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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빠짐 막으려 만든 10cm 룰, 적용되는 역은 10개 중 1곳 [두 바퀴엔 절벽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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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내선 3-2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은 17㎝다. 원고 장향숙은 2019년 4월30일 위 승강장에서 하차를 하던 중 휠체어의 앞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에 끼는 사고를 당하였다.』

지난해 7월 서울 동부지방법원 제14민사부가 장향숙씨에게 민사소송 패소를 선고한 판결문에 담긴 사건 개요다. 두 문장에 담긴 사건 전말은 아래와 같다.

2019년 4월30일 오전. 서울 당산역 인근에 살던 장씨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가기 위해 예약 2시간 전 집을 나섰다. 지체장애 1급인 장씨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평소 2호선 당산역 교통약자용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휠체어 전용칸이 있는 1-4 또는 4-4 승강장으로 이동한 뒤 지하철을 탔다. 피 검사를 먼저 받아야 하는 날이라 시간이 촉박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지하철이 도착했다. 직선 거리로 가장 가까운 3-2 승강장으로 급히 열차에 올랐다.

8분 후 신촌역에 도착했다. 열차 문이 열리면, 휠체어 이용자들은 정면 대신 바닥을 본다. 평소 내리던 곳보다 시커먼 골이 넓었다. 우물쭈물 못 내리면 진료 시간을 맞출 수 없다. 앞바퀴를 정면으로 정렬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신발이 닿지 않는 양측 모서리를 바퀴는 모두 딛어야 한다. 이 때 추진력을 결정하는 건 속도다. 휠체어 컨트롤러 레버를 끝까지 밀었다.

쿵. 앞바퀴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허리는 앞으로 꺾였고 충격으로 휠체어 전원이 꺼졌다. 앞을 향했던 바퀴가 옆으로 돌아갔다. 고꾸라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몇 초 후면 지하철 문이 닫힌다.

주변의 도움이 모였다.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들어 휠체어는 승강장에 올라섰다. “덕분에 살았다”고 말했지만, ‘괜찮으세요’ 질문에는 긍정할 수 없었다. 다른 역에서 당했던 사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덜컹이는 휠체어에 허리가 꺾이면서 손이 레버를 밀었다. 휠체어는 앞으로 튀어나갔다. 매달려 잡은 시민들이 없었다면, 사람을 치거나 벽과 충돌했을 것이다.

도시철도법이 정한 ‘도시철도건설규칙’에는 “차량과 승강장 연단 간격이 10㎝가 넘는 부분에는 안전발판 등 승객의 실족사고를 방지하는 설비를 설치해야한다(10㎝ 룰)”는 규정이 있다. 장씨는 해당 역을 관리·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공사)가 ①도시철도건설규칙을 위반하고 ②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한 차별 행위를 저질렀다며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장씨는 1·2심 모두 패소했다.

함정은 디테일에 있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2004년 해당 시행령을 개정하며 ‘이 규칙 시행 당시 건설됐거나 건설 중인 도시철도에 관하여는 종전 규정에 의한다’는 부칙을 달았다. 2004년 이전 지어졌거나, 짓고 있던 역에서는 10㎝ 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장씨가 사고를 당한 2호선 신촌역은 1984년 준공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간격규정(10㎝ 룰) 시행 당시 건설이 완료된 이 사건 지하철역(신촌역)에는 종전 규정이 적용될 뿐 이 사건 간격규정(10㎝ 룰)이 적용된다고 보기 어려운 바, 이 사건 지하철역(신촌역)에도 이 사건 간격규정(10㎝ 룰)이 적용됨을 전제로 하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선고했다. 법원은 10㎝ 룰이 2005년 이후 공사에 들어간 역에서만 적용된다고 인정했다.

서울교통공사가 관리·운영하는 역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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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2005년 이후 공사가 시작된 역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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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관할하는 1~9호선 역사 296곳 중 2005년 이후 공사에 들어간 역은 28곳(10.57%)이었다. 전체 역사 중 열의 아홉은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공사의 법적 책임이 있는 곳은 28곳, 없는 곳은 268곳이다.

정보공개청구로 공사가 파악하고 있는 연단간격 10㎝ 이상 승강장을 확인했다. 공사 책임이 없는 268개 역 1만8856곳 승강장 중 연단 간격이 10㎝가 넘는 곳은 151개 역 3607곳 승강장이었다. 승객 안전을 위해 규칙을 고쳤지만, 적용되는 곳보다 적용되지 않는 곳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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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상선 3-3 승강장의 실제 승강장과 열차와의 간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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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연단 간격이 가장 넓은 곳은 28㎝(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상선 3-3)다.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은 승강장 20% 이상이 연간 간격 20㎝가 넘는다. 성신여대입구역의 상선 승강장 평균 연단 간격은 20.3㎝였다. 1호선 서울역(10%), 3호선 동대입구역(5%), 4호선 회현역(4%) 순으로 간격 20㎝ 이상 승강장이 많다. 간격이 10㎝를 넘는 승강장은 3호선에 가장 많았다. 3호선 홍제역, 수서역, 경복궁역 등이다. 4호선, 1호선, 2호선 순으로 10㎝가 넘는 승강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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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격이 넓은 승강장에서 발빠짐 사고가 잦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중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지하철 발빠짐 사고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연단간격이 넓은 승강장에서 발빠짐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2017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발빠짐 사고는 총 340건, 이 중 사고 발생 승강장이 특정되는 곳은 244곳이다(치료비 지급건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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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례 발빠짐 사고가 반복된 곳은 3호선 충무로역 상선 4-2,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하선 10-2, 7호선 도봉산역 하선 2-2 세 곳이었다. 세 곳 승강장의 간격은 각각 18㎝, 16㎝, 13㎝로 모두 10㎝보다 간격이 넓었다. 세 역 모두 2004년 이전에 준공돼 10㎝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3차례 발빠짐 사고가 반복된 곳은 1호선 서울역 상선 5-4(간격 21㎝), 2호선 시청역 하선 10-2(19㎝),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하선 2-3(11㎝), 2호선 신촌역 외선 7-2(11.5㎝),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하선 7-2(18㎝) 5곳이다.

2차례 발빠짐 사고가 반복된 승강장 25곳 중 승강장 간격이 10㎝보다 작은 곳은 3곳(2호선 방배역 하선 5-1, 4호선 혜화역 하선 10-3, 8호선 가락시장역 상선 6-4)이었다.

5년간 1차례 발빠짐 사고가 발생한 곳은 총 211곳이었다. 이 중 간격이 10㎝ 이상인 곳은 153곳, 10㎝ 미만인 곳은 58곳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간격 10㎝ 이상 승강장 숫자는 1호선 15곳, 2호선 46곳(지선 포함), 3호선 43곳, 4호선 50곳, 5호선 8곳, 6호선 6곳, 7호선 13곳, 8호선 2곳이었다. 10㎝ 이상 승강장이 많은 호선(3, 4, 2, 1호선 순)과 비슷한 추이다.

2005년 이후 지어진 역에서는 발빠짐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28개 역 1567곳 승강장 중 10㎝ 이상 간격이 뜬 곳은 40곳이다. 28개 역 40곳에서 10㎝ 룰은 공사의 법적 책임이지만, 268개 역 3607곳 승강장에서는 법적 책임이 아니다. 신촌역에서 사고를 당해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장씨가 9호선 언주역 상선 6-4(간격 12.5㎝)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재판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2004년 시행령 개정 당시 붙인 부칙 한 문장이 17년째 힘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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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시철도공사 2016년 업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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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의 전신인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16년 업무보고에서 자동안전발판 설치 사업을 소개하며 도시철도건설규칙 10㎝룰을 사업 추진배경으로 들었다. 사업을 벌일 때 명분으로 활용한 조항이, 장씨 사례에선 거꾸로 공사 책임을 지우는 조항이 됐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랙티브 <두 바퀴엔 절벽 같은 ‘28cm’(https://news.khan.co.kr/kh_storytelling/2021/crevass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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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국·김유진·이수민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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