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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구의역 김군 사건' 이후 비정규직 대책도 ‘박원순 대못’이라는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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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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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바로 세우기 가로막는 대못’ 입장문을 발표한 뒤 민간보조 및 민간위탁 지원현황 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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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서울시가 민간기관에 업무를 위탁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업 관련 규정을 두고 “전임 시장(박원순)이 박아놓은 대못들”이라며 “잘못된 것을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도록 시민단체에 대한 보호막을 겹겹이 쳐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 시장이 ‘대못’이라고 부른 규정들 중엔 서울시가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도입한 조항도 있어, 그 맥락을 지나치게 무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 시장은 이날 오전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바로 세우기 가로막는 대못 발표’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며칠 전 ‘서울시 바로 세우기’ 브리핑을 전후해 민간위탁과 보조금 사업을 담당하는 간부들과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고 개선안도 나왔다”라며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장 시정 조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의 벽을 발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앞서 오 시장은 지난 13일 회견에서 박 전 시장 재임 중 서울시가 일부 시민단체에 사업 위탁이나 보조금 지급으로 1조원을 썼고, 이 예산이 시민단체 인건비로 과도하게 쓰였거나 특정 단체에 쏠렸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오세훈식 ‘적폐청산’···시민사회 협치·사회적경제 10년 되돌리나) 이날 ‘서울시 바로 세우기’ 2차 회견에서는 이를 바로잡으려고 해도 박 전 시장 시절 만든 제도 때문에 어렵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전임 시장 시절 만든 ‘서울시 민간위탁 관리지침’에는 행정 비효율을 초래하는 각종 비정상적인 규정이 대못처럼 박혀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종합성과평가를 받은 기관이 같은 해에는 특정감사를 유예 받는 규정, 수탁기관이 바뀐 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승계 비율이 80% 이상 되도록 한 규정, 서울시 각종 위원회에 시민단체 추천 인사를 포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들었다.

오 시장은 “체계화된 대못 시스템이 10여년 간 지속됐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라며 “저는 시민 여러분과 서울시 직원들을 믿고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화하는 길을 묵묵히 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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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구의역 김군’ 5주기를 맞아 지난 5월28일 구의역 승강장 ‘추모의 벽’에 꽃다발과 메시지가 놓여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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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김군 사건 후 만든 ‘80% 고용승계’ 규정

하지만 오 시장이 몇몇 조항을 대못이라고 지목하면서 해당 조항을 만든 배경과 의의에 대해서는 간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수탁기관이 바뀐 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승계 비율이 80% 이상 되도록 한 규정’을 두고, 오 시장은 “사업실적이 매우 부진하거나 각종 문제를 일으켜서 사업권을 박탈당해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한 이런 특권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냐”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문제가 된 사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규정은 2016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 후 서울시가 ‘노동혁신 대책’ 중 하나로 도입한 것이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안전망에서 소외되기 쉽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서울시는 그해 8월11일 “효율보다는 사람을 우선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전면적으로 감축하고 근로자에 대한 차별 철폐와 인간다운 노동조건 보장 등 대대적인 노동혁신을 단행한다”라며 서울시 투자출연기관과 민간위탁 분야 비정규직 감소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당시 “민간위탁 분야의 경우 고용승계를 최소 80% 이상 의무화 해 정규직화를 유도한다”라고 했다.

정부는 2019년 12월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협약서 명시사항’으로 ‘고용유지 승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유지 노력 및 고용승계’를 명시했다. 당시 정부는 “민간위탁 사무의 58%가 경쟁입찰을 통해 위탁하고 있으나, 명시적 고용승계 조항이 있는 경우는 24.5%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서울시가 80% 이상 고용승계를 권고한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시민단체 민간위탁과 구의역 사고의 원인이 된 민간위탁은 성격이 다르다”라며 “민간위탁 운영상의 문제점을 개선해나가겠다는 취지이지, ‘구의역 김군’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던 원인과 그에 따른 제도적 개선까지 되돌리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80% 고용승계’를 전체 민간위탁에 일률적으로 적용한 경직성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오 시장은 이날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은 물론 꼭 필요하지만, 상식에 맞지 않는 획일적·비합리적 협약 조건은 원취지에 맞게 합리적으로 개정되고 보완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시절 종합성과평가 법제화…이전엔 경영평가

오 시장은 민간위탁 기관이 통상 3년 이내인 위탁 기간 내 한차례 받아야 하는 종합성과평가 관련 규정도 문제삼았다. 민간위탁 관리지침엔 ‘종합성과평가와 특정감사 중복 시 업무부담 경감을 위해 특정감사를 다음해로 유예’라고 돼있다. 오 시장은 “이 지침 하에서는 공무원의 지도감독 과정에서 위법이 의심되는 점이 발견돼도 즉시 감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잘못을 덮고 은폐할 시간을 줄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민간위탁 기관에 대한 종합성과평가는 박 전 시장 재임 중인 2015년 1월 시작했다. 2014년 5월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제18조에 ‘경영평가’ 조항 대신 ‘종합성과평가’ 조항을 도입했다. 종합성과평가 도입은 서울연구원이 수행한 ‘서울시 민간위탁 종합적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2014년 2월)’에 기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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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구원 ‘서울시 민간위탁 종합적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2014년 2월)’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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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경영평가는 평가기관, 평가위원, 평가지표에 대한 세부사항을 명시하지 않아 각 주관부서별로 임의로 실시하고 있다”라며 “경영평가를 종합성과평가로 변경해 위탁 만료 전 1회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과 외부 전문기관이 주관해 공통된 지표를 갖고 평가할 것을 제안한다”라고 했다. 평가 결과를 기관끼리 비교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을 통일하고 정량화한 것이다. 이후 민간 전문컨설팅 회사가 이 종합성과평가를 수행했다. 이전 경영평가보다 신뢰성·객관성을 높인 셈이다.

서울시가 종합성과를 받는 해엔 특정감사를 유예하는 현 조항을 만든 때는 2016년 8월이다. 민간위탁 기관들이 잦은 평가로 인한 업무 과중을 호소하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기관이 3~4개월 사이에 종합성과평가, 특정감사(수시 시행), 지도·점검(연 1회 시행)을 한번에 받는 경우 등이 문제가 됐다.

오 시장은 “전임시장 때에 만들어진 해괴한 민간위탁지침은 위탁사업을 수행하는 단체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도 제때 못하게 만들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구체적 사례는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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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바로 세우기 가로막는 대못’ 입장문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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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개 위원회에 시민단체 포진”…그러나 “정리는 안해”

오 시장은 ‘서울시 각종 위원회에 시민단체 추천 인사를 포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두고는 “현재 서울시의 220여개 위원회에는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라며 “수탁기관을 선정하는 적격자 심의위원회는 물론이고, 보조금 단체를 선정하는 위원회까지 시민단체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자기편·자기식구를 챙기는 그들만의 리그가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수탁기관 선정 과정을 관장하고 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 부서장 자리에 종전 수탁기관의 장이 임명되는 일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오 시장은 ‘220개 위원회에 포진한 시민단체에 대해 바로 조치를 취할 것이냐’란 취재진 물음엔 “제가 생각하는 것과 정말 다른 질문일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시민단체가 서울시정에 관여해 도움을 주는 건 서울시와 시민들로서는 고맙게 생각해야 할 일”이라며 “위원회에 시민단체가 들어왔다고 해서 그분들을 다 정리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 없다”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시민단체들이 들어와서 심사하고 재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해충돌은 분명히 민주주의 원칙에 반한다”라며 “이런 현상을 최소화해서 누가 봐도 공평무사한 예산이란 평가가 나오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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