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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열 40도 끓을 때도, 확진 엄마는 홀로 중증장애 아들 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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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장애인과 엄마 코로나 확진 분투

구급차엔 특수 휠체어 들어갈 공간 없고

생활치료센터에선 활동지원사 지원 없어

“170㎝ 아이 열번 넘게 혼자 안았다 눕혀

긴급재난 겪으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한겨레

지난주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국립재활원 생활치료센터에 입원했던 박세윤(가명)씨. 병원에서는 환자 간 거리두기 원칙에 따라 침대를 일정 간격 띄워 생활해야 했지만, 곁에서 아들의 상태를 살펴봐야 하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두 침대를 붙여 모자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어머니 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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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중증장애로 누워 있는 아들 생각이 났어요. 결국 아이도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그럼 함께 입원할 수 있을 테니 다행인가 싶더라고요. 워낙 중증이라 아이를 따로 맡길 수도 없고…서글프지만 차라리 엄마랑 함께 있는 게 낫겠다 생각했던 거예요.”

태어나자마자 뇌병변 장애 진단을 받아 평생을 누워서 생활하는 박세윤(가명·20)씨의 어머니 김아무개(47)씨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자신보다 아들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아들은 어머니 김씨와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 확진 시 미흡한 대응 체계에 모자는 확진부터 입원·치료 까지 진땀을 빼야 했다. 지난 13일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코로나19 확진으로 날벼락을 맞은 김씨와 아들이 맞는 추석은 그 어느 때보다 서글프다.

지난달 29일 김씨가 확진 판정을 받자 박씨의 코로나19 검사부터 문제가 됐다. 김씨는 확진 판정과 동시에 보건소의 입원 통보 연락을 받았지만, 누워있는 아들 박씨를 두고 바로 떠날 수 없었다. 다른 가족이 키 170cm인 박씨를 겨우 휠체어에 태워 검사를 받게 했는데, 24시간을 김씨와 함께했던 아들은 결국 확진 판정이 나왔다. 다행히 남편은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지만, 자영업자인 남편은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가게 문을 여느라 모자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모자가 치료와 격리를 위해 생활치료센터에 입원하기까지의 과정도 첩첩산중이었다. 박씨를 태우고 병원으로 갈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일반 구급차에는 박씨와 같은 중증장애인이 타는 특수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김씨는 “이미 보건소에도 이런 사정을 설명했는데, 출동한 구급대원은 1명뿐인데다 휠체어가 구급차 안에 못 들어간다고 하니 너무 황당했다”며 “나도 환자인데다 혼자 아들을 안고 구급차에 들어갈 힘도 없었는데 혼자 온 구급대원은 ‘원래 확진자랑 접촉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정부에서 이 정도의 지원 매뉴얼도 없는 것인지 싶어 서글픈 마음마저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좁은 구급차 안에 겨우 휠체어와 아들 박씨를 밀어 넣은 김씨는 조수석에 앉아 간간이 박씨 상태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아이가 긴장을 하면 몸이 더 딱딱해지고, 스트레스가 커지면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어 나중엔 피까지 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김씨도 열이 40도까지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아들 걱정에 자신의 고통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보낸 2주도 엄마는 마음 편히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한 병실에 아들과 입원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지만, 아들에 대한 돌봄은 모두 박씨의 몫이었다. 몸의 강직도가 높은 탓에 활동지원사가 함께 해야 아들을 일으켜 세워 약도 먹이고 식사도 할 수 있었지만, 확진자가 입원한 병실에서는 활동지원사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김씨는 “아이가 스스로 삼킬 힘이 없기 때문에 약을 먹이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코로나 치료를 위한 감기약 3번에 따로 먹는 약 두 번을 먹이고, 거기에 세 끼 식사까지 시키고 나면 아이를 열 번 이상 안았다 눕히길 반복했다”며 “하루가 어떻게 간 줄 몰랐다. 그렇게 2주를 지내니 퇴원하고 나서도 팔목에 어깨 통증이 심해지더라”라고 전했다.

모자는 지난 13일 퇴원했다. 김씨는 생각이 많아졌다. “앞으로의 세상에선 아이가 자기 자리를 찾아서 온전히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어요. 그런데 이런 긴급 재난을 겪다 보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난의 순간, 중증장애 자녀를 맡길 곳도 없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잖아요.”

퇴원 직후 추석 명절을 맞이하게 된 박씨 가족은 이번 명절도 조용히 지낼 계획이다. 사람이 붐비는 명절에 장시간 이동을 힘들어 하는 아이를 데리고 김씨는 고향에 갈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명절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해본 적이 없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가게 운영도 힘들어져 월세만 겨우 내고 있다. 소상공인 대출로 빚도 있어 폐업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중증장애 아이가 있다보니 내가 살림에 보태기도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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