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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윤석열 안동대 발언 깊게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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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왜곡된 시선에 앞뒤 안 맞는 행보까지


한겨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3일 안동대학교 학생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윤석열 캠프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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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근 또다시 부적절한 노동관을 드러내 뭇매를 맞았습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13일 안동대학교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지금 기업이 기술로 먹고살지, 손발로 노동을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며 “그건 인도도 안 하고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업이 국제 경쟁력이 있는 과학기술을 가지고 경쟁해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말을 하다가 나온 발언인데, 손발로 육체노동을 하는 수백만명의 국내 노동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54개 국가와 12억명의 시민들을 한꺼번에 비하하는 광역 도발이었습니다.

앞서 윤 전 총장은 지난 7월19일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면서 “1주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거센 비판을 사기도 했지요.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왜곡된 노동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안동대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저 발언 이외에도 노동 정책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는 여러 가지 말을 쏟아냈습니다. ‘손발 노동’과 아프리카 비하 발언만큼이나 비판을 산 말이 “임금에 큰 차이가 없으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큰 의미가 있겠느냐”라는 발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신분 차이로 여겨질 만큼 삶의 격차가 큽니다. 임금 외에도 노동 조건이나 각종 복지 처우 등에서 말이죠. 그런 점에서 비판을 받을만한 발언이었는데요. 이 발언의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윤 전 총장이 정책적으로도 설익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앞뒤 발언은 이렇습니다.



“제가 청년 일자리 얘기하면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기업 일자리를 만드는 건 어떻게 보면 시간 더 걸려요 . 그런데 조금 더 제도적으로 더 빨리할 수 있는 게 결국 기존의 노동 시장을 조금 물렁물렁하게 유연화시키자고 . 그렇다고 사람의 일자리를,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건 아니고 임금 체계를 연공서열제에서 직무급제로 바꿔나가고 일자리가 비정규직과 정규직 ,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큰 차이 없게 . 사실 임금에 큰 차이가 없으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큰 의미가 있겠느냐 . 요즘 젊은 사람들은 특히 한 직장에 평생 근무할 생각이 없잖아요 . 요즘처럼 변화하는 세상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몸담은 기업이 언제 문 닫을지 몰라서 그게 크게 의미는 없어요 . 내가 받는 보상만 내 능력과 노력에 비해 공정하게 오면 되는 거죠 . 그러니까 정규직 비정규직 대기업 중소기업 이런데 임금 차이를 없애고 , 임금이 직무급 , 자기가 하는 일의 종류에 따라 결정이 되면 됩니다 . 그런데 이게 뭐 어디 달나라 얘기가 아니고, 우리가 대표적으로 독일 같은 나라가 그렇게 되고 있어요 . 노조도 산별로 되어 있어 . 기업엔 노조 없어요 .”

정리하자면,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되, 임금 체계를 연공서열제에서 직무급제로 바꿔서 비정규직이 됐든 정규직이 됐든 상관없이, 대기업에서 일하든 중소기업에 일하든 상관없이 같은 직무를 할 경우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정책 제안입니다. 일단 노동 시장 유연화는 기업이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 시간과 임금도 자의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건데, 윤 전 총장은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습니다.

다만 임금 체계를 연공서열제에서 직무급제로 바꾸자는 제안은 한 번 짚어볼 만 합니다. 연공서열제는 노동자가 입사한 뒤 근속연수나 연령 등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임금 체계입니다. ‘호봉제’가 대표적이지요. 이와 달리 직무급제는 하는 일의 어려움과 역할을 따져 임금을 책정한 뒤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두는 임금 체계입니다. 예를 들어, 기자라는 직무를 가진 노동자라면 <한겨레>에서 일하든 <조선일보>에서 일하든 <경향신문>에서 일하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즉, 직무급제의 핵심은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을 지켜서 차별을 해소할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다만 여기서 차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가 관건이 되는데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직무급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체로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들의 고호봉을 없애는 방향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반면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직무급제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정규직이 된 공공기관 청소 노동자나 사무 보조원 등의 급여를 공무원 호봉과 구분하기 위해 추진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니 대체로 ‘하향 평준화’를 위한 직무급제 도입이 되는 거지요.

게다가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면 사회적 과제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우선 근로기준법 94조1항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꾸려면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 노동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법을 바꾸거나 노동조합의 양보가 없는 한 ‘하향 평준화’가 가능할 리가 없지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려면, 사업장을 벗어나는 동일 직군 범위에서 직무급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하고, 해당 직무 가치를 규정하는 평가에 노동조합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준비나 대책은 하나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공공기관 직무급제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차별 시정 차원에서 직무급을 논의하고 있는 게 아니라 청소 노동자 등의 저임금이 당연하다는 전제 아래 직무급을 추진하고 있고, 직무 가치 역시 노동조합 참여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있다”며 “게다가 한국처럼 산별노조가 구성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민간 기업에 직무급제를 도입하면, 미국처럼 비백인과 여성 등이 담당하는 직무를 저평가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임금 차별은 해소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은 이런 말도 합니다.

“지금 유럽은 해고도 자유롭게 만들고 있어요. 이게 미국하고 경쟁이 안 되니까요. 미국은 해고가 굉장히 자유로워요. 회사가 조금 어려우면 그냥 자를 수 있게 돼 있어요. 그런데 이제 실제로 (유럽) 기업들이 경쟁해보니깐 안 되거든. 그래서 유럽이 그렇게 노동 보호가 철저하다가 지금은 해고를 굉장히 자유롭게 해놨고. 그 대신 이제 기업에도 규제를 많이 풀어주고 해서 ‘맘껏 돈을 벌어라. 대신 세금 좀 많이 내라’ 그거 갖고 사회 안정화를 하겠다. 이를테면 실업수당 9개월 6개월 주던 걸 2년 3년 주고 또 재교육 철저히. 그리고 실업수당도 근로의욕 있는 사람들에게 실업수당 제공하고.”

이는 결국 덴마크와 네덜란드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추진한 ‘유연안전성’(F lexicurity·플렉시큐리티) 모델을 일컫는 건데요. 고용의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조합한 용어로, 기업에는 해고와 채용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에게는 사회적 안전망(social security net)을 제공함으로써 유연화에 따른 근로자의 불안을 최소화하자는 겁니다. 윤 전 총장이 정치 일선에 나선 직후 찾아간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사회복지학)가 평소 주장하는 모델인데, 정 교수는 최근 윤 전 총장의 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미래비전위원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직무급제보다 더 복잡한 사회적 과제를 요구합니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해고를 당해도 사회안전망을 통해 보호를 받을 수 있으려면, 덴마크나 네덜란드 등처럼 해고된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이 직전 소득의 최소 70%는 되어야 하고, 최대 3~4년 동안 이를 보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실업급여는 직전 소득이 아니라 최저임금의 90%여서 금액이 매우 적고, 그 기간 역시 최장 9개월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실업급여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지급 기간 역시 늘리려면 고용보험에 국가의 재정을 대거 투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한국에선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에 세금이 과도하게 투입되고 있다는 기사가 때마다 나오고, 정부 역시 여기에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해고는 당장 실시하면서 재정 투입 계획은 명확히 얘기하지 않으면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현금 주고 어음 받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런데 윤 전 총장은 전통적으로 작은 정부를 말하고 있는 국민의힘에 들어가서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하고 있으니 윤 전 총장의 비전에 관해 토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상황인데 왜곡된 시선에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까지 더해진 윤 전 총장의 노동관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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