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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차현진의 돈과 세상] [37] 성가신 일은 무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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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혁명 당시 반란군 지도자 판초 비야는 로빈 후드와 돈 후안을 섞어 놓은 듯한 인물이었다. 열차를 탈취해서 얻은 귀중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가는 곳마다 낭만적 사건들을 벌이면서 여자들을 사로잡았다.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으니 미국도 처음에는 비야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비야가 미국 영토까지 침범해서 미국인 17명의 목숨을 빼앗는 사건이 터지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생각을 바꿨다. 그의 평화주의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악화된 때문이다. 1916년 3월 멕시코에 1만명에 이르는 토벌 원정대를 파병했다. 원정대는 화려했다. 인디언 토벌로 명성이 자자했던 존 퍼싱 장군이 이끌고, 당시 최첨단 장비인 무선통신까지 동원되었다. 원정은 한 달 안에 끝날 것 같았다.

조선일보

바람둥이 의적이었다가 미군의 추격을 뿌리친 뒤 멕시코 혁명의 영웅이자 군 사령관이 된 프란시스코 판초 비야(1878~1923). 할리우드 영화에 자기 자신으로 출연하거나 외국 기자와 자주 인터뷰를 하는 등 자기 PR로 적극적으로 이미지를 구축했던 독특한 인물이었다.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의 오히나가 북쪽 지역에서 군대를 이끌며 말 타고 달리는 모습으로 촬영된 설정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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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 도착한 원정대는 비야의 목에 현상금 5만달러를 걸었다. 일개 산적에 불과했던 비야의 몸값이 오르자 그는 갑자기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주민들이 미국 원정대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원정대는 늘 골탕을 먹었다. 그때마다 원정대가 조금씩 늘어나 12만3000명으로 커졌지만, 비야의 꼬리는 잡히지 않았다. 결국 1917년 1월 윌슨 대통령이 퍼싱 장군에게 퇴각을 명령했다. 그 순간 반란군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서 후방을 막으며 꼴사납게 탈출했다.

토벌 원정대는 미국의 힘과 체면을 세계에 과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0개월 동안 1억3000만달러나 쏟아부었다. 하지만 멕시코 산악 지대는 미군에 너무 낯설었다. 양쪽의 병력 차이가 비대칭적으로 커지면서 애초 내세웠던 원정의 정당성은 흐려지고 상황은 코미디가 되어갔다. 85년 뒤 아프가니스탄 산악 지대에서 20년간 벌어질 일의 예고편이었다. 성가시고 짜증 나는 일에 지나치게 자존심을 세운 결과다.

1916년 이 무렵 미국의 토벌 원정대가 비야에게 처음으로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불길한 생각에 휩싸여 철수를 떠올렸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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