방군 제404의원으로 이송돼 이튿날 오전 0시 15분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졌다.”(2016년 6월 28일 김주원 대구지검 1차장검사)

이같은 검찰 발표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조희팔이 살아있다고 믿고 그를 추적한다. 피해자 모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의 김상전 대표는 1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금도 유의미한 생존 시그널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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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이 2011년 12월 중국에서 숨진 뒤 치렀다는 장례식 장면. 투명한 관 덮개 아래로 조희팔의 얼굴이 보인다. 사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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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단군 이래 최대 5조 사기극 ‘조희팔 사건’, 그 후



앞서 경찰은 2012년 5월 “조희팔이 웨이하이 한 호텔에서 쓰러진 뒤 출동한 현지 120구급대의 응급진료기록과 사망진단서, 현지 의사의 진술과 장례식 당시 영상 등을 종합할 때 조희팔이 사망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까지 확인했다”(박관천 당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고 밝혔다.

7만여명의 피해자는 하지만 ▶조희팔의 시신이 이미 화장돼 DNA 대조를 하지 못했고 ▶해외도피범이 일부러 장례식 영상을 남긴 점이 석연치 않다며 그의 사망이 조작된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4년 후 검찰도 같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 6월 조희팔 사건을 수사한 대구지검은 “다각적인 조사 및 확인 결과를 종합할 때 조희팔이 숨진 것으로 판단한다”며 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다.

사망 당시 가족·지인 등의 진술 외에 ▶사망 직후 채취한 조희팔의 머리카락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조희팔의 것으로 확인됐고 ▶장례식 동영상 역시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감정한 결과 위조 정황을 발견하지 못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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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이 2008년 다단계업체 세미나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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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조희팔을 쫓고 있다. 그들이 조희팔의 사망 시점으로 밝혀진 2011년 이후 만 10년이 되도록 의심을 거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상전 대표는 ‘유의미한 생존 시그널’에 관해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피해자 단체와 과거 조희팔의 흔적을 취재했던 기자들과 협업을 통해 그가 여전히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나 웨이하이에 은신 중인 정황을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웨이하이는 조희팔이 숨졌다고 검·경이 결론 내린 장소다.

김 대표는 “조희팔의 가족·측근들이 여전히 대구·경북에서 부유하게 살고 있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며 “이들을 잘 아는 지인들에 따르면 조희팔이 살아있거나, 적어도 2011년 12월엔 죽지 않았다는 걸 추정할 만한 근거가 많다”고 주장했다. 일례론 “2008년 조희팔의 밀항을 도운 A씨가 조희팔 등과 함께 경남 양산의 한 사찰에 숨어있을 때 ‘조희팔이 죽었다고 꾸며야 한다’는 대화가 오간 걸 들었다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다만, 김 대표는 “아직까진 정황 증거일 뿐 조희팔을 찍은 사진 등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검찰이 객관적 증거로 제시한 조희팔의 머리카락에 대해서도 “그게 스모킹건이었으면 경찰이 그냥 넘어갔겠느냐”고 했다.

그는 조희팔을 계속 추적하는 이유에 대해 “검·경엔 아직도 당시 조희팔을 비호했던 세력이 건재하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가해자 측이 제시한 진술과 증거만으로 조희팔의 사망을 단정할 순 없었을 것”이라며 “조희팔 사건과 관련해선 검·경이 제대로 나서지 않으니 우리가 스스로 쫓다보면 언젠간 진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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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한 추모공원 내 조성된 조희팔 가족납골묘. '昌寧曺公喜八家族之墓(창녕조공희팔가족지묘)'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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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의 ‘오른팔’이자 다단계 유사수신업체에서 자금관리 담당이었던 강태용(59·구속)씨의 판결문에 따르면, 조희팔 일당이 2006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다단계 사기를 통해 편취한 액수는 5조715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강씨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2017년 11월 이후 4년이 다 돼가는데도 피해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그 사이 고령의 피해자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뜨고 있다.

현재까지 검찰이 피해 회복(환부) 절차를 밟고 있거나 마친 조희팔 일당의 범죄수익금은 742억원에 불과하다. 검찰이 찾아낸 조희팔의 국내 은닉 재산을 다 합해도 약 1000억원뿐이다.

검찰은 2016년 재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전체 편취액 중 원금·이자를 투자자(피해자)에게 돌려주고 조희팔 일당이 순수하게 챙긴 범죄수익을 약 2400억~2900억원으로 집계했다. 이는 검찰이 파악한 약 8300억원 규모의 범죄 피해규모와 큰 차이가 있었는데, 검찰은 “선순위 투자자들이 원금 이상의 돈을 배당수익·소개수당 등으로 챙겨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단계 구조의 상위 모집책들이 챙긴 각종 수익 탓에 조희팔의 실질 범죄수익은 대폭 줄어든 데다, 그마저도 장기간 해외 도피 등으로 은닉 재산을 찾아내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검찰이 재수사 과정에서 찾아낸 약 1000억원의 조희팔 은닉 재산 중 재투자 명목으로 자금을 세탁해 은닉한 고철수입업자는 재판 중 710억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해당 공탁금은 현재 대구지법에서 피해자에 대한 배당 절차가 진행 중이다.

나머지 범죄수익 중 조희팔 사건 관련 13개 금융 다단계 법인과 채권단이 횡령·배임 등으로 챙긴 약 32억원도 지난 3월 환부 절차를 시작해 지난 6월 대구지법으로부터 환부청구권에 대한 압류·가압류 결정을 송달받아 전액 공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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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다단계 사기 사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문제는 이 같은 공탁금이 7만여명의 피해액수와 비교해 극히 미미하단 점이다. 공탁금은 피해자들의 채권 액수에 따라 법원에서 배당하게 되는데, 김상전 바실련 대표는 “실제 피해자 한 명에게 떨어지는 액수는 많아야 10만~2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게 되면 변호사 선임료와 인지대 등 소송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실상 피해자가 변제받는 액수는 ‘0’에 가깝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들은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해 규모를 축소했다”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복잡한 다단계 구조의 최상층에 위치한 극소수를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의 행위를 일일이 규명해 범죄를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여기에 범죄피해금을 온전하게 몰수·추징하는 것이 어렵게 되는 한계가 있다”(이기수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 ‘조희팔 사건’ 분석을 통해서 본 유사수신행위의 법·제도적 문제점 검토, 2016년)는 게 학계의 견해다. 다단계 ‘폰지 사기’(새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 매달 수익을 주는 ‘돌려막기’) 특성상 상위 모집책이 범죄수익을 향유한 가해자이면서도, 최상위층에게 속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이중적 속성을 가지는 탓에 벌어지는 일이다.

소개를 통해 하부 좌우로 뻗어 나가는 다단계 사기 사건의 경우 상위 모집책에게 민법상 ‘부당이득’(741조)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이동임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논문 다단계 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회복방안(2014년)에 “현 다단계 금융사기는 문제가 생겨도 그 회사의 대표이사나 간부들만 처벌될 뿐, 그 외 소개자는 금전적 손실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아 두려움 없이 소개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부당이득 반환규정을 만들어 소개수당 등 각종 수당과 투자에 따른 불법적 수익금을 반환토록 하면 소개의 매력을 잃어 단기간에 많은 투자자와 투자금을 유치하는 행위를 근절할 수 있고 일정 부분 피해회복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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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일당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모임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회원들이 2015년 12월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조희팔 사건의 부조리와 의혹에 대한 재판부의 엄중한 판단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제언은 최근 도입 주장이 나오는 독립몰수제와도 맥이 닿아있다. 독립몰수제란 유죄판결이 없어도 범죄사실과 대상재산이 실질적으로 관련성이 있는 경우 이를 몰수할 수 있는 제도다.

현행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범죄 정황을 알면서도 그 수익을 수수한 자에 대해서만 범죄수익 몰수가 가능해 가족 또는 지인 등 제3자 명의로 돌려놓은 경우 범죄수익환수가 어려운 구조다. 또 제3자가 범죄 정황을 인지하고 범죄수익을 수수한 경우라도 범죄 혐의가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이 되기 전까지는 몰수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독립몰수제를 도입하면 유죄 확정판결이나 재판이 없어도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현재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백혜련 의원이 독립몰수제 도입을 골자로 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한 상태다. 이에 대해 법무부와 검찰은 적극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나, 법원행정처는 “몰수를 형(刑)으로 규정한 현행 법체계와 어긋날 소지가 있어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수행될 필요가 있다”(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검토보고서, 지난해 7월)는 신중한 입장이다.

■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선진 금융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던 외환위기(IMF) 이후 25년, 대한민국은 거꾸로 금융사기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478)으로 전락했습니다. 조희팔부터 IDS홀딩스·VIK·라임·옵티머스 등 5대 사건의 피해자만 12만명, 피해 금액은 10조원이 넘습니다. 평생 번데기를 판 돈, 남편 사망보험금까지 빼앗긴 서민들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금융사기공화국을 만든 이들을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들이 총 10회에 걸쳐 추적합니다. 대형 금융사기를 막을 수 있는 해법도 찾아봅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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