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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탈레반 집권 한달…집에 갇힌 여성들, 일부는 "살기 좋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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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여성 인권 크게 위축…여성 청소년 축구팀은 한달 만에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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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시간)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한 사립대학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커튼으로 분리된 채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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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으로 나와 탈레반을 볼 때마다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지 한 달, 사립대 법학과에 재학 중인 여성 파르자나는 아프간이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느낀다.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던 탈레반은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 규정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사립대 여학생들은 니캅, 아바야 등을 착용해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려야 하고 남학생들과는 커튼 등으로 공간을 분리해 수업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파르자나가 '진짜' 공포를 느끼는 부분은 학교 밖에 있다. 탈레반이 여성의 노동권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서다. 탈레반은 최근 아프간이 이슬람 교리를 엄격하게 해석한 샤리아법을 따라야 한다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는 것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아프간 여성들은 교사나 의료진이 아닌 한 안전을 위해 집에 머물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 과도정부를 짜면서도 내각에 여성은 하나도 포함하지 않았다. 얼굴과 몸이 드러날 위험이 있다며 여성의 스포츠 경기도 금지했다.

아프간 여성들 사이에서는 탈레반의 탄압이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탈레반이 20년 전 집권했을 당시에는 여성은 남성 없이 외출이 불가능했으며 교육의 기회도 빼앗겼다. 파르자나는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지금은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영국 BBC는 15일(현지시간) 이처럼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탈환한 뒤 달라진 도시의 모습을 조명했다. 탈레반은 미군 철수가 시작된 틈을 타 아프간 내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고 지난달 15일 수도 카불을 손에 넣었다.

아프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마자르 에 샤리프의 랜드마크인 블루 모스크 주변의 풍경은 한 달 전과 사뭇 다르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기 직전인 8월 당시 블루 모스크 주변 광장은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젊은 남녀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녀가 함께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탈레반이 성별에 따라 별도의 방문 시간을 정해뒀기 때문이다. 남성은 하루 종일, 여성은 아침 시간대에만 방문이 가능하다.

주변을 산책하는 여성도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BBC는 전했다. 한 여성은 겁을 먹은 듯 "상황이 괜찮은 편"이라면서도 "사람들이 새 정부에 익숙해지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 청소년 축구팀은 인권 탄압에 대한 두려움 속에 한 달을 숨어 살다가 이날 파키스탄으로 탈출했다. 카불이 함락된 후 축구팀 주장은 선수들에게 소셜미디어(SNS)에서 경기사진을 삭제하고 유니폼을 불태우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에게 탈레반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며 긴급 입국 허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탈출에 성공한 선수들과 그의 가족들은 파키스탄에서 30일간 머물며 제3국 망명을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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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간) 아프간 수도 카불 거리의 여성들/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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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재집권을 환영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아프간과 우주베키스탄 국경을 건너는 화물트럭 운전사는 "전에는 정기적으로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부패한 경찰관들에게 뇌물을 주도록 강요당했다"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카불까지 한푼도 내지 않고 차를 몰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 치하의 도시가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탈레반의 '공포 정치'가 치안을 강화하는 데 유효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마자르 에 샤리프 근처 큰 길가에는 총상을 입은 시신 4구가 전시돼 있다. 시신 위에는 이들이 납치범임을 알리는 수기 메모가 적혀 있었다. 이는 유사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이와 똑같은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탈레반의 경고 메시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가 공중에 퍼졌지만, 군중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들었다.

폭력 등 범죄는 오랜 기간 아프간 대도시에 자리 잡은 고질병 중 하나였다. 탈레반을 비판하는 세력조차도 이들이 도시 내 보안 체계를 향상했다고 본다. 시신을 본 한 시민은 "그들이 납치범이라면 저렇게 된 건 (우리에게) 좋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교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탈레반은 자신들이 아프간 문화 말살이 아닌 복원에 힘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레반 지역 지도자인 하지 헤크마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은 지난 20년간 서구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과 가치를 잃어버렸다. 탈레반은 우리 문화를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헤크마트 인터뷰와 관련해 BBC는 탈레반이 자신들이 진정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 아프간 여성이 그 옆을 지나면서 동행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이 사람들(탈레반)은 착한 사람들이 아니다"고 속삭였다고 덧붙였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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