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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美 배터리 시장 진출 2년 뒤진 삼성SDI…전략일까 실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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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삼성SDI 배터리가 실린 리비안의 전기 픽업트럭 ‘R1T’(왼쪽)와 지프의 첫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차 ‘랭글러 4xe’. [사진 리비안·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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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전략일까. 투자 실기(失期)일까.

삼성SDI 얘기다. 최근 주가 상승에도 미국 배터리 공장 신설 등 삼성SDI의 대규모 투자 계획은 쳇바퀴만 돌고 있다. 미국과 유럽, 동남아 등에서 조 단위 투자를 쏟아붓고 있는 배터리 경쟁사인 LG나 SK와는 대조적인 행보다.

삼성SDI 주가는 16일 종가 기준으로 72만5000원을 기록했다. 시가총액만 놓고 보면 배터리 대장주 LG화학을 위협할 정도다. 이날 종가 기준 LG화학의 시가총액은 50조5400억원. 삼성SDI는 6900억원이 뒤진 49조8500억원이다. 지난달 말에는 삼성SDI가 LG화학의 시가총액을 앞지르기도 했다. 시장에선 배터리 대장주가 교체됐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LG·SK보다 美공장 건설 2~3년 뒤져



하지만 주가 상승과 별개로 삼성SDI의 최근 행보에는 물음표가 달려 있다. 우선 미국 공장 신설은 소문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게 없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공장 부지 선정 작업은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LG화학이 미국 현지에 제너럴모터스(GM)와 두 번째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고, 삼성SDI보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 진출이 늦은 SK이노베이션도 미 조지아주 제1공장 완공에 이어 두번째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배터리 공장 건설에 평균 2년 정도 걸리는 것에 비춰보면 삼성SDI의 북미 시장 진출은 경쟁사 대비 2~3년 정도 뒤처져 있는 것이다.

삼성SDI가 북미 시장 진출을 공식적으로 밝힌 건 올해 들어서다. 지난 7월 열린 2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손 미카엘 삼성SDI 전무는 “미국은 세계 전기차 시장의 3대 축의 하나로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으로 미국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예상보다 더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며 “당사도 시기적으로 늦지 않게 미국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SDI "북미 공장 데드라인은 2025년"



삼성SDI가 밝힌 북미 공장 신설 데드라인은 2025년 7월이다. 2025년 7월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발효되는 시점이다. USMAC가 발효되면 북미에서 전기차 부품을 생산하지 않을 경우 관세 혜택을 받기 어려워진다. 한·중·일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 경쟁이 치열한 만큼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하면 북미 시장에선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미 배터리 공장 신설이 필수불가결이란 얘기다. USMCA 발효 일정에 맞춰 역산하면 2022년 무렵에는 북미 공장 착공에 들어가야 생산라인 점검과 시제품 생산 등 이어지는 일정을 맞출 수 있다.

배터리 업계에선 삼성SDI의 투자 지연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뒤 삼성이 내놓은 24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에 배터리 공장 신설 게획이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서도 뒷말이 많았다. 투자 계획에는 반도체·바이오·차세대 통신만 담겼다. 이를 두고 삼성SDI가 이 부회장 설득에 실패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최종적으로 배터리 투자를 승인하지 않았다는 소문도 들린다”고 말했다.



"몸집 키우기보다 수익성에 초점"



삼성SDI가 지난달 내놓은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8373억원이다. 미국 공장 신설 등 수조 원을 들여야 하는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 위해선 합작사 설립 등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삼성SDI 관계자는 “실적 발표에서 더 나아간 구체적인 투자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일부 언론에선 삼성SDI가 배터리 사업 분리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삼성SDI는 공시를 통해 “배터리 사업 분리 방안 검토에 착수했다는 기사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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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가 생산하고 있는 각형 리튬이온 이차전지. 사진 삼성S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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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도 만만치 않다. 삼성SDI가 나름의 치밀한 전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SDI는 2분기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업계 최초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배터리 흑자를 기반으로 2025년 USMCA 발효 전에 공장을 완공하면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이와 별도로 삼성SDI는 지프 브랜드 등을 보유하고 있는 스텔란티스와 배터리 합작사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 1조원을 투자한 유럽 공장 증설도 한창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와 유럽 공장만으로도 2~3년 내 전기차 배터리 계약 물량을 공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 아니겠나”고 봤다. 박강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SDI의 행보를 “경쟁사 대비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주력 제품·기술에 국내외 경쟁자 속속 진출



하지만 삼성SDI의 고민도 적지 않다. 국내 경쟁사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SK이노베이션이 최근 각형 배터리 경력직 채용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크게 파우치형·각형·원통형으로 나뉜다. 각형은 한국 배터리 3사 중에서 삼성SD의 주력 제품이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이달 16조원의 배터리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전고체 배터리 승용차를 공개한 것도 위협 요소다. 화재 위험이 낮은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선 한국 배터리 3사 중 삼성SDI가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한 것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지난 2년간 특허 전쟁을 치르는 동안 삼성SDI는 기술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에따라 삼성SDI가 올해 연말부터 차세대 기술에 기반한 배터리의 생산력을 본격적으로 확충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SDI가 그동안 증설에 보수적으로 대응해왔으나 주요 고객들로부터 수주를 확보해 향후 적극적인 증설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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