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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일사일언] 감기약과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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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TV 연속극 ‘펜트하우스’에 치매 유발 약이 등장했다. 딸 하은별이 엄마 천서진에게 조기 치매에 걸리는 약을 준 것이다. 극중 천서진은 결국 약을 먹지 않고 치매인 척한 것으로 판명됐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생긴다. 치매 유발 약이 정말 있을까?

조선일보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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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치매를 직접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진 약은 없다. 하지만 주의가 필요한 약은 있다. 예를 들어 신경안정제를 오래 복용하면 치매 위험이 커진다. 인과관계인지 단순한 상관관계인지는 불분명하다. 치매 초기 증상 때문에 쓰게 된 것인지 아니면 약 때문에 치매 위험이 커지는 것인가도 논란이다. 위산 분비를 강력하게 억제하여 위 식도 역류 질환 치료에 쓰는 약(PPI)을 오래 복용하는 경우에도 치매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역시 인과관계가 입증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론상 이 약을 오래 복용하면 신경세포 유지에 필요한 비타민B12가 부족해져 치매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불필요한 장기 복용은 피하는 게 좋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약으로 기억을 지우는 것은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대체로 약이 기억에 미치는 부작용은 복용 뒤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다. 과음 뒤 필름이 끊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과도한 음주도 치매 위험을 크게 높인다는 점은 짚고 가자.

일상에서 노년층에게 위험한 약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감기약이다. 감기약 복용 뒤에 일시적으로 치매 유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날짜나 장소를 헷갈리거나 주의력, 언어력이 떨어진다. 심지어 환각이나 망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감기약 속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 때문이다. 뇌에서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신경 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감기약 속 항히스타민제가 방해하여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귀 뒤에 붙이는 멀미약, 일부 항우울제나 요실금, 배뇨 장애에 쓰는 항콜린제에도 비슷한 부작용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약국에서 일하다 보면 매일같이 감기 물약을 사러 오는 이가 눈에 띈다. 절대 뇌 건강에 좋다고 볼 수 없다. 약은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만 써야 약이다.

조선일보

정재훈 약사·'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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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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