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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가족들이 저 혼자 가래요"…지방이전 2탄에 떨고 있는 공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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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김남이 기자] [편집자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또 다시 추진된다. 기업은행, 산업은행, KIC(한국투자공사) 등 100여곳이 대상이다. 여당은 문재인정부 임기 중 못을 박아두려 한다.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과연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특단의 조치일까, 아니면 대선을 노린 지방 포퓰리즘일까.

[MT리포트] "서울을 떠나라"②

머니투데이

충북혁신도시 전경./사진제공=충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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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결정되면 가족에게 뭐라고 해야할지 걱정이네요. 전에 슬쩍 떠보니 저 혼자 가라고 하던데요."

"지방이전의 명분에 공감은 하지만 기관의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나눠먹기 식으로 이뤄지는 지방이전이 무슨 실익이 있을까 싶네요."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리스트에 오른 서울 등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직원들의 하소연이다. 수십년 살던 곳을 갑자기 떠나야 하는 걸 반길 이는 많지 않을 터다. 자녀 교육문제를 걱정하는 가장부터 연애와 결혼을 원하는 미혼남녀들까지. 당장 '이직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하는 이도 있다.

17일 주요 공공기관에 따르면 2차 지방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한국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투자공사(KIC),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한국폴리텍대학 등 다수의 공공기관들은 지방이전 여부에 대해 정부의 방침이 정해지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직원들은 고민스러운 속내를 숨기지 못했다. 서울 소재 A금융 공기업의 한 임원은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공공기관 2차 이전과 관련한 일부 보도가 나오면서 직원들이 동요하는 듯 한데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없고, 통보 받은 것도 없다"며 "관 특성상 서울에서 민간 기업들과 협업을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많은데 그런 것들이 (이전에) 반영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B공기업 차장급 직원은 "우리 기관의 이전을 바라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줄을 섰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면서 "앞서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들도 보면 결국 중요한 사업 이슈가 생기면 상경해 처리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던데, 우리라고 별다를바 있겠느냐"고 했다.

이러한 불만은 특히 산은, 무보, 기은 등 금융 공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들 금융시장의 특성상 대부분의 프로젝트 협의가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이뤄진다. 서울에 위치한 금융위원회나 국회 등과의 업무협의 수요도 많다.

예컨대 산은의 경우 최근 혁신성장, 벤처 투자에 주력하고 있는데 벤처캐피탈의 상당수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산은에서 운영하는 '넥스트라운드'라는 투자유치 플랫폼 사업의 경우 매주 2~3회씩 개최하는데 지금까지 500회 이상 진행했다. 스타트업 등 기업의 IR(투자설명회) 등을 돕고 투자자를 매칭해주면서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갑자기 본부가 서울에서 멀어지면 실무적으로 어려움 겪을 수 있다. 관련 기능이 서울 수도권에 모여져 있는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산은이 지방에 내려갈 경우 비효율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C금융기관 관계자는 "지금도 미국 등 외국의 유명 투자기관은 방한하더라도 일본이나 중국 등 더 큰 시장을 챙겨야 해서 한국은 반나절 내지 하루 정도 짧게 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국민연금의 사례에서도 보듯 지방으로 가면 해외 기관과의 미팅이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지방이전시 인력유출, 대체인력 충원의 어려움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앞서 전북 전주로 이전한 이후 운용전문인력 이탈에 시달린 국민연금기금운영본부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경력직 채용 문턱을 낮추기 위해 투자실무 경력 1~3년으로 돼 있던 경력요건을 없애기도 했다. D공공기관 관계자는 "전문인력 소요가 많은 기관의 특성상 지방 이전시 인력 유출 우려가 큰게 사실"이라면서 "지방으로 이전하더라도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거나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지방이전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혼인 E공공기관의 한 직원은 "서울 사옥을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그 수익금을 토대로 다양한 신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고 직원 복지도 좋아지지 않겠느냐"며 "혁신도시의 경우 예전보다 인프라 형성도 잘 돼 있어 되레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 이라는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F공기업 직원은 "세종이나 부산 정도면 서울 못지 않은 인프라가 조성돼 있고 KTX 등을 이용하면 서울 출장도 부담스럽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고객의 상당수가 지방 중소기업인 까닭에 본사가 지방으로 내려가면 서울에서 제대로 보지 못하던 지방의 현실을 마주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해줄수 있게 돼 공공기관 본연의 역할을 더 충실하게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세종=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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