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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조선인 전범 피해자 헌소 각하…위안부와 다른 판단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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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전범재판소 처벌에서 비롯…한일청구권협정 대상 아냐"

'위헌 의견' 재판관 4명 "강제동원, 위안부와 다르지 않아"

연합뉴스

헌재, 조선인 전범 피해자 헌법소원 선고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산소에서 열린 조선인 전범 피해자 헌법소원과 방송법 조항 헌법소원 등에 대한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입장, 자리에 앉아 있다. 2021.8.31 uwg806@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헌법재판소가 10년 전 일본군 위안부 배상 재판과는 다르게 일제 강점기 일본군으로 강제 동원됐다가 전범으로 처벌받은 조선인 배상에 대해서는 한일 청구권 협정 대상이 아니라고 31일 판단했다.

일본군 위안부나 원폭 피해자의 배상 문제는 정부가 충분한 노력을 다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위헌)했다고 판단한 반면 전범 피해자 배상 문제는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이다.

◇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은 한일 청구권 협정 대상 아냐"

헌재가 위안부 피해자와 조선인 전범 문제를 구분한 배경에는 이들에게 피해를 준 대상이 동일하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헌재는 조선인 전범 피해자가 주장하는 피해를 국제전범재판소 처벌에 따른 징역 생활이라고 봤다. 헌재는 이들의 피해가 국제전범재판소 판단에 따른 것이지 일본 정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헌재는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로 생긴 피해보상 문제를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따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원폭 피해자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또 정부에 대한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 주장도 정부가 외교적 경로를 통해 노력하고 있다고 판단해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일제의 강제동원(징병)에 따른 피해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로부터 일부 보상을 받은 데다, 한국 정부도 일본 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헌재는 조선인 전범 문제를 놓고 한일 양국 간에 분쟁이 존재하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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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BC급 전범 문제 사진전
2014년 4월 27일 동진회와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이26일 도쿄도(東京都) 나카노(中野)구 '나카노제로'에서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개최한 전시회에 방문객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재판관 4명 반대 의견…"전범도 강제동원 피해 해당"

다만 헌재 재판관 4명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조선인인 전범 피해가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정부의 부작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은 조선인 전범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돼 입은 피해에 주목했다.

조선인 전범들이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은 한일 청구권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다수 의견에 동의했지만, 전범들이 강제동원으로 입은 피해는 한일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조선인 전범들이 한국 정부가 설치한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된 만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또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에 따른 피해는 국제전범재판과는 관련이 없어 이들의 청구권을 인정한다고 해서 국제전범재판소 판결과 배치하는 것도 아니라고 봤다.

아울러 조선인 전범들이 모두 사망한 것을 고려해 더 시간을 지체하면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게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관 4명은 "조선인 전범이 일제의 불법 강제동원으로 입은 정신적·신체적 피해는 과거 사례를 발견할 수 없는 특수한 피해"라며 "이런 피해의 청구권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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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멍에' 식민지 조선인 모임 동진회 60주년 행사
2015년 4월 1일 이학래 일본 동진회 회장이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열린 동진회 결성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조선인 전범' 마지막 생존자 올 3월 사망

조선인 전범 피해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병사로 강제 징집돼 연합군 포로를 수용·관리하는 포로감시원 등으로 복무했다. 이들은 전쟁 후 군사재판에서 B·C급 전범으로 유기징역을 선고받고 동남아 등 각지의 교도소에 수감됐다.

일본 정부는 전후 일본인 전범과 유가족들에게 처벌에 따른 보상을 했지만, 조선인 전범들에 대해서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로 일본 국적이 상실됐다며 대부분 보상하지 않았다.

조선인 전범들은 출소 후에도 '전범', '대일협력자'라는 낙인이 찍혀 대부분 귀국하지 못했고, 한국에 남겨진 유가족도 생활고와 주변의 차별·멸시를 당했다.

이들은 재일 한국·조선인 B·C급 전범 생존자 모임인 동진회를 결성하고 1991년 도쿄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국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999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동진회는 이후 일본 여야 정치권에 한국인 전범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 입법안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2014년에는 한국 정부가 이들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한일 청구권 협정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헌재는 7년 넘게 판단을 내리지 않았고, 지난 3월 마지막 한국인 전범 생존자였던 이학래 동진회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들에 대한 생전 구제는 끝내 이뤄지지 않게 됐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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