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새우는 어쩌다 ‘이 숲’ 파괴의 주범이 됐나 [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54> 맹그로브 복원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에서 새우 양식을 하는 압둘라흐만씨가 80일 키운 새우를 보여주고 있다. 양식장 뒤 숲이 맹그로브이고 그 너머가 바다다.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원래 어부입니다. 바다에 물고기가 없어요. 숲이 파괴되는 건 알지만 먹고살기 위해 새우를 기릅니다. 그래도 보호하려고 애써요. 그 숲이 소중한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남루한 옷차림의 앙가(38)씨 얘기는 모순되나 진솔했다. 그는 2년 전부터 새우 양식에 뛰어들었다. 400만~500만 루피아(약 32만~42만 원)에 새우 유생(幼生) 8만 마리를 산 뒤 90일간 길러 새우 1톤을 생산한다. 하루 4~5번씩 먹이를 준다. 산소를 공급하는 물레방아도 관리한다. 누추한 판잣집에서 땡볕만 피하며 종일 노동하는 대가는 한 달 벌이 기준 100만 루피아(약 8만2,000원). 수도 자카르타 노동자 올해 최저임금(월 426만 루피아)의 4분의 1도 안 된다.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에서 새우 양식을 하는 압둘라흐만(왼쪽)씨와 앙가씨.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마저 변수가 있다. 새우 몸에 흰색 반점이 생기는 백점병(White spot disease)이라도 퍼지면 애써 기른 새우가 모두 폐사한다. 책임과 손해는 온전히 그의 몫이다. 새우를 납품받는 대기업은 새우 몸길이 15㎝ 이상이면 ㎏당 7만5,000루피아(약 6,200원), 그 미만이면 7만 루피아(약 5,800원)로 값을 쳐줄 뿐이다. 앙가씨는 "병이 창궐하는 11~3월에는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지만 신통치 않다"고 했다.

새우 양식 탓에 망가지는 '지구 청정기'

한국일보

맹그로브를 베어 내고 만든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의 새우 양식장.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카르타 동쪽으로 4시간을 차로 달려 찾아간 서부자바주(州) 치르본(cirebon) 북부 해안에는 언뜻 논처럼 보이는 물 웅덩이가 해안가에 즐비했다. 총 넓이는 7,000㎡, 새우 또는 물고기 양식장, 염전이다. 앙가씨의 새우 양식장도 속해 있다. 역시 새우 양식을 하는 압둘라흐만(61)씨가 테를 두른 그물을 웅덩이에 넣었다 빼자 출하를 열흘 앞둔 새우들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의 환한 얼굴 너머로 초라한 숲이 바다를 가리고 있었다.
한국일보

맹그로브를 뽑아 내고 만든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의 염전.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양식장으로 변한 이 드넓은 땅은 3년 전만 해도 '천혜의 방파제' '바다의 열대우림'이라 불리는 맹그로브 숲이었다. 현재는 바다에 접한 부분에만 병풍처럼 늘어서 양식장 울타리용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부들은 안다. 그것만으로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해일과 파도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무를 뽑아내고 조성한 양식장 주변에 다시 맹그로브를 심고 있다. 듬성듬성 양식장에 박힌 맹그로브 묘목이 바람에 낯설게 흔들렸다. 자연 파괴와 뒤늦은 복원이 뒤섞인 현장은 인간의 아둔함을 날것으로 고발하고 있다.
한국일보

맹그로브를 파괴하고 만든 양식장 주변에 다시 맹그로브를 심었다.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맹그로브 파괴는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2019년 기준 전 세계 맹그로브 면적의 25%(약 3만3,100㎢)를 차지하는 최대 보유국가다. 뒤를 잇는 브라질(8%), 호주(7%)를 압도한다. 훼손 속도도 가파르다. 2005년 정부 통계에 잡힌 맹그로브 넓이가 9만3,600㎢였던 걸 감안하면 최근 15년 새 70%가 사라진 셈이다. 현재 보유 면적의 18%(약 6,000㎢)가 위독한 상태다.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 그래픽=강준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파괴의 주범으로 단연 새우가 꼽힌다. 맹그로브를 죄다 밀어내고 대규모로 새우 양식장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새우 양식장 전체 면적은 약 4,000㎢다. 실제 치르본에서 동쪽으로 200여㎞ 떨어진 중부자바주 스마랑을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면 해안부터 깊숙한 내륙까지 새우 양식장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그 장엄한 물 웅덩이들은 기실 맹그로브의 눈물이다.
한국일보

압둘라흐만씨가 80일 키운 새우를 보여주고 있다.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의 지난해 새우 생산량은 37만8,475톤. 우리나라 한 해 새우 생산량 7,000여 톤의 54배, 소비량 8만 톤(2019년 기준)의 5배다. 수출량은 20만8,000톤으로 인도 에콰도르 베트남 중국에 이어 세계 5위다. 생계가 막막해진 어부들이 너도나도 새우 양식에 나서고 있다. '맹그로브 훼손→어획량 감소→양식장 조성→바다 생태계 파괴 및 어획량 급감' 악순환의 고리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가 당장 더 무섭다.
한국일보

중국으로 수출되기 전 인도네시아 당국에 압수된 불법 맹그로브 숯.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질 좋은 숯을 구하기 위한 벌목 등도 맹그로브의 천적이다. 맹그로브 숯은 수분 함량이 낮아 연기가 덜 나고 화력이 센 데다 연소 시간이 길어 식당 등에 인기가 있는 고품질 숯으로 통한다. 중국과 싱가포르, 한국, 일본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일보

맹그로브에 달라붙은 비닐봉지.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리조트 등 해안 관광지 개발 및 마을 조성, 해양에 버려진 쓰레기와 유해 폐기물로 인한 오염 역시 맹그로브를 착취한다. 맹그로브 숲에 가면 비닐봉지들이 줄기에 휘감겨 있거나 온갖 쓰레기가 뿌리에 뒤엉킨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맹그로브 파괴로 해안선이 15m나 후퇴한 곳도 있다.
한국일보

맹그로브를 밀어내고 조성한 인도네시아 중부자바주 스마랑 새우 양식장의 2002년 모습(위 사진). 아래 사진은 바닷물이 침범해 새우 양식장은 파괴되고 해안선은 내륙으로 후퇴한 2019년 모습. 맹그로브맥즈닷컴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결국 별생각 없이 즐기는 식탁의 새우, 휴가철 꿈꾸는 동남아 휴양지,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맹그로브를 서서히 죽음으로 내몬다. 그리고 그 죽음은 다시 인간의 책임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새우 무죄, 인간 유죄'인 셈이다.

파괴는 쉽고 복원은 어려워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의 팡아렝안 마을에 늘어선 어선과 5년 전 심은 맹그로브.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치르본 새우 양식장에서 20여 분 떨어진 팡아렝안(pangarengan) 마을. 지역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맹그로브 탐방을 도왔다. 어선이 늘어선 좁다란 항구에서 배를 타고 넓은 바다로 나가는 양편 해로 1㎞가 맹그로브로 빽빽이 채워졌다. 길이 300m에 달하는 맹그로브 터널도 곳곳에 있다. 청량한 공기 속에 새들이 노닌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단조롭지만 보이지 않는 맹그로브의 이점은 다채롭다.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의 맹그로브 터널.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맹그로브는 생태계의 보고, 인공보다 뛰어난 자연 방파제, 기후 재앙을 막는 환경 지킴이, 지구의 공기청정기다. 어류, 조류, 파충류 등 각종 동물에게 서식처, 산란지를 선사한다. 인간들에겐 식료품, 의약품, 원자재를 선물한다. 해일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 피해를 줄이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바닷물 침범을 막아준다. 무엇보다 육지 숲보다 3~5배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하고 오염 물질을 걸러낸다.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레오(왼쪽)씨와 로바니씨.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년에 7m 정도 자라니까 저 정도면 수령이 20년 넘은 나무들이죠. 줄줄이 달린 기다란 물체(길이 50㎝ 남짓)가 맹그로브 씨(또는 번식체)입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맹그로브를 베어 내고 어렵게 만든 양식장이 맹그로브 부재로 거대한 파도에 망가지는 경험을 한 뒤에야 맹그로브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시 심기 시작했어요." 환경단체 수장 로바니(35)씨가 마을의 맹그로브 복원 역사를 설명했다.
한국일보

한국중부발전 직원과 치르본 주민들이 2017년 해안에 맹그로브를 심고 있다. 한국중부발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중부발전은 2017년부터 3년간 총 1만7,000그루의 맹그로브를 치르본에 심었다. 올해 11월에도 주민들과 함께 맹그로브 심기에 나선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지난해 말 관련 기관 명칭에 '맹그로브 복원'을 추가하고 올해부터 4년간 맹그로브 6,000㎢를 복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의 맹그로브 종묘장.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맹그로브 종묘장도 찾아갔다. 해변이나 하구 습지에 자라는 나무를 총칭하는 말레이시아어 '망기망기(mangi-mangi)'에 작은 숲을 뜻하는 영어 '그로브(grove)'를 더한 맹그로브(mangrove)는 인도네시아에만 49종이 분포한다. 숲을 이루는 연합 종까지 합하면 155종이다. 치르본에는 50만㎡에 15종 이상이 있다.
한국일보

치르본 환경단체 수장 로바니씨가 맹그로브 수종 중 브루기에라 묘목을 보여주고 있다.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의 맹그로브 종묘장에 있는 어린 맹그로브 수종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스틸로사, 브루기에라, 무크로나타, 피다다.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환경단체 회원 레오(23)씨는 "자생력이 뛰어나 주종을 이루는 아비센니아(avicennia·인도네시아 명칭 '아피아피')를 제외한 수종인 브루기에라(bruguiera), 무크로나타(mucronata) 등의 씨나 묘목을 개당 2,500~3,000루피아(200원 남짓)에 구해 7개월간 길이 80㎝ 정도로 키운 뒤 해안에 심는데 75%만 살아남는다"고 했다.
한국일보

4년 전 심은 맹그로브 6,000여 그루가 작년에 거대한 파도로 자취도 없이 사라진 치르본 해안.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심는다고 끝이 아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면 공들여 심은 맹그로브 전체가 속절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치르본 북부 해안에 4년 전 심은 맹그로브 6,000여 그루를 보러 갔으나 작년 8월 파도로 해안에는 맹그로브 지지대 몇 개와 쓰레기더미만 가득했다. 뒤늦은 복원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한국일보

1㎞나 이어지는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의 맹그로브.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맹그로브는 지구에 수천 년 뿌리내린 대체 불가한 존재다. 애초에 파괴하지 않을 것과 지속적인 복원이 어우러져야 한다. 로바니씨가 말했다. "정성껏 심어 생태공원도 조성할 겁니다. 10년 뒤에 꼭 다시 와주세요."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의 맹그로브.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치르본의 맹그로브. 기다랗게 달린 게 씨다. 치르본=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치르본=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