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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권희진의 세계는] 프랑스의 분노‥"미국과 호주가 등에 칼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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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파트너십 '오커스(AUKUS)' 발족 발표하는 미·영·호주 정상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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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호주가 등에 칼을 꽂았다"

프랑스가 미국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영국·호주와 함께 새로운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면서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전수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러면서 호주가 프랑스 군함 제조회사인 나발그룹과 2016년 맺었던 77조 원 규모의 디젤 잠수함 12척을 사기로 한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입장에선 초여름까지도 가격 문제 때문에 최종 서명만 못 했을 정도로 사실상 다 된 밥이나 다름없었는데 이걸 미국이 막판에 가로챈 셈이 됐죠.

프랑스 외교부 로드리앙 장관은 "배신당했다. 매우 화가 난다. 동맹 간에 할 짓이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고요, 미국 정부를 향해서도 “잔인하고, 일방적이며, 예측할 수 없었던 결정"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나 할 법한 짓을 바이든 대통령이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외교적 언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도 거칠었지만 바이든을 트럼프에 비교한 것은 사실상 바이든에게 욕이나 다름없는 막말을 한 거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막판에 낌새를 알아챈 프랑스의 외교관들이 미국 당국자들에게 물어봤을 때에도 미국 당국자들이 끝까지 아무 말 안 하다가 겨우 결정 몇 시간 전에 이 사실을 알려준 것도 프랑스를 몹시 화나게 했습니다.

미국과 호주가 "등에 칼을 꽂았다"는 말도 했습니다.

잔뜩 화가 난 프랑스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인 1781년 프랑스 해군의 참전 240주년을 경축하는 행사에도 불참해 버렸습니다.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 온 미국과 프랑스의 오래된 동맹 관계를 상징하는 행사가 엉망이 됐죠.

하지만 이번 일은 단순히 미국이 프랑스의 잠수함 수주 물량을 가로챈 '얌체 짓'에 그치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의 국제 정세 변화의 신호탄이라는 전망이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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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주 외교수장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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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왜 프랑스를 버려야만 했을까?

우선 호주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중국 때문입니다.

3년 전만 해도, 호주는 미국과 중국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죠.

미국의 안보, 중국의 경제 모두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남중국해로부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날로 해군력을 강화하면서 기회가 되면 이를 행사할 수 있다는 듯 행동하는 중국의 모습에 긴박한 위기감을 느낀 것이죠.

점차 실체가 느껴지는 중국의 위협에 맞설 군사적 연대가 절실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석탄, 와인, 쇠고기 같은 호주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규제로 경제 보복을 하는가 하면 중국계 호주인 2명을 억류하기도 했습니다.

호주는 중국과의 관계가 나아지긴 어렵다는 판단을 명확하게 내린 것이고요, 결국 중국을 버리고 미국을 택하는 국운을 건 베팅을 한 셈이죠.

미국, 중국 때문에 프랑스의 뒤통수를 쳤나?

미국은 그럼 왜 유럽의 오랜 동맹 프랑스를 격노하게 하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미 국방부가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해군은 규모로는 세계 최대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12척의 핵 잠수함을 포함해 350척 규모의 전단을 갖고 있습니다.

미 해군은 293척 규모여서 숫자상으로는 중국 해군의 규모가 더 큽니다.

호주 해군이 핵추진 잠수함을 갖게 되면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이 영해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 해저를 순찰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게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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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출처: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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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다른 전력에 비해 대잠 작전 능력은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중국에는 상당한 위협이 되는 것이고요, 미국은 호주의 핵잠수함을 이용해 큰 힘 안 들이고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1958년 영국에게만 전수했던 극히 민감한 핵잠수함 기술을 호주에게 넘겨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정도로 미국의 마음도 급합니다.

중국은 당연히 극도로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호주로선 그러니까 중국의 경제 보복 등을 감수하면서, 미국 주도의 대중국 전선에 참여하는 엄청난 선택을 한 것입니다.

호주는 수십 년 동안 별다른 군사력 확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좋은 시절'을 보내왔는데 이제 이런 세월은 지나가 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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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부 장관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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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변 당한 프랑스, 남은 선택은?

이제 또 문제는 미국 때문에 화가 잔뜩 난 유럽 쪽 미국의 동맹 프랑스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를 버리고, 영국과 호주 등 영연방과의 밀착을 확실히 한 것이고 이건 미국과 프랑스의 오랜 우정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합니다.

미국이 영국과 손을 잡은 것도 프랑스를 자극했습니다.

브렉시트로 유럽 대륙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영국은 유럽 대신 미국과 호주 등 영연방과 뭉친다는 전략으로 살길을 찾고 있죠.

영국으로선 '결국 미국의 편은 영국이다'라는 점을 이번에 다시 명확히 한 것이고요, 영국에 대한 유럽 대륙의 오랜 의구심이 이유가 있었다는 점도 확인된 셈입니다.

프랑스와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중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은 피해왔습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동맹국들과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철수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가뜩이나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의존에 깊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번 일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셈입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과 미국의 분쟁에 말려 들어가선 안된다는 판단을 공고히 했다고 합니다.

대신 프랑스가 유럽을 이끌면서 미중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결심을 다시 굳히게 됐다는 거죠.

이번 일은 나토를 통해 미국의 군사력에 종속된 유럽이 유럽군 창설 등 미국과 분리된 독자적 군사 노선을 가져가야 할 필요를 더욱 느끼게 했죠.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의 중국 견제에 호주를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에게는 '미국과 함께 가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라는 회의감을 다시 심어준 셈이 됐습니다.

권희진 기자(heeji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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