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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왜 미사일을 철도·잠수함에 싣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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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움직여야 살아남는다’ SLBM 열차미사일 공개

미-소 냉전 때도 선제공격 맞서 열차·잠수함 분산배치


한겨레

북한이 지난 15일 철도기동미사일연대의 검열사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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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15일 쏜 탄도미사일 2발이 “철도 기동 미사일 연대의 검열 사격 훈련”이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이 이동식 발사차량에서 미사일 쏜 적은 있었지만, 철도에 싣고 다니며 발사하는 ‘철도 기동 미사일 연대’ 훈련 공개는 처음이다. 박정천 북한 노동당 비서는 “철도 기동 미사일 체계는 전국 각지에서 분산적인 화력 임무 수행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위협세력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 타격 수단”이라고 말했다고 16일치 <노동신문>이 전했다.

지난 15일 한국은 독자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시험에 성공했다. 에스엘비엠은 은밀성과 생존성이 높은 무기다. 바닷속을 항해하는 잠수함은 찾기 어렵다. 에스엘비엠의 공격을 받은 쪽은 언제 어디에서 미사일이 날아올지 알 수 없는 채 당한다. 이 때문에 에스엘비엠은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라고 불린다.

그런데 남북이 왜 철도, 잠수함에 미사일을 싣고 다니며 쏘는 것일까. 육상 미사일 기지가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미사일 배치·운용이 가능한 장점이 큰데도 말이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로 맞대결하던 냉전 시대에서 비롯된 군사전략이다. 길거리 싸움에선 먼저 주먹을 날리는 게 효과적이지만, 핵전쟁에선 2차 보복 핵공격(second strike) 능력 확보가 관건이었다. 상대의 1차 핵공격(first strike)을 받아도 살아남은 핵무기로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어야 핵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상대가 2차 핵공격 능력을 확보한 것이 확실하다면 내가 먼저 1차 핵 공격을 해도 상대의 2차 공격을 받아 나도 같이 파멸하기 때문에 먼저 공격할 순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상호확증파괴’ 전략을 기초로 어느 쪽도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게 되는 ‘핵 억지’ 전략을 폈다.

냉전 때 미국과 소련은 ‘2차 공격’ 능력 확보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에스엘비엠은 대표적인 2차 공격 전력이다. 선제 핵공격을 받더라도 바닷 속 잠수함은 살아남아 에스엘비엠을 발사해 상대방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육상 기지에 있는 핵 미사일 격납고(사일로)를 지하 깊이 배치하고 사일로 벽을 두꺼운 철과 콘크리트로 둘렀다. 하지만 핵 미사일의 정확도와 파괴력이 계속 높아져 이런 대책으론 한계가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핵 미사일을 육상 기지에 고정배치만 하지 않고 이동식으로도 다양하게 운용했다. 상대 공격에 맞서 생존성을 높이려고 미사일을 이동식 차량·기차에 분산 배치했다.

RT-23은 소련이 개발한 열차 이동식 핵 미사일이다. 1980년대부터 1991년 소련이 망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설계해 실전배치됐던 이 미사일은 지하 사일로형, 열차 이동식으로 운용됐다. 소련은 기차 10여대를 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도에 실린 미사일은 철도망을 따라 전국을 옮겨다닐 수 있어 상대 공격에 대한 생존성이 뛰어나다. 민간 열차와 구별하기 어려워 상대가 공격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상대 공격으로 철도망이 파괴되면 발이 묶이는 단점도 있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이 2011년 북한 공작원들을 검거했는데 이들이 빼내려던 정보 중에는 RT-23 미사일 관련 정보도 포함됐다는 외신 보도들도 있었다.

미국도 ‘피스키퍼’란 핵 미사일을 개발해 지하 사일로 방식과 철도 배치를 병행하려고 했다. 애초 피스키퍼는 이동 가능하게 설계됐고 미국은 1980년대 피스키퍼를 철도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평소 미 공군 시설에 열차를 배치하고 각각 2발의 피스키퍼를 탑재한 열차가 소련과의 군사 긴장이 높아지면 기지를 출발해 미국 전역의 철도망을 달리게 된다. 1990년 시제 철도차량이 주행 시험까지 마쳤으나 1991년 소련이 망하면서 계획이 취소됐다. 애초 열차에 실려 미국 전역을 떠돌 뻔했던 피스키퍼는 사일로에 들어갔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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