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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워싱턴을 방문하는 여야 대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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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특파원 칼럼] 황준범|워싱턴 특파원

“정부와 여야가 같이 오다 보니 더 힘이 실리는 것 같다. 특히 국내에서 우려와 걱정이 많았던 한-미 동맹과 우호 협력 관계는 어느 때보다 좋은 분위기로 가고 있다고 직접 피부로 느낀다.”

야당인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은 지난 14일 워싱턴에서 이학영 위원장 등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대표단,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미국 연방의원 등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회·정부 대표단은 대미 투자 기업에 대한 지원 등의 활동을 벌였다. 여 본부장은 여야·정부가 함께한 이례적 방미를 “변화하는 통상환경 속의 원팀 활동”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에서 3년 일하는 동안 한국의 여야 정치인들이 방미해 이렇게 한목소리를 낸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정치적 다툼 소지가 적은 한-미 경제 협력에 관한 일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미 정치인들이 자주 교류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치인들이 워싱턴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솔직히 반가운 마음보다 걱정부터 앞선다. 여야가 방미해서 미국 조야에 명료한 메시지 전달에 성공했거나, 당면한 현안을 개선해냈다는 느낌을 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기억들이 강하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보름 전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들은 방미해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설전을 벌였다. 문희상 의장 일행이 “하노이 정상회담이 성공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으나 펠로시 의장은 “북한을 믿을 수 없다”며 회의적 태도를 고수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펠로시 의장에게 동조하면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에 합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말 국회 국방위원들은 미 하원 군사위원장 면담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군사위원장이 우리에게 ‘미국이 취할 전략’에 대해서 물었는데, 우리는 상당 부분 여야 생각이 다르죠”(한기호 국민의힘 의원)라고 말했다. 미국의 카운터파트(상대방)가 당황했을 그림이 그려진다.

여야는 한-미 동맹, 북핵 문제, 중국 대응 등을 놓고 국내에서 싸우고, 워싱턴으로 함께 날아와 미 행정부, 의회, 싱크탱크 인사들 앞에서 또 싸운다. 소신을 말하는 건 자유이지만, 예민한 시기에 한 팀을 꾸리거나 연달아 미국에 와서 각자 딴소리하는 건 보기 편치 않다.

국내 논쟁이 미국으로 번지면서 민망할 때도 있다. 지난 4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해 미 의회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청문회를 한다고 했을 때, 이 법에 각각 찬성, 반대하는 국내 단체들은 미 의회에 서한을 보내며 물밑 세 대결을 벌였다. 청문회에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은 허울뿐인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비난했다. 오히려 미국 민주당의 제임스 맥거번 의원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난민에 배타적인 미국 정부 등을 언급하며 균형을 잡으려 했다. 워싱턴에서는 “싸움판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 놓은 꼴”이라는 평이 나왔다.

다음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고, 비슷한 시기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나란히 워싱턴을 방문한다. 송 대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 대표는 대선 재외동포 투표 독려에 방점을 둔다고 하지만, 미국 인사들과 만나 한반도 문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단거리지만 탄도미사일을 발사를 한 직후이고, 대선을 5개월여 앞둔 시점이라 더더욱 그럴 것이다.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고 날아와서 미국 조야에 ‘혼란스럽다’는 인상만 남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적어도 외교안보에 관해서는 국가대표가 된 심정으로 공통분모와 선을 다듬어서 오시길 바란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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