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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위드 코로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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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간호사, 직장 잃었던 청년 등이 본 ‘위드 코로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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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두부가게를 하는 김진철씨는 시장 상인들과 함께 정부 지원을 받아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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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89.6%는 생각한다.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국립중앙의료원-한국갤럽 ‘포스트 코로나 국민 인식 조사’) 감염병을 상수로 둔 세상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어쩔 수 없다면 적응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정부는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고 이름 붙였다. 정부는 한가위 연휴가 지나면 청사진(로드맵)을 내놓을 예정이다. 방역 목표를 ‘확진자’ 수에서 ‘치명률’(또는 사망자 수) 중심으로 재편하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던 강도 높은 방역 전략을 고위험군(고령층·기저질환자) 중심으로 다시 짜면서, 천천히 거리두기를 완화할 걸로 보인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한겨레21>은 그동안 코로나19 유행의 틈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안부부터 물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당신과도 ‘함께’일 수 있는지, 달라질 세계에 적응하는 데 무엇이 걸림돌인지 들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성인 1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포스트 코로나 국민 인식 조사’(8월18~23일 만 19~69살 성인 1550명 온라인 조사, 표본오차 ±2.5%포인트) 결과를 단독으로 입수해 이들의 삶과 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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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사장님―멀어진 세상과 전환


코로나19 1차 유행 시기인 2020년 4월 만났던 대구 중구에서 고기뷔페를 운영하는 김병철 사장은 한가위를 앞두고 셈하고 있다. “한달에 1천만원꼴이었어요.” 빚 얘기다. 김 사장은 2020년 2월부터 지금까지 1억원 넘게 빚을 냈다. 빚은 ‘위드 코로나’라고 부르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의욕을 꺾는다. “그나마 이 자리에서 다른 업종으로 전환이라도 하면 좋은데 그러려면 돈이 들죠. 여기서 더 빚을 진다면… 폐업하고 새로 시작할 수도 없어요. 코가 꿰였어요, 완전.”

2021년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부채는 1년 전보다 18.8% 늘었다. 새로 빚을 얻은 자영업자 비중(2021년 1분기 기준 29.2%)도 1년 전보다(2020년 1분기 19.4%) 커졌다.(한국금융연구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영업자 부채 리스크 평가와 관리방안’)

가게 바깥 경제는 김병철 사장이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던 ‘보통의 날들’로 돌아온 듯 보인다. 2021년 2분기 수출액은 42.1% 증가, 소매판매지수는 4.4% 올랐다.(전년 동기 대비)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2.6% 올랐다. 회복한 듯 보이는 가게 바깥 세계는 오히려 새로운 위협이다. “물가가 너무 올랐어요. 고기값도 30%는 올랐고 채소값은 말해 뭐 해요. 금리도 오를 것 같고.” 가게 바깥과 가게 안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포스트 코로나 인식 조사’에서 “방역 정책에 따른 손실 보상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자영업자만 90%를 넘어섰다. 다른 직업에서는 80% 초중반 수준이다.

빚을 안고, 갈수록 멀어지는 세상과의 거리를 느끼며, 김 사장은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는다. 어느 청년은 같은 시대 앞에 우울과 무기력을 느낀다. 9월8일 저녁 8시, 인천공항에서 항공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유도하고 짐 싣는 일을 하는 하덕민(가명·31)은 퇴근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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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승객이 사라진 인천국제공항에서 청소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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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청년―우울과 꿈


하덕민은 전에 다니던 인천공항 지상조업사에 다시 입사했다. 항공기 승객이 줄어든 하늘길은 화물이 대체했다. 일할 사람이 다시,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네요.” 2020년 6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하덕민은 해고, 정확히는 계약해지를 당했다. 지상조업으로 일을 시작하지만 언젠가 항공기 정비사가 되고 말리라는 꿈을 향해, 대체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여기다 갑자기 꿈을 멈췄다. 2021년 3월 재입사했으니, 멈춤의 시간은 9개월 정도다. “그때 멘탈이 무뎌졌다고 해야 할까요.” 동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상처 탓이다”. ‘포스트 코로나 인식 조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정서적 문제를 호소한 이들은 20대(48.5%)와 30대(43%)가 가장 높다. 40~50대는 30%대다.

청년 일자리는 탄력적인 회복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2021년 1월 65.9%까지 떨어졌던 만 25~29살 고용률은 8월 69%까지 올랐다. 다만 일하는 장소는 달라졌다. 대면 서비스업인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에서 고용은 2년 새 56만7천명 감소했다.(2019년 7월과 2021년 7월 비교) 반면 택배나 항공화물 등 운수창고업은 꾸준히 고용이 큰 폭(2021년 7월, 전년 동기 대비 12만1천명 증가)으로 늘었다. 업종별 고용량의 구조적 전환은 노동자가 메뚜기처럼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전의 숙련이나 꿈은 사라진다.

여행업계에서 10년 일한 서민정(가명·35)의 회사는 2020년 11월 폐업했다. “충격이 너무 컸어요. 여행업 쪽은 그만 보고 아예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석달 전부터 온라인으로 옷을 판다. 투자 비용이 덜 드는 좀 더 쉬운 온라인 창업, 저숙련 노동은 코로나19 시대에 한층 빠르게 늘어난다. 문턱은 낮아 들고 나기 쉽다. 다만 불안하다. “어느 방향으로든 상황이 좀 예측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서민정)

위드 코로나 시대 예측 가능성은 코로나19의 공포감을 낮추는 의료체계에 좌우된다. 코로나19에 걸려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떻게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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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의료원 공혜정 간호사가 음압격리병동에서 방호복을 입은 채로, 거리에서 일상복을 입은 채로 서 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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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의료진·돌봄―쏠림과 소진


국립중앙의료원의 풍경은 3차 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2월과 변함없다. 병상이 비는 날은 거의 없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놓칠까 초조해, 의료진은 달린다. 지금껏 거의 모든 코로나19 환자는 시설이나 병원에 격리했다. 중환자는 국립중앙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으로 쏠렸다.

다른 질병처럼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약을 먹고 쉰다거나 동네 병원에서 입원을 결정하는 과정 따위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다. 그렇다고 민간병원을 비롯한 기존 의료체계를 제대로 동원하지도 못했다. “병상 운영을 위해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잊은 것 같아요. 병상은 음압텐트를 치면서라도 마련할 수 있지만 사람은 아니잖아요.”(안수경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 지부장) ‘포스트 코로나 인식 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보건의료인(48.2%)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을 코로나19로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는 이유로 꼽았다.

고위험군을 지키는 돌봄 노동자도 비슷한 처지다. 96명의 노인이 머무는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허미숙 요양보호사는 “발가락이 부러져도 쉬겠다고 말하지 못하다 그냥 일을 그만두는 곳”으로 자신의 일터를 설명했다. 감염이나 질병 위험에도 위험수당은 없다. 역시 사람은 만성적으로 부족하다. “불안정하게 일하니 젊은 인력이 충원되지 않는다.”(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 이들만의 고통은 아니다. 사회적 돌봄의 위축은, 가정 내 돌봄이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노동시장 전반의 성별 격차로 이어진다.

이 모든 목소리, 더 많은 목소리가 위드 코로나에 포함돼야 한다. “방역 과정에서 직접적인 침해를 당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방역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스스로 정하지 않았고 이해할 수 없는 (방역) 방식 앞에서 시민의 순응도는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다.”(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불신과 거기서 비롯한 불안을 바탕에 두고 위드 코로나 시대는 언제든 쉽게 흔들린다. 끝나지 않는 질병과 공존한다. 공존하기 위해 전환하고 적응한다. ‘모두 함께’ 아니면 이를 수 없는 길이다.

방준호 박다해 <한겨레21> 기자 whorun@hani.co.kr

* 더 자세한 기사를 <한겨레21> 한가위 특대호(1381호) ‘위드 코로나 어제와는 다른 세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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