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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권적운·적란운·고적운…‘이름’을 붙이자 뜬구름이 잡혔다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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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과학과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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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이름 짓는다는 것의 의미는?
기상학자 하워드 2세가 비정형의 구름을 분류해 이름 붙인 덕에
‘구름학’은 기상학의 한 주제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과학적 용어는 사물의 본성 이해하기 위한
인류의 ‘사색 탐구 역사’를 담고 있다

무언가에 이름을 붙여준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 사람이 잘 알고 제일 좋아하는 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김춘수(1922~2004)의 ‘꽃’이 떠오르는 물음이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내가 비로소 이름을 불러주자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것은 아직 온전한 객체로 자리 잡지 못한 무엇인가가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명확히 인식되기 시작하는 과정을 뜻한다는 해석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김춘수의 ‘꽃’ 안에서는 ‘이름’이라는 것이 감지될 듯 말 듯한 희미한 존재감을 가진 객체를 추상성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한 조용한 주문과 같다면, 김소월(1902~1934)의 ‘초혼(招魂)’에서 화자가 외치는 이름이란 사라져버린 임의 귀에 들리도록 큰 하늘과 땅 사이를 채우려는 듯 목놓아 부르는 불같은 집념을 담은 주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름이란 이렇게 떠다니는 유령과 같은 희미한 흔적뿐인 관념을 뚜렷한 존재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나만을 남기고 떠나간 꿈을 내 목숨과 뒤바꾸더라도 붙잡고 싶어 하는 열정을 담은 시그널이 되어주기도 한다.

무언가를 이름짓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뜻하는 바를 새삼스럽게 고민하게 된 계기는 고온다습과 싸우던 한반도의 7·8월이 지나고 어느 날 찾아와 냉기마저 느끼게 한 선선한 9월의 하늘을 올려다본 며칠 전이었다. 청명한 푸른 가을 하늘에 때로는 손에 잡힐 듯 낮게, 때로는 아득하게 저곳이 우주의 관문이 아닐까 싶을 만큼 높은 곳에 떠서 흘러가는 구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를 연구하는 기상학 분야 가운데 하나인 구름학(nephology)에서는 구름을 공중에 떠 있는 미세한 액체 방울이나 고체 결정 등으로 이루어진 ‘연무질(aerosol)’로 정의한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의 구름은 수증기를 머금은 대기의 온도가 이슬점 밑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비가 되어 땅에 내리거나 온도가 올라간 대기 속으로 다시 흡수되기 전 임시적으로 공중에 떠 있는 것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연기나 안개와 같은 성질을 뜻하는 ‘연무질’의 일종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구름은 비록 물분자로 되어 있긴 하나 얼음 조각 또는 병 안에 든 생수와 같이 그 외부와 내부 사이의 경계선이나 경계면이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성 고도에 따른 온도와 기압 등 물리적 환경 차이에 따라 다양한 비정형의 모습을 띤다. 대표적인 예로는 고도 5000~1만2000m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양털 모양의 권적운, 500~1만6000m 사이에서 생성되는 탑 모양의 적란운, 2000~7000m 사이에서 형성되는 양떼 모양의 고적운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권적운’ ‘적란운’ ‘고적운’…, 입에 넣으면 녹는 달콤한 솜사탕이나 귀여운 양떼 같은 푹신하고 푸근한 외모 치고는 혀가 입술과 부딪쳐 꼬일 것처럼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름들이다. 또한 전문성이 잔뜩 서려 있는 듯한 딱딱한 느낌 때문에 암기시키기 좋아했던 우리 교육 과정에서 시험 문제로 내기에 적격이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들이 영문 이름의 한자어 직역으로 ‘둘둘 말려 쌓인’ 권적운(卷積雲)은 cirrocumulus, ‘쌓여 있고 비바람 치는’ 적란운(積亂雲)은 cumulonimbus, ‘높은 곳에 쌓인’ 고적운(高積雲)은 altocumulus에서 왔는데,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도 쉽게 외우거나 발음하기 힘들긴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흘러가는 순간 “진짜 그럴까?” 자문해본다. 딱딱하고 어려운 이름들이라는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혹시나 현실의 구름학자들은 이 이름들을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오히려 굳었던 혀가 풀리는 상쾌한 기분을 느낌과 동시에 이 구름들의 자태가 눈앞에 펼쳐지며 자신의 직업에 대해 낭만적인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은 아닐까? 우리가 속어로 순화시켜서 다섯 개의 덕목을 지녔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외골수 전문가들이 그런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만 해도 머리 아파지는 것들을 재미있어 하고 또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하는 괴짜들(물리학을 전공한 관계로 내가 그렇다고 수십년째 듣고 있는 소리이니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다). 교실 한쪽 벽에 구름의 모양과 이름이 표시된 큰 포스터를 붙여놓고 모양을 춤으로 표현하며 이름을 외워보라고 시킨 뒤 즐거워하던 중학교 시절 선생님도 그런 부류였을 텐데, 그분의 원조는 위에서 나열한 구름 이름을 지어낸 영국의 루크 하워드 2세(Luke Howard Jr·1772~1864)라는 아마추어 기상학자였다. 그리고 말 그대로 무언가를 ‘사랑해서 하는’ 아마추어로서 명명법 체계를 완성했다는 것은 분명히 그 과정에서 큰 즐거움과 희열을 느꼈다는 것이다. 김춘수에게 이름없는 몸짓이 있었듯 하워드에겐 비정형의 연무질이 있었고, 그가 이름을 지어주자 구름은 당당한 과학의 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름은 이렇듯 불명확한 개념을 뚜렷하게 만들어 우리 안에 들어와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과학적인 이름짓기 과정에서 종종 관찰되는 역설적인 현상으로는, 과학을 배우는 입장에서 사물과 이름 사이에 약간의 거리감이 있으면 더 편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생 시절 고전역학(뉴턴역학)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말로는 ‘가상 일’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virtual work’라는 개념을 교수님이 가르치고 계셨는데 유독 이해하기가 어려운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교수님도 눈치챘는지 강의를 멈추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영어)로 된 학술용어는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그 단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뉘앙스가 머릿속에 들어와 정확한 이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금 얘기한 ‘virtual work’에서 ‘virtual’에 대해 여러분만의 해석이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외국어로 된 단어들은 그런 걱정이 없어. 예를 들어 독일어에서 나온 ‘eigenvalue’(우리말로는 ‘고윳값’이라고도 하여 정사각형 행렬의 값들로부터 만들어지는 특유의 값인데, 한국에서도 ‘아이겐밸류’라고 부르는 게 더 일반적이다)를 생각해볼까?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 여러분은 eigen이라는 뜻에 대한 선입견이 없으니까 교과서에 나온 수학적 정의대로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학술용어가 한자어(동양) 또는 라틴어(서양) 기반으로 조금의 거리감을 갖고 있는 현상에 대한 그럴 듯한 설명이 된다고도 생각했고, 이 조언을 따라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을 구태여 그 책에서 말하려는 바 그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학자라는 직업인으로서 실용적인 자세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하워드 2세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과학적 개념에 이름이 붙는 과정은 사랑을 느끼고 즐거움을 찾는 인간적인 욕망에서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인데 과연 ‘확립된 정의를 벗어나지 않기’ ‘개념과 언어 사이에 거리 두기’가 궁극적으로는 얼마나 올바른 태도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위해 ‘교과서의 정의만 따르면 되니 헷갈릴 일이 없는’ 대표적인 예라고 하는 eigenvalue를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교과서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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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명확한 수학적 정의만으로 충분하므로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면 우리가 μ를 eigenvalue라고 부르든 ‘굴라시’라고 부르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극단적인 편의주의는 독일의 오일러(Leonhard Euler·1707~1783), 이탈리아 태생의 라그랑쥬(J. L. Lagrange·1736~1813), 프랑스의 코시(A. L. Cauchy·1789~1857)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μ가 ‘각 행렬의 특징을 보여주는 고유한 값’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인류 지성사의 한 조각을 무시해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어서 못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는가, 아닌가가 가치의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현대의 과학 안에서도 한 사물의 이름이란 단지 그것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해주기 위한 소리나 글자의 임의 조합이 아니라, 그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의 사색 탐구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 과학 탐구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미 기초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확립되어 ‘사물과 이름 사이의 거리 두기’가 가능한 예는 극히 드물다. 즉 진행되고 있는 모든 과학 연구에서는 인간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불완전한 이해가 탐구 방향을 인도하는 유일한 길잡이이며(특히 모험적인 기초과학 연구에 있어서 그렇다), 어떨 때는 중요한 과학적 진보의 아주 중요한 영감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지금은 성공적으로 박사가 되어 활약하고 있는 한 제자가 학생 시절 나와 함께 “(예술·음악 등의) 창작 과정에서 작가 사이에 주고받는 ‘영향력’을 어떻게 물리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한 적이 있다. 보통 ‘먼저 나온 작품 A가 나중에 나온 작품 B에 준 영향력’을 알고 싶으면 A와 B가 얼마나 비슷한지 측정하는667 것으로 시작한다. 즉 더 늦게 나온 작품 B가 먼저 나온 A와 비슷하다는 것은 B가 A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A 자체가 그보다도 먼저 나온 A’를 베낀 것이라면? 이 경우 A는 A’의 영향력을 자기 것처럼 훔쳐서 불공정하게 고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는 ‘영향력’이라고 하는 개념을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했다. 그때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이야기할 때 “오늘의 나의 모습은 과거의 누구 누구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표현이었다. 뉴턴이 갈릴레이를 가리켜 ‘난 거인의 어깨에 서 있기에 멀리 볼 수 있었다’고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이를 거꾸로 말하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도 세상에 나오기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에 기초해서 우리는 창작 빅데이터에 기반해 작품 B가 생겨날 확률을 A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데이터에서 A를 제거)에서 각각 계산해 그 ‘차이’를 A가 B에 준 영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차이가 크다면 A가 있음으로써 B가 존재할 가능성을 높여준 것이고, 차이가 없다면 A는 B의 존재와 무관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이용해 분석한 서양 고전음악의 네트워크 연구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직관적인 의미로부터 과학적 정의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과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근래에 제일 큰 만족감을 주었다. 우리가 제시한 이 영향력의 정의가 교과서에 실리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영감이란 무엇인가 하는 인간의 사색과 그것의 과학적 정의 사이에 거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 기억된다면 충분히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자는 일반인과 다른 말을 쓴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과학 안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불확실한 개념들에 이름을 붙여주면서 인류 지식의 지평선을 넓히는 열정과 창의의 이야기가 가득하고, 개중에는 아름다운 말로 인간 내면을 표현해내는 시인들에 비견될 만한 서정성과 언어적 감수성을 발휘하는 이들도 있다. 아름다운 가을이 작별을 고하기 전에 푸른 하늘을 수놓은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그 너머에 있는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시심(詩心)을 한 번 감상해보면 어떨까?

▶박주용 교수

경향신문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네트워크과학·복잡계과학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데이나-파버 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시스템스 생물학을 연구하고,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와 예술의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제주도에 현무암 상징물 ‘팡도라네’를 공동 제작·설치했고, 대전시립미술관의 ‘어떻게 볼 것인가: 프로젝트 X’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창시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남는 시간에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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