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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국 게임에 한반도를 가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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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1일은 9·11 사태 20주년이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뉴욕과 펜타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벌판 등 세 곳의 현장을 찾았죠. 몇 시간에 걸쳐 사망자 이름 전부를 읽는 등 행사 형식은 이전과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9·11 사태로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불과 열흘 전 끝났으니까요. 혼란스럽고 침통한 후퇴였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패배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여론은 싸늘했습니다. 50%대를 유지하던 대통령 지지율은 43%까지 급추락했습니다. 의회 청문회가 이어지고 정치공세도 요란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철수 혼란상은 1975년 미국의 사이공 철수, 198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비교됩니다. 군인, 기업가, 봉사자 등 아프가니스탄에서 일했던 수많은 이들의 한탄도 끊이지 않죠.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냐는 분노와 그간의 성과가 물거품이 되리라는 염려가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미국 내 이런 논란은 가장 중요한 문제를 비켜갑니다. 이는 바로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어진 내전과 희생이 미국 제국주의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2001년을 돌이켜보죠. 공포와 분노로 미국 사회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부터 동네 이발소 아저씨까지 테러 배후를 처단해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탈레반 정권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친미정권을 세웠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미국과 비슷한 사회를 만들려 했죠. 명분은 좋았지만 타국을 무력으로 점령해 내 모습을 본뜬 사회를 심겠다는 시도는 제국주의적 발상이었습니다.

식민지 제국 영국과 일본도 비슷했죠. 지역 문화와 전통을 무시하고 선진문물을 이식했습니다. 철도를 깔고 양복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민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갈수록 저항은 심해졌죠. 식민정권은 그 저항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탈레반의 저항과 이들에의 지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심어주고,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퍼부었는데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저항이라니. 하지만 그 어떤 선의와 투자도 외세의 침략이라는 치명적 허점을 극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를 파고든 탈레반은 야금야금 세력을 넓히며 미국과 친미정권이 세워놓은 모든 것을 갉아 먹었습니다. 탈레반의 회귀가 기정사실이 된 지는 이미 몇 년이 지났습니다. 이번 사태에 놀랐다면 그만큼 관심이 없었을 뿐이죠.

미국의 철수를 보며 한국에서 말이 많습니다. 미군 철수로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 식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있었죠.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인천공항이 카불 공항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미군 없이 안보가 가능하겠냐며 공세적 대북정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이어졌습니다. 친미가 핵심이데올로기인 우파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죠. 반대 주장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헤게모니적 지위가 흔들리면서, 특히 중국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점점 더 동맹국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세계 구상에 한국은 오히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이 두 주장은 상반되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심각한 대미 의존이 그것입니다. 앞의 주장은 미국에 안보를 맡긴 기형적 국가 형태를 찬양하는 셈이죠. 후자는 미국의 졸 노릇에 안도하는 꼴입니다. 결국 어느 분석이 맞더라도 미국의 게임에 자신을 가두는 자충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도 실패한 채 임기는 끝나갑니다. 미래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은 많지만, 대안이 있는지 분명치 않죠. 기형적 정치·외교 지형이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 스스로가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살얼음판 위에 놓고 봄을 맞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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