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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FBI가 성학대 눈감았다"... 美 체조여왕의 눈물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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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바일스, 상원 청문회에 출석
"체조협회·올림픽위원회도 방조"
FBI, 사과했지만... "개인 잘못" 변명
한국일보

미국 '체조여왕' 시몬 바일스가 15일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연방수사국(FBI)의 성학대 범죄 방치 사실을 언급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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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성범죄에서) 눈을 돌린 동안, 미국 체조협회와 올림픽·패럴림픽위원회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괴물 같은 존재가 아이들을 해치는 것을 방치하면 앞으로 닥칠 결과는 매우 심각할 것이다."

15일(현지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서 ‘2016 리우올림픽 4관왕’인 미국의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24)는 울먹이며 이같이 말했다. FBI와 법무부가 래리 나사르 전 미 체조대표팀 주치의의 성범죄에 대해 의도적으로 ‘늑장 수사’를 했다는 얘기다.

이날 의사당 증언대에 바일스 등 올림픽 여자체조 메달리스트 4명은 한결같이 ‘사법당국이 선수들의 성학대 피해 증언을 묵살했다’고 증언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올림픽 3관왕인 전 체조선수 앨리 레이즈먼(27)은 “FBI의 연락이 오는 데에만 (신고 후) 14개월이 걸렸다. 이후에도 그들은 성추행의 심각성을 깎아내렸다”고 폭로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맥케일라 마로니(26)도 “2015년 피해 사실을 부모보다도 FBI에 먼저 알렸는데, 돌아온 건 ‘침묵과 무시’뿐이었다”고 했다.

특히 바일스는 자신을 ‘성학대 생존자’라고 소개한 뒤, FBI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FBI는 우리 문제(성추행 피해)에 눈을 감았다. 우리를 보호해 주려 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어린 체조선수들은 물론, 어떤 개인도 나를 비롯한 수백 명이 견뎠던 공포를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성범죄 신고를 무시한 FBI 요원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2018년 1월 나사르의 추악한 범행을 공개했던 바일스는 올해 7월 도쿄올림픽에서 결선을 앞두고 정신적 중압감을 호소하며 기권했었다.
한국일보

15일 미국의 전·현직 여자 체조선수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래리 나사르의 상습 성학대 사건 수사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앨리 레이즈먼, 시몬 바일스, 맥케일라 마로니, 매기 니콜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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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FBI의 ‘사건 방치’ 탓에 나사르의 악행이 이어진 건 사실이다. 7월 법무부 감찰관실이 공개한 수사 기록에 따르면, FBI는 그의 성범죄를 2015년 인지하고도 1년 후에야 체포에 나섰다. 그 사이 최소 70명이 더 성학대를 당했고, 피해자는 265명에서 330여 명으로 늘어났다. 나사르는 현재 최대 36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여야 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FBI를 규탄했다. 존 코닌 공화당 의원은 “유명 선수들의 신고마저 무시되면, 다른 성학대 피해자들은 어떤 희망을 갖겠느냐”고 반문했다. 리처드 블루멘설 민주당 의원도 “FBI는 소임을 다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후의 일들도 은폐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FBI는 고개를 숙였으나, ‘조직이 아닌 개인의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도 “본분을 망각한 한 개인의 실수”라고 말했다. 미 CNN방송은 “조직 전체를 성찰하지 않고, ‘국민 보호’라는 핵심 의무를 배반한 개인(수사관)의 문제로 치부했다”고 꼬집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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