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치매 아내 끝까지 책임지겠다"던 80대의 가장 슬픈 살인 [이슈추적]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늘 저희한테 ‘힘든 일하느라 고생 많다’고 먼저 격려해주시던 분이었어요. 마지막 뵀을 때도 여느 때처럼 밝은 모습이셨는데….”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치매안심센터 직원은 말끝을 흐렸다. 치매 환자인 아내와 늘 함께 이곳을 찾았던 A씨(80)는 ‘(아내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올 초엔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다. 주변의 치매 간병인들에게 합격을 자랑하고, 시험 준비 방법을 알려줄 정도로 살가운 성격이었다.

그랬던 A씨는 지난 13일 자택에서 70대 아내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선 “내가 데리고 가겠다”는 유서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아내를 숨지게 한 뒤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중앙일보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A씨의 집. 노란색 폴리스 라인 테이프와 사건현장 출입 기록부가 붙어 있다. 박건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년간 아내 간호…“요양병원 권유 거절”



생전 부부를 기억하는 이들에 따르면 A씨는 3년 전 치매를 진단받은 아내를 극진히 간호해왔다고 한다. 아내의 치매 증상은 올해 들어 심해졌다. 지난 5월엔 아내가 혼자 집 밖으로 나가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이웃 주민은 “늘 점잖고 조용하던 분이 그 일이 있고 나서 안절부절 못 해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홀로 병간호를 하는 A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지인들은 “요양병원을 알아보라”고 권유했지만, A씨는 매번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센터 관계자는 “요양병원 얘기만 꺼내도 (A씨가) 싫어하는 걸 알기에 늘 조심스러웠다. 장기요양급여도 신청하고, 책임감이 정말 강한 분이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받았다”고 했다.

중앙일보

치매 예방용 그림 맞추기 장면. 서울아산병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고령사회 4년 앞…‘간병 살인’ 잇따라



치매 환자에 대한 병간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간병 살인’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19년 전북 군산에선 80대 남성 B씨가 치매에 걸린 아내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재판부는 B씨가 2012년부터 아내를 간병해온 점과 가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참작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같은 해 9월엔 서울 강서구에서 50대 남성 C씨가 치매를 앓던 어머니와 중증 지체장애인인 형을 살해하는 일이 있었다. C씨는 경찰에 직접 신고한 뒤 사라졌다가 이틀 만에 한강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국민 10명 중 2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지난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도 83만 명을 넘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하며 치매안심병원 설립 등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치매 인구의 가파른 증가세로 국민의 병간호 부담은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

치매 관련 이미지.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은 40년 전부터 ‘개호’ 사회문제로 인식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1980년대부터 간병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강력 사건을 사회 문제로 주목해왔다. ‘간병 살인’이라는 용어도 일본의 ‘개호살인’에서 유래한 것이다. 개호(介護)는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을 돌보는 일로 우리의 간병과 같은 의미다. 또 간병인이 환자를 살해하고 뒤따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일은 ‘마음에 안고 간다’는 의미에서 ‘개호심중’(介護心中)이라고 부른다.

간병 부담으로 인한 비극이 잇따르자 일본은 2006년부터 후생노동성에서 ‘개호’ 관련 통계를 내고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4~2019년 매년 평균 20여 명의 고령자가 간병하는 가족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현재 치매 부양자의 신체적·경제적 부담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계가 전무한 상황”이라며 “지역단위로 환자 가구를 모니터링하는 시설 등을 확충해 부양자가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국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