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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옛길에 분리대, 회전교차로도 있었다. 유배,과거,보부상길 6곳 명승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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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죽은 갈재, 정약용 유배된 누릿재

아슬아슬하지만 먹고살려고 다녔던 개비리

울진 십이령 주막 거리 흔적 등 보부상 유적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유배가는 길, 과거시험 보러가는 길, 금강송 운반길, 분리대를 두어 차도(마차)와 인도를 구분하고 돌무지를 회전교차로로 이용하던 길 등 20세기 초 신작로가 만들어지기 고려-조선의 인적-물적 교류의 근간이었던 간선도로 ‘옛길’ 6곳이 국가 명승으로 보존된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16일 전라도 정읍-장성 삼남대로 갈재, 강진-영암 삼남대로 누릿재, 경기도 양평 관동대로 구질현, 경남 창녕 남지 개비리, 강원 평창-정선 백운산 칠족령, 경북 울진 십이령 총 6개소의 옛길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과거 옛길은 고려 시대 통치의 목적으로 건설된 역로(驛路)로 조선 시대로 이어지면서 국가의 중요한 시설로 여겨졌다. 조선 후기에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물자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이용이 빈번한 도로가 대로로 승격되며 9개 대로 체계가 완성되었다. 삼남대로, 관동대로, 영남대로, 의주대로 등의 간선도로는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을 연결하였으며, 점차 민간교역로의 기능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신작로로 재편되면서 옛길의 본래 모습이 훼손돼 보존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국가 중요도로로서, 축적된 문화, 역사, 전통 가치를 많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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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 정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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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대로’는 한양에서 삼남지방(충청‧전라‧경상)으로 가는 길로, 삼례-전주-태인-정읍-나주-강진을 거쳐 해남의 이진항에서 제주에 이르는 약 970리 길을 말한다.

삼남대로 갈재는 고려 현종이 나주로 몽진할 때 이용한 고갯길로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노령(蘆嶺)’, ‘갈령(葛嶺)’, ‘위령(葦嶺)’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전남 전북의 경계선이다.

송시열이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사사되기 전 마지막 여정이 갈재였으며, 동학농민군이 장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곧바로 정읍으로 향하기 위해 갈재를 넘었다고 한다. 길 가운데 축대가 조성되어 마차와 사람들이 다녔던 경로가 구분되고, 돌무지가 회전 교차로의 역할을 하는 등 과거 교역을 위해 활발히 이용되었던 옛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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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대로 누릿재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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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대로 누릿재는 고서에 ‘황치(黃峙)’로 기록되어 있고, ‘황현(黃峴)’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정약용, 최익현, 송시열, 김정희 등 많은 문사들의 방문기록이 내려오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특히,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를 지내며 월출산과 누릿재를 여러 시와 글로 남기기도 했다. 조선 시대 강진, 해남, 제주 등지로 유배를 떠나는 경로였으며, 반대로 강진, 해남 일대의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관동대로’는 한양에서부터 양평-원주-강릉-삼척을 거쳐 울진 평해까지 약 885리에 이르는 도로다. 구질현은 강원도에서 한양, 수도권으로 향하는 관동대로의 일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구질현(仇叱峴,)’이라 기록되어 있다. 지형이 험해 ‘아홉 번은 쉬고 나서야 고개를 넘을 수 있다’고 하여 ‘구둔치’라고 불리기도 했다. 길 주변에는 계단식 지형이나 습지가 형성됐고, 1940년대 중앙선 철로가 개통된 이후에도 주민들은 양동면 시장이나 지평시내를 갈 때에 기찻삯을 아끼기 위해, 또는 소나 말 등을 기차에 싣고 갈 수 없어 옛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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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개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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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남지 개비리는 박진(朴津)과 기강(歧江)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옛길로 소금과 젓갈을 등에 진 등짐장수와 인근 지역민들의 생활길로 애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지형도에도 옛길의 경로가 기록되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개비리는 ‘개가 다닌 절벽(비리)’ 또는 ‘강가(개) 절벽(비리)에 난 길’이라는 뜻으로, 선조들은 과거 낙동강의 수위가 지금보다 높아 발아래에는 강물이 차오르고, 아슬아슬한 벼랑길임에도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옛길에 올랐다고 한다.

백운산 칠족령은 평창과 정선을 연결하는 대표적 고갯길로, 감입곡류의 풍광을 내려볼수 있다. 이 동강을 통해 소백산 일대 금강송을 서울로 운송하던 떼꾼들이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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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칠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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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십이령은 두천원(斗川院)을 기점으로 봉화 인근 내륙의 생산품과 울진 인근의 해산물을 교역하던 십이령의 일부로, 샛재·바릿재 등 옛 십이령의 주요지점이 잘 남아있다. 십이령은 울진과 봉화에 걸쳐 위치한 12개의 큰 고개를 말하며,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험준한 길로 사대부보다는 주로 상인들이 오가던 길이었다. 울진 내성행상 불망비, 성황당과 주막 터, 현령 이광전 영세불망비 등 보부상과 관련된 역사문화적 요소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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