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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책의 향기]찬란한 ‘빛의 순간’을 포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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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지음·서희정 옮김/112쪽·1만8000원·미술문화

동아일보

이 책의 인상파 그림들을 보면서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5년)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남녀 주인공 제시와 셀린의 짧고도 꿈같은 사랑이 벌어진 장소들을 연이어 훑는 신에서 관객은 ‘덧없음’을 느낀다. 인물들이 빠진 텅 빈 장소는 밝은 배경인데도 처연함을 자아낸다. 산란하는 빛들 속에서 인물을 포함한 사물의 형태가 와해되어 간 인상주의 화풍도 찬란하지만 덧없는 순간을 포착하려고 한 시도 아니었을까. 책의 부제 ‘일렁이는 색채, 순간의 빛’이 와닿는 이유다.

프랑스의 서양미술사 전문가가 쓴 이 책은 화보집에 가까운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묵직하다.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조르주 쇠라 등 인상파 거장들이 당대 유럽 화풍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미술사 관점에서 분석한다. 거장들의 대표작들을 한 페이지씩 털어 소개해 독자들이 명작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인상파 특유의 분할주의(물감을 섞지 않고 다양한 원색의 점들을 찍어 색채 혼합 효과를 내는 기법)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 대표작의 클로즈업 사진을 별도로 넣은 것도 매력적이다.

팬데믹으로 움츠러든 요즘,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 중 1891년 작이 눈길을 끈다. 눈 내린 설원 위에 쌓인 건초더미가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저자는 “우리 삶에 힘들 때도 좋을 때도 있음을 보여주듯, 모네는 눈 내린 추운 날에도 언제나 한 줄기 빛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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